[전시리뷰]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展,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말하는 것
[전시리뷰]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展,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말하는 것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2.09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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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2층, 이우환 공간 1층, 3.12까지 무료 전시
작가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160여 점 공개
무라카미 다카시 “현대미술의 또 하나의 장르 경험하길”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무라카미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우환 작가가 무라카미 다카시 작가에게 전한 편지 내용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네 번째 시리즈로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전을 선보인다. 시립미술관 본관 2층 대전시실, 이우환공간 1층에서 3월 12일까지 개최하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지난달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취재진 앞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 ⓒ서울문화투데이
▲지난달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취재진 앞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 ⓒ서울문화투데이

‘이우환과 그 친구들’은 이우환 작가와 장르는 다르지만 현대미술사의 중심에서 예술관을 공유하는 작가들을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공간에서 함께 조명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다. 올해는 그 네 번째 작가로 일본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형 회고전으로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초기작부터 회화, 대형조각, 설치, 영상 등 최근작까지 160여 점을 전시한다.

이우환 작가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초청하면서 편지를 통해 그 이유를 전했다. 이우환은 “내가 무라카미님께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현대미술의 재미와 다이너미즘을 보이고자 합니다. (중략) 기상천외의 헤프닝을 벌리는 소녀 소년상이라던가 앞면이 자애로운 미소인가하면 뒷면은 잔인한 악마의 표정인 불상 같은 작품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히고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라며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에 대해 말한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전후 일본 애니메이션과 함께 성장한 세대로, 일본의 서브컬처를 세계의 중심이 된 서구 미술에 편입시키려는 전략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서구와 일본’ 등을 평평한 구조로 해석한 “슈퍼플랫”이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창안해, 새로운 유형의 대중문화 선구자가 되고자 했다.

그가 창조한 시그니쳐 캐릭터 DOB(도브), 탄탄보 그리고 무라카미 플라워는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언뜻 기괴한 모습도 품고 있다. 그 미묘한 이중성은 보는 이들에게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귀여움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작품 속 암시되는 주제인 원전ㆍ환경오염ㆍ전쟁 등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727 드래곤> 727 DRAGON, 2018, Acrylic on canvas mounted on aluminum frame, 300×450cm, Kwon JiYong collection ©2018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사진=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무라카미좀비》라는 메인타이틀 아래 본관 3개의 섹션과 이우환 공간 1개의 섹션, 총 4부로 공간이 구성됐다. 본관 공간에서 펼쳐지는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 3개의 섹션에선 무라카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선보이며, 동시대 인류의 불안을 상징하고 있는 ‘좀비 미학’을 더한다.

좀비는 ‘신자유주의’와 이에 기인한 현대인의 ‘불안’으로 해석되거나 기형적인 현대문명의 상징적인 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무라카미는 일본 대중문화, 특히 만화가 가지고 있는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의 미학을 작품에 끌어들였고 현재는 더 나아가 ‘좀비 미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전시는 작가의 초기작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경향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이어지는 작가의 작업 세계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선보인다.

이우환 공간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원상’ 시리즈를 소개한다. ‘원상’ 시리즈는 한 획으로 긋는 동그라미이자 마음과 정신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수행의 표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점과 선이라는 최소한의 회화적 조형 요소로 동아시아의 정신성과 신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이우환의 작품과 동질성을 갖는다. 무라카미의 ‘원상’ 시리즈는 마음을 비우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창작하는 순간을 표현하는데 그 자체로 이우환과 철학적 동질성 또한 공유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전시 이우환 공간 '원상'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도보지테 도보지테 오샤만베’ 의미 없는 단어 조합의 서사

