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수상자]양영은 M발레단 단장 “객석까지 전염되는 무대 위 감정을 만들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수상자]양영은 M발레단 단장 “객석까지 전염되는 무대 위 감정을 만들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2.1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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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통한 춤의 이해’, 한국인 최초 Dance Research 표지 논문으로 실려
고전발레에 비해 홀대받는 창작발레…레퍼토리화 위한 지원 필요
세계 무대 더 큰 활약 위해 ‘우리만의’ 스타일 연구 선행돼야
“이론 연구와 작품 창작 두 마리 토끼 잡을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김재성 사진기자]드라마, 영화, 가요, 클래식, 공연예술 등 전 분야를 아우르며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은 K-컬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대중문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그중 한국 무용수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 발레단에서 주역으로 이름을 알리는 이들의 활동은 1990년대 1세대 허용순과 강수진으로 시작해 김기민, 박세은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용수들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세계 무대 속 한국 발레는 아직 불완전한 수준이다. 무용수 개인을 넘어 K-발레를 알릴 수 있는 창작발레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매년 창작발레 작품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완성도가 높지 않으며, 레퍼토리로서 꾸준히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스토리가 있고 규모가 큰 그랜드 발레로 가면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공연 장면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공연 장면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작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70분의 전막발레를 통해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장해 나가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그렸다. 작품은 서른 두해의 짧은 삶을 조국의 독립에 기꺼이 바친 애국지사의 삶과 두려움과 괴로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느끼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양영은 M발레단 단장은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의 대본·연출가로서 2015년 초연작업부터 2021년 예술의전당과 함께한 재제작 과정, 그리고 2022년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개막작으로의 성공까지 그 궤도를 함께 만들어 온 인물로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발레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나는 창작발레의 단점을 극복하며, 주로 해외작품들의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발레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주요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평가된다.

양영은 단장은 예원학교 재학중 영국 버밍험 로열 발레부속학교로 유학을 떠나 졸업 후, 발레교수자 학사학위(영국 왕립무용학교)와 발레학 석사학위(영국 로햄튼 대학교), 그리고 영국 써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재원으로 동대학 무용학과 학부 논문 지도교수를 맡았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M발레단 단장과 Y발레단 대표 및 예술감독을 맡아 이론과 실기 두 분야를 아우르며 한국발레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무용인이다. 

특히 지난해 A&HCI급 학술지 중 무용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지닌 <Dance Research: 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Research>에 한국인 최초 단독 저자로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이루었고, 해당 논문의 주제인 한국창작발레 <오월바람>의 공연 사진이 표지에 실리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이와 연계하여 2022년 광주시립발레단 제131회 정기공연으로 올려진 <오월바람>의 연출을 맡아, 위 논문에서 제시한 관객의 다감각적 관람 경험에 대한 결과를 연출에 적용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양영은 M발레단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양영은 M발레단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양영은은 이러한 성취를 두고 “한국 창작발레를 국제 무용학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뿌듯했다”라고 전했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 발레의 위상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창작발레 존재 알리기가 필수적이라 말하는 양영은 단장은 이론과 실기가 함께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하나의 무대가 완성될 수 있다 말한다. 오랜 클래식 발레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발레를 만들어가는 양영은 단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발레와 무대 그리고 예술에 대해 들어봤다.

제14회 문화대상 젊은 예술가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당시 전하지 못한 소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발레가 더 성장하기 위해 현재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실제 우리가 창작 작업을 하고, 이 창작 작업들이 공연으로 계속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 성장 작업들, 레퍼토리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수정 보완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잘 인지되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2015년 처음 선보인 이후 올해까지 거의 매년 공연하고 있다. 사실 작품을 만들 땐 완벽하게 준비됐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려야만 보이는 보완점들이 있다. 이를 채워가는 방법은 계속 무대에 올리는 것뿐이다. 창작 작품이 한 번 공연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공연을 통해 더해지고 채워져 더 사랑받을 수 있길 바란다. 

수상 당시 “사람의 가슴에 와닿는 공연을 만들어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예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무엇보다 치유가 필요한 시기이고,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예술 작품 관람으로 관객의 감정적인 부분을 치료할 수 있다기 보다, 예술을 통해 무대 위 인물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를 공감하고, 작품에 온전히 몰입함으로써 일상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의 발레 공연들은 미학적인 움직임에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의 현대발레도 물론 가치가 있지만, 비전공자인 일반 관객들이 쉽게 즐기고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일이 잦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럽에서 발생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관객들의 요구에 의해 발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의 작품들이 올라온다는 이유로 그대로 가져와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추상적 관념을 움직임만으로 전달하기 위해선, 여기에 담긴 여러 층의 의미와 관객들의 수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주인공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염시키는 것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좋아한다.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주변에 앉은 사람을 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느끼는 걸 다른 사람도 느꼈다는 걸 피부로 알 수 있다. 단순히 시각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감정의 전이를 가져다주는 작품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양영은 M발레단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양영은 M발레단 단장 ⓒ김재성 사진기자

발레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다른 친구들에 비해 좀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어머니가 서울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셔서 예술에 조예가 깊으시다. 어머니가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시면 거기에 맞춰 춤을 추는 걸 좋아했다. 춤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머니가 발레를 권하셨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배우게 됐다. 고향인 대구를 떠나 이모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어머니의 제안으로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로열발레학교 썸머스쿨을 가게 됐다. 2주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교육 방식에 강한 끌림을 느꼈고, 그길로 곧장 영국 유학을 가고 싶다고 졸랐다. 

