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극작가 시대에서 연출가 시대로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극작가 시대에서 연출가 시대로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3.02.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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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자연의 세계에는 사계절이든 두계절이든 질서가 있어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변화를 이어간다. 인간 문화의 세계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변화의 계절을 겪으며 그 세월의 나이테를 그으며 세월을 쌓아가는가 보다.

한국연극계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면 성장을 함께한 나는 감회가 새롭다. 한국연극계의 어른 이해랑, 김동원, 이원경, 이진순 선생님 등이 유치진 선생님의 뒤를 이어 한국연극의 원년 역할을 이어가며 극단을 꾸리고, 연극을 통한 감동을 사회에 심어가며 사회를 살아가는데 새로운 형태의 감동을 선사했다. 이들의 연극에 대한 지식과 연극 만들기의 얼개는 모두 일본에서 배워 온 새로운 형태의 감동 전하기의 뿌리를 활용했다. 더 더듬어 올라가면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구문화에서 감동으로 옮겨 온 연극의 형태에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서구연극의 뿌리를 보면 이태리 궁중문화에 뿌리를 둔 오페라 형태의 고급문화와, 다른 한편 군중이 함께 즐긴 군중이 관객으로 발전하면서 궁중의 고급문화로 자리 잡은 오페라와 평민관중이 함께 즐긴 연극이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한다. 오페라와 연극은 온 유럽으로 전파되며 연극은 스페인과 영국, 프랑스를 거처 뒤늦게 전파된 독일에서는 온 국토를 팔아서라도 셰익스피어를 사오겠다는 열망을 표하며 연극이 독일사회를 뒤늦게 화끈 달아오르게 한다. 이렇게 연극은 유럽을 위시하여 온 세계로 그 열망의 마당을 물들이며 온 세계로 퍼져 나간다.

그 파장의 줄기를 접한 일본연극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일본 군중의 <사고와 언어>에 큰 영향을 끼치며 일본 문화의 큰 줄기를 담당한다. 당시 앞서가는 서구문화의 깨어있는 의식을 어느 분야의 예술보다 언어를 통해 손쉽게 군중과 소통하는 모습에 매료된 한국의 제1세대 연극인으로 추앙받으며 중심의 자리를 지키는 유치진, 함세덕 등은 한국연극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극작가의 자리를 지키며 연극을 한국사회에 심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작가의 역할이 60년대 말에서 70년대, 80년대로 이어지며 대학가를 통해 길러진 새로운 관객의 성장과 팽창을 맞이하며 한국연극계에는 연출가의 마당으로 대중의 열정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한국연극의 마당은 젊은 연출가들의 열정으로 꽉 차며 젊은 열기를 뿜어내며 여러 형태의 소극장 공연이 열기를 뿜어낸다. 가끔은 배우출신의 추성웅 같은 용감한 배우가 순회공연을 감행한다. 당시 한국연극의 열정을 소극장 장기공연으로 발전시키며 버텨나간 연출가로는 정진수, 김상렬, 김효경, 김도훈, 윤호진을 들 수 있다. 이들 다섯 명의 연출가들이 모여 한국 제1연기자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우훈련을 통하여 연극의 진수인 배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무대 환경 다양화 받아들여야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연극을 향해 불태운 행동이 한국연극의 새로운 부싯돌 역할을 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연극판을 달군 연출가이며 극단 단장으로, 연극의 자존심을 지키는 기국서 등은 오늘의 연극판을 지키는 선배이며 스승의 자리를 지키는 보배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발전시킨 연극에 대한 무한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무대는 연극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차갑게 깨달아야 할 때임을 놓치고 있는 게 연극계의 현실이다. 뮤지컬을 비롯하여 수많은 변신을 시도하며 새로운 형태의 공연예술계와 어떻게 싸우며, 어떻게 타협하며 어떻게 변신을 시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가 무한히 고민하며 변신의 변신을 시도하며 연극판을 지키며 변화하는 시대의 삶에 연극인으로 적응하느라 애쓴다.

우리나라 연극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연극인들의 비애는 한 가지를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하고 살아가며 연극의 수명이 다양한 공연예술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외면한 데서 비롯된다. 연극의 핵심이며 알맹이인 ‘긴장과 이완’의 핵심을 안고 있는 기존의 어법이 수많은 옷을 갈아입으므로 해서 수많은 장르의 공연예술의 핵심요법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서 기인함을 인정하자.

과감하게 기존의 연극이라는 옷을 벗어 던지고 갈아입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감지하고 반연극을 시도하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한 지 오래되었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벌써 지나고도 남았다. 여기에 뮤지컬 못지않게 하나의 장르로 대중 속에 자리를 잡지는 못했으나 좁은 문을 열고 있는 무세중과 유진규의 <반연극의 무대어법>을 주시할 때가 되었다. 비록 그들의 판이 크게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무대어법의 진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점점 연극이란 장르가 시대의 변화를 타며 그 어법과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는 데는 서계의 공연예술이 <전통의 현대화>라는 큰 주제의 흐름 속에 있음을 주지하는 자의 반 타의 반의 변화 속에 있음을 감지했어야 했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큰 주제의 흐름이 우리 공연예술의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논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