“동일본 대지진 당시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 있다. 엄청난 쓰나미가 닥쳐, 엄마를 잃고 절망하고 있는 소년에게 어떤 이가 다가가 ‘엄마는 별이 됐다’라고 말하며 위로를 전하는 장면이었다. 나에게 그 장면은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전쟁이나 범죄 같은 경우로 사람을 잃게 되면 원한을 풀 상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연재해는 누구에게도 원한을 풀 수 없어 황당해지게 된다. 그때 ‘엄마는 별이 됐다’와도 같은 스토리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봤다. 그것이 종교의 핵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두 가지 작품을 만들었는데, 모두 스토리가 중요했다. 그 이후 작품 안에서 스토리를 담아서 작업을 해왔다”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무라카미 다카시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작가에게 어떤 경험을 남겼는지?’라는 질문에 전한 답이다. 화려한 색감, 선명한 경계선, 평면의 화면 등은 무라카미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또한 그가 화폭 안에 담는 존재들 역시 귀엽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초기작 DOB를 소재로 한 작품 이후에는 귀엽다고 하기에는 좀 기괴해진 존재들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수십 개의 눈을 달고 있거나, 점액질을 끊임없이 토해내는 괴물의 존재로 탄탄보가 등장한다.

▲<스파클 / 탄탄보: 영원> Sparkle / Tan Tan Bo: Eternity, 2017, Acrylic, gold leaf and platinum leaf on canvas mounted on wood panel, 240×735cm, François Odermatt collection ©2017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사진=부산시립미술관 제공)

DOB(도브)에서 변형을 추구해 등장한 탄탄보는 이제 더 이상 귀엽지 않다. <스파클/ 탄탄보: 영원(Sparkle/ Tan Tan Bo: Eternity)>에선 작품 속 존재들이 대화를 나눈다. 카이카이라는 존재는 “너 괜찮니?”라고 묻고 있고, 작가는 화면 속 글을 통해 “근데 진짜로, 지금 세상이 엉망이지 않나요? 전 세계적으로, 분쟁의 불씨와 지진과 태풍과 같은 믿을 수 없는 자연재해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이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어요.(중략)”라며 걱정을 전한다. 하지만 화면 속 또 한 존재는 해맑은 얼굴로 “될 대로 되라죠”라고 말하고 있다.

도라에몽, 슈퍼소닉의 이미지를 결합해 만든 DOB는 무라카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주기 시작한 시리즈로 ‘도보지테 도보지테 오샤만베’라는 의미 없는 단어의 조합으로 시작된 캐릭터다. ‘도보지테’는 ‘도시테(どうして/왜?)’라는 말을 이상하게 발음하며 의미를 없앤 단어다. 이를 모티브로 제작된 DOB는 일본 현대사회의 공허함과 소비주의적 경향, 일본 현대미술에 대한 비판을 녹여낸 시리즈였다.

▲지난달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 ⓒ서울문화투데이

‘도보지테 도보지테 오샤만베’는 전시장 초입인 DOB 시리즈가 전시된 공간 바닥에 영문으로 적혀있다. 아무 의미 없는 것, 하지만 그 속에는 교묘한 비판이 담겨있는 무라카미 의 작품 전반을 뜻하고 있는 듯하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입구에서 멀리 않은 곳에 있는 하나의 벽을 돌아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무라카미는 “바닥을 회색으로 칠하고, 복잡한 벽 장치를 구성해 관람객이 돌아서 관람할 수 있게 했다”라며 이를 이번 전시의 관점 포인트로 꼽았다. 직선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돌고 돌아 작품에 집중하는 환경은 보는 이에게 그의 작품 속 여러 겹의 장면과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듯 하다.

이번 전시 귀여움 섹션에선 무라카미 다카시의 DOB 시리즈와 탄탄보 무라카미 플라워를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무라카미 플라워로 가득 채워진 공간은 화려한 색감으로 알록달록한 동화 속 공간을 연출한 듯 하다. 하지만 평면화된 화면과 장식성은 무라카미 플라워의 웃는 모습 속 공허함을 드러낸다. 밝고 행복해 보이지만 그 안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깊고 어두운 고뇌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전시 귀여움 섹션 중 무라카미 플라워 전시 공간 ⓒ서울문화투데이

재난과도 같은 현재, 예술의 역할은?

무라카미 플라워 공간에서 이어지는 기괴함 섹션은 좀 더 본격적으로 인간의 불안과 고뇌를 다루기 시작한다. 이 공간에선 프란시스 베이컨의 삼면화를 오마주한 작품들을 공개한다. 동시에 무라카미의 초창기 설치 작품 등을 선보인다.