한국은 주로 솔로 안무 연습량이 많은데, 영국은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 연습을 먼저 시킨 후 주요 파트를 나눠서 맡고 합을 이루어 공연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에서는 주로 테크닉 위주의 트레이닝을 반복적으로 익혔는데, 영국에서는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 내가 가진 감정 안에서 움직임이 끌어올려지는 경험을 하니, 비로소 춤을 나의 표현 방식으로 인지하게 됐고 춤이 즐거워졌다. 

2주 간의 짧은 썸머스쿨과 본격적인 유학생활은 또 달랐을 것 같다. 공부하면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썸머스쿨은 말 그대로 체험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다들 희망차게 와서 행복하게 배우고 돌아간다. 하지만 영국 버밍엄 로열발레단 부속학교에 들어가자, 처음부터 다시 발레를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썸머스쿨 당시 느꼈던 ‘감정 표현 위주의 트레이닝’이라는 생각도 수업이 진행되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영국 유학의 동기를 부여해준 이곳의 표현 방식이 안무자의 감정을 많이 담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의 바탕에는 탄탄한 테크닉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어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발을 섬세하게 사용하는 트레이닝을 혹독하게 거쳤는데, 한 동작만 수십 수백 번씩 반복하곤 했다. ‘너의 모든 이야기를 발끝으로 전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처음 몇 달은 그만둬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힘들고 막막했지만, 그 기간을 견디고 나니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로열발레단 부속학교에서 공부했다면 자연스레 로열발레단 입단을 꿈꿨을 것 같은데, 이후의 행보는 조금 의외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이 학교에 다녔으니 나도 당연히 버밍엄 로열발레단에 입단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둔 시기에 큰 부상을 당했다. 발목뼈에 이상이 생겨 토(toe)를 거의 못 쓰는 상태가 되어 수술을 했는데, 회복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기회였고, 학교에선 약 20명의 학생들 중 남학생 두 명과 나, 총 3명이 오디션 멤버로 뽑힌 상태였다. 입단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상황이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로열발레단 오디션을 놓쳤다고 그간의 노력이 전부 날아가는 것은 아니니, 아픔을 딛고 계속 나아갔다. 졸업 후 1년 동안 유럽을 돌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독일의 한 발레단에서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았고, 다시 한 번 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사실 오디션을 보며 트레이닝을 받았던 1년은 재활이 필요했던 시기인데, 여러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이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발레단에 입단하면 한동안은 전과 마찬가지로 재활보다는 트레이닝에 더 집중하게 될 테니, 부모님은 재활을 하며 대학에 진학하기를 권하셨다. 힘든 선택이긴 했다.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라는 의심도 있었고, 일단 학교에 다니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니려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니 지도자 양성 과정 커리큘럼이 굉장히 타이트해, 학업에 매진하게 됐다.

영국에서의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대본과 연출 작업을 맡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작품에 참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중학생 때 처음 유학을 떠나, 한 15년 정도를 영국에서 보내다 보니 한국의 작업방식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만의 안무 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특히 안타까웠다. 같은 <백조의 호수>라도 볼쇼이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굉장히 다르다. 이를 두고 뭐가 다른지, 우리만의 스타일이 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작업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병남 선생님과 한국 발레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발레라는 장르 자체가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토착화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토착화에 필요한 과정들이 상실되고 있고, 해외 작품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이후 선생님이 M발레단 창단 계획을 알리셨을 때,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오랜 역사 가운데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더 와 닿을 수 있는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하고 싶었고,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

▲‘공감을 통한 춤의이해 5월의 바람을 바라보는 관객의 몸과 마음의 총체적 체험(Comprehending Dance through Empathy A Spectator’s Total Body-Mind Experience of Watching Wind of May)’ 논문 표지
▲‘공감을 통한 춤의이해 5월의 바람을 바라보는 관객의 몸과 마음의 총체적 체험(Comprehending Dance through Empathy A Spectator’s Total Body-Mind Experience of Watching Wind of May)’ 논문 표지

