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약자를 위한 도시조명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약자를 위한 도시조명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02.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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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2000년대 초 스코트랜드 글라스고우시에서 청색빛의 가로등을 도입하여 도시경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냈으며 범죄율도 줄었다고 주장했다. 2005년 일본 나라시에서는 치안이 좋아지고 요코하마의 금요지역에서 빈번히 일어나던 자살도 청색 조명이 설치된 이후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청색의 조명이 흔하지 않아서 혹은 경찰과 같은 치안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주로 쓰는 색이라서 그런 효과가 나타났다는 논리가 있었으나 대다수의 동의를 구하지는 못한 것 같다.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으로 청색 가로등이 가로를 비추는 도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사람들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한 몸처럼 되어버린 모바일 디바이스나 PC 모니터, TV 등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시력이상과 불면증의 원인이라고 한다. 안과 의사들은 이 청색광이 가시광선 중 가장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커 다른 색의 빛에 비해 눈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일상적인 노출 정도로는 시신경이나 망막에 손상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밝은 빛에 지속적인 노출은 멜라토닌 생성에 영향을 미쳐 숙면을 방해 할 수는 있다는 의견을 주었다.

한 연예인이 코로나 예방 접종 부작용으로 시력 기능이 저하 되었다고 하자 방역당국은 인과성 확인이 어렵다고 하였으나 주변에는 “나도..”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대부분 눈에 이미 이상이 있는 - 근시나 약시, 백내장 등 - 사람들이어서 본인의 시각 이상이 100% 접종에 의한 부작용이라고 확신하지 못할 뿐 그들은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 “영향이 있는 거 같아..”

조명을 공부하면서 처음 대하는 것이 ‘사람의 눈’이다.

중고등 학교 시절 생물시간에 한번쯤은 보았을 눈의 해부도를 통해 수정체와 홍체, 모양근, 망막등 구조와 담당 기능을 배운다. 일반교양이 아닌 전문가로 가는 석사 과정이라 다른 것이 있다면 눈의 이상이 우리의 행동이나 삶에 어떤 치명적인 일로 결과 되어 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도시 조명 방향은 사회생물학적 관점서 보아야

 

흐릿한 시야와 같이 외과적 수술로서 개선 가능한 것은 차치하고, 시야가 좁아지거나 왜곡되는 망막의 이상은 도로의 높이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다르게 보여지는 동일한 높이를 다른 높이로 착각하게 하여 넘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의 정상적인 시각은 두 개의 눈에 의해 형성되어지는데 그 중 한 개에 오류가 생기면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사람과는 다르게 시야가 좁아지고 초점이 다른 곳에 맺힐 수 있다. 이는 계단과 같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섬세한 시각’이 작동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한 개의 눈만 작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지는 않는다. 나머지 한 개의 시각과 익숙한 경험이 개입하여 사고를 막는다.

좀 더 특별한 사례는 뇌의 이상에 의한 시지각 오류이다. 예를 들어 머리 뒷부분에 철봉이 관통하는 사고를 당해 오른쪽 뒤통수의 시각피질이 손상된 사람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왼편으로 암점이 생겨 손바닥 크기만큼이 안 보인다. 그결과 그 사람은 화장실 입구에 있는 ‘WOMAN’이라는 표지를 볼 때 ‘WO’는 안 보이고 ‘MAN’만 보여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실수를 했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단다. ‘본다’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집중하여 볼 때 어느 한 부분이 사라져 보여 잘못된 판단을 내리곤 했던 것이다.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가 대했던 환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시각은 정상이나 뇌 속 전두엽의 이상으로 ‘본’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오류’가 생긴 경우로 시각이 시지각 되는데에 관여하는 여러 가지 뇌의 부분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복잡 다단한 시각과 시지각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류를 갖는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기적적으로 이런 모든 것을 보고, 적당히 판단하며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망막 손상으로 눈 수술을 한 지인이 조명 전문가 나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공공 조명에도 관여를 한다고 생각했었는지 횡단보도의 초록조명, 빨간조명은 정말 잘한 일이라며 그 것 때문에 밤에도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밤에 집 앞 공원을 걷는 게 어두워서 엄두가 안난다는 이야기도 했다. 가로등이 뜨문뜨문 있는 공원은 바닥이 잘 안 보이고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 때문에 놀라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낮에는 운전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계절다라 피는 꽃들을 사진 찍어 인스타 그램에도 올리는, 정상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횡단보도를 밝게 드러내는 하얀색 엘이디 조명이 주변과 지나친 밝기대비를 만들고 이는 운전자나 보행자의 눈부심을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었다. 이렇게 ‘쓸데 없이’, 지나치게 배려된 공공의 조명들이 도시 야간경관의 품격을 낮춘다는 생각을 했었고, 횡단보도 턱에 설치된 초록색, 빨간색 띠 조명의 효용에 대하여도 ‘쓸데 없는’ 예산 낭비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었다. 사람의 눈은 밝기에 순응하는 능력이 있어 어둠은 적응하기 마련이며 적당히 어두운 공간이 있어야 적은 에너지로 고즈넉한 밝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도시의 야간경관이라는 큰 주제 속에서 기능적인 밝기기준을 고집하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역할 회피이며 도시의 아름다움보다는 기능만을 생각하는 촌스러운 접근 방법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시각적 오류를 경험해 보지 못한 조명 전문가가 소홀히 하는 밝음은 때로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공공을 위한 빛은 다양한 시각적 이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포함하여야 하며 ‘안전한 밤거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보다 섬세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도시경관의 특성이나 방향 그리고 조명기술, 이런 것들 보다 현대 도시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어떤 다양성을 갖고 있는지 그들의 야간의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 그리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을까...

미래 도시의 조명의 방향은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