전시 작품 중에는 <란도셀 프로젝트>(1991)이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당시 군인이 메고 다니던 가방과 어린이 책가방 란도셀을 나란히 둔 작품으로, 무라카미 초기 작품이다. 무라카미는 이 작품을 통해 패전이후 일본에 드리워진 사회적 상황과 어린아이에게까지 전쟁 이후의 고난을 짊어지게 하는 일본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90분 장편 영화 <메메메의 해파리>도 공개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 마사시가 겪는 SF 판타지 모험담이다. 일본 전통 신앙 및 신화적 이미지에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진 작품은 당시 지진으로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전시 기괴함 섹션 중 <메메메의 해파리> 상영 공간 ⓒ서울문화투데이

무라카미는 오타쿠 문화를 예술로 끌어들이며, 언뜻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이 겪은 일본 사회의 맥락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본관 전시 마지막 섹션인 덧없음은 무라카미가 구축해온 세계관의 과거 현재를 보여주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덧없음’은 일본어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를 한국어로 표현한 것이다. ‘모노노아와레’는 일본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진 문학ㆍ미학 개념으로 ‘사물의 슬픔’, ‘비애의 정’으로 의역될 수 있다. 무라카미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계에 닥친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종교도 제대로 작용할 수 없는 재난적 현실을 작품 안으로 드러냈다. 그는 언뜻 화려하고 귀여운 캐릭터를 전면에 드러내지만,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슬픔과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재난의 시대 속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죽은 영혼들의 섬>(2014), 360X480cm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이번 《무라카미좀비》 전시는 하나의 대서사시로도 느껴진다”라며 “‘도보지테 도보지테 오샤만베’라는 무의미한 단어로 시작해, 재난의 시간과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그 끝에서 예술로 전할 수 있는 위로, 해탈로도 여겨지는 행위를 전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 관장의 해석은 전시 마지막 작품인 <아미타 내영도>로 좀 더 구체화된다. 아미타불이 25보살과 함께 죽은 자를 맞이하러 가는 불화를 무라카미 다카시의 색으로 그린 작품이다.

▲<아미타 내영도>(2016), 300X378cm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팬데믹 이후 혼란의 시대, 예술의 생기와 사유

이번 무라카미 다카시 개인전은 지난해 9월 말 개막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부산시립미술관에 누수가 생겨 연기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누수 사건으로 인해, 전시기간이 기존의 3분의 1로 줄어들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기 부산시립미술 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전시로, 미술관에 큰 숙제를 남긴 기획이기도 했다. 최근 K아트가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큰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 붐을 지속하기 위해선 미술계 전반의 시스템이 업그레이드 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 이 전시는 유료 전시였으나, 부산시에서 10년 이내 부산에 이런 전시가 오기 어렵다라며 큰 결단을 내려 무료 전시로 전환했다. 짧은 전시 기간인 만큼 많은 시민들이 와서 관람하길 바란다”라는 긴 인사말을 남기기도 했다.

무라카미는 팬데믹 이후, 인간이 도망칠 수 있는 곳도 없고 종교도 제 역할을 못하는 절망의 상황을 느꼈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메타버스는 인간에게 새로운 위로를 전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우환은 무라카미를 초청하면서 “코로나로 위축된 상황에 힘찬 예술가의 외침이 필요합니다. 안으로 웅크려진 사람들에게 싱싱하고 다이나믹한 표현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세요”라고 말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전시 귀여움 섹션 중 무라카미 플라워 전시 공간 ⓒ서울문화투데이

우여곡절 속에 개최된 이번 전시는 ‘올해 꼭 가봐야 할 전시’로 꼽히며 벌써부터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무라카미는 이번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현대미술의 또 하나의 장르를 선보이고 시각을 제안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예술은 예술가 특유의 독특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하나의 창과 같다. 이번 《무라카미좀비》는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예술가 안으로 초대돼 그의 변화된 시각을 읽고, 귀여움과 기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전한다. 더불어 <727드래곤>등 권지용 컬렉션, 무라카미 플라워를 만날 수 있는 트렌디함도 또 하나의 재미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