지난해 5월에는 국제학술지 ‘Dance Research: 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Research’(A&HCI급)에 한국인 최초 단독 저자 논문이 게재되는 성과를 이뤘다. 국제 학술지 표지 장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기쁨과 동시에 신기했다. 내가 논문을 투고한 댄스 리서치는 학술지 중에서도 굉장히 보수적인 저널이다. 댄스 크로니컬이나 댄스 에듀케이션 리서치 등이 다른 나라 투고자들에게 조금 더 오픈되어 있다면, 댄스 리서치는 영국 무용 저널 중에서도 교수님들의 논문이 주로 실리는 학술지다. 그래서 처음에 투고를 하면서도 ‘이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도전의 의미가 컸다. 바로 통과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는데, 표지를 하고 싶으니 사진을 보내달라는 편집장의 메일이 와서 너무 기뻐 순간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월바람>의 공연 사진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학술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한국의 창작 발레를 국제 무용학계에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어 정말 뿌듯했다. 이를 계기로 외국 학계에서 한국 발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국에서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창작 발레를 하는지 마는지 관심도 별로 없다. 이러한 가운데 이뤄낸 국제 학술지 표지 장식은, 전 세계에 우리나라 창작 발레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나의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해줬다.

이론적 연구영역과 실기적 창작영역을 아우르며 이론과 실기의 연계성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보통 이론 혹은 실기에 매진하게 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정에서 좌절을 느꼈을 때와 보람을 느꼈을 때를 각각 꼽아본다면?

두 가지 영역을 아우른다는 자부심도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론과 실기가 결국 무대 위에서 함께 어우러져야만 작품이 완성되는 건데, 마치 섞일 수 없는 두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쪽에 가면 ‘너는 이론 하는 애라, 무대 공연에 대해 뭐 알겠니?’라고 하고, 저쪽에 가면 ‘너는 무대 공연 하는 애가 이론을 얼마나 알겠니?’라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더 많이 활동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확실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구는 앉아서 하는 일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논문 하나를 쓰더라도 몇 달을 한 주제에 매진해야만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실기를 하고 있는 중에 이론적 연구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촘촘하게 시간을 배분해 계획을 짠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계획을 짜긴 하지만, 워낙 변수가 많은 것이 공연이다 보니 틀어질 때가 많다.

지난해 광주시립발레단 제131회 정기공연 무대에 오른 <오월바람>은, 논문으로 밝혀낸 이론적 연구와 실기적 창작활동의 연계성을 연출로서 직접 실현해내는 작업의 결과물이 됐다. 굉장한 성취감을 느꼈고, 앞으로도 이론과 실기의 영역을 연결하며 한국 창작발레의 깊이를 더해가고 싶다는 다짐의 계기가 됐다.

▲양영은 M발레단 단장이 인터뷰 중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재성 사진기자
▲양영은 M발레단 단장이 인터뷰 중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재성 사진기자

해보지 못한, 앞으로 해보고 싶은 무용 작품이나 예술적 시도가 있다면?

M발레단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꼭 하고 싶다. 이를 위해 연구도 하고 있고, 자료 조사도 많이 다니고 있다. 장군의 업적에 걸맞은 대작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문학을 다루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고자 한다. 점점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 않나. 발레에 문학을 접목해, 무대를 보고 나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시간을 주고, 나아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2021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 <서울밤, 꿈속에서>를 통해 ‘춤추는 문학 시리즈1’을 처음 선보였다. 유희경 시인의 시 <꿈속에서> 안에 함축된 감정들이 춤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대본을 집필했고, 현대적이면서도 서정미가 돋보이는 안무와 연출을 선보이려 했다. ‘춤추는 문학 시리즈’를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해보려 한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은 어떤 의미로 남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게 아니라, 지금껏 내가 소신을 가지고 해왔던 작업들에 대해 인정을 받는 첫 번째 순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길이었고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 고민들에 대한 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해나가는 게 맞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해도 좋다’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14년 동안 이 시상식에서 수상하신 분들을 살펴보면, 각자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뤄내고 인정을 받아오지 않았나. 아무에게나 이유 없이 주시는 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수상한 부문이 ‘젊은 예술가상’이라 더욱 좋았다. 보통 젊은 예술가라 하면 나이가 어린, 청년들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에서의 ‘젊음’은 비단 나이로 규정짓지 않는다. 각자의 예술 분야에서 자신만의 예술관을 가지고 무언가를 이뤄가는 사람에게 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더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이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젊은예술가 상을 수상한 양영은 M발레단장과 딸이 함께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젊은예술가 상을 수상한 양영은 M발레단장과 딸이 함께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올해의 계획이 궁금하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 전 수정이 필요한 부분들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논문도 하나 준비하고 있고, 오는 6월 경 앞서 말씀드린 ‘춤추는 문학 시리즈’의 일환으로 황순원의 <소나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세계적으로 K-컬처 열풍이 불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문화예술이 가진 힘에 대한 인정이 부족하다. 특히 교육 환경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경제적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100원을 투자해 200원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 지원과 투자를 통해 이 나라를 대표할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적극적으로 조성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가운데 그리고 나의 글이나 연구, 그리고 공연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