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한 말러 교향곡 <부활>
[이채훈의 클래식비평]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한 말러 교향곡 <부활>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3.02.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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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셴바흐, KBS교향악단, 청중이 함께 만든 감동의 연주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비통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시청앞 분향소에서 유족과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을 보았다. 애도하는 방법을 놓고도 충돌하는 나라, 해결의 전망 없이 표류하는 여야 다툼, 끝없이 추락하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 힘 없는 일개 시민이 느끼는 무력감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말러 2번 <부활>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축하하는 연주회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나는 삼중의 이방인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고,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며, 세계인 속에서는 유태인이다.” 어릴 때 ‘제2의 슈베르트’란 별명으로 불린 그는 슈베르트의 ‘방랑자’보다 더 치명적인 ‘디아스포라’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열네 형제 중 둘째였던 그는 어린 동생들의 잇따른 죽음에 상처받았고, 이 경험을 음악에 담았다. 교향곡 2번 <부활>은 ‘장례식’으로 시작한 건 그에게 자연스런 일이었다. 에셴바흐 지휘 KBS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말러의 <부활>, 이 곡에 대한 나의 편견과 기대를 내세우지 않고 그냥 마음을 맡기기로 했다. 

비통함이 비통함을 위로한 걸까.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의 ‘장례식’. 현악 파트가 연주하는 첫 부분은 마음을 적셨다. 그 동안 익숙하던 다른 연주보다 조금 빠른 템포였다. 땅에 늘어붙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적당한 이 템포가 바로 ‘알레그로’ 아닐까. 포르티시모의 투티(모든 연주자가 다함께 연주하는 대목), 그 통곡으로 넘어갈 때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올해 83살 크리스토프 에셴바흐는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전세계에 알려져 있다. 그는 자기 주관과 열정을 앞세우며 음악을 이끌려 하지 않았다. 강약 다이내믹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았고, 플루트 솔로와 바이올린 솔로가 등장할 때 굳이 루바토를 구사하지도 않았다. 그는 음악이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물길을 열어주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노대가가 보여줄 수 있는 원숙의 경지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KBS 교향악단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다. 현악, 목관, 금관 파트는 물론, 타악 파트의 일치된 호흡이 치열한 연습의 흔적을 증언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말러에 익숙해진 일부 매니아들은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KBS 교향악단은 이날 연주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청중들도 연주에 참여했다, 3층 객석까지 꽉 메운 청중들은 숨소리 하나 없이 음악에 몰입하여 연주자들과 일체감을 이루었다. 한 공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 코로나 때문에 단절됐던 인간의 유대가 거뜬히 이어진 것, 이게 바로 ‘부활’의 의미가 아닐까. 

2악장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현의 질감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특히 첼로가 노래할 때 바이올린이 목소리를 낮춰서 첼로를 돋보이게 한 대목은 감동이었다. 피치카토의 호흡은 상쾌하고 편안했다. 삶의 따뜻한 순간에 대한 회고랄까,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수많은 기억들이 살아 있음을 일깨워준 대목이었다. 3악장,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매혹적인 악몽이었다.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의 중세 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를 사용한 대목이다. 끔찍한 일상을 헤쳐나가는 힘을 유머에서 얻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개벽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대목에서 청중들은 다시 끔찍한 일상의 현실을 마주했다. 

▲에셴바흐 지휘, KBS교향악단 <부활> 공연 커튼콜 ⓒ이채훈
▲에셴바흐 지휘, KBS교향악단 <부활> 공연 커튼콜 ⓒ이채훈

오케스트라는 호흡이 잘 맞았지만, 1악장 마지막 행진곡의 끝부분에서 트럼펫의 화음이 미세하게 빨리 나왔다. 음표만큼 쉼표도 섬세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그 쉼표를 갉아먹은 아쉬움이 있었다.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에서 부정 출발 때문에 흐름이 덜컥거린 느낌이랄까…. 4악장 태초의 빛(Urlicht)에서 메조소프라노도 조금 빨리 나왔다는 느낌을 주었다. 3악장에 이어서 휴식없이 노래하도록 돼 있지만, 마지막 음표의 여운이 사라지고 침묵이 시작되는 순간에 나와야 하는데 조금 서둘러 나온 느낌이니 아차 싶었다. 그런데, 메조소프라노 양송미의 노래는 너무나 훌륭했다! 꽉찬 음성, 정확한 음정, 풍부한 표정으로 세상의 고뇌를 증언하고 천상을 향해 몸부림치며 나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바이올린 솔로, 플루트 솔로와 어우러지는 대목은 절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침내 5악장, 말러가 오랜 세월 완성하지 못하고 고민한 대목, 한스 폰 뷜로의 장례식장에서 클롭슈토크의 ‘부활의 송가’를 듣고서야 작곡할 수 있었던 피날레…. 천지개벽 같은 오케스트라의 포효는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멀리서 들리는 호른 소리, 플루트가 가세하는 저승의 꾀꼬리 소리는 절묘했고, 하늘로 상승하는 부활의 패시지는 찬란했다. 모든 타악기들이 크레센도하는 대목은 심장이 멎을 듯한 긴장을 안겨주었다. 소프라노 이명주과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그리고 고양시립합창단과 노이오페라코러스가 등장하는 부활의 송가에서 음악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옥의 티를 찾자면, 무대밖의 트럼펫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려서 신비스런 느낌이 사라진 것은 아쉬웠다. 무대 밖에서 연주하는 호른은 음량과 느낌이 적절했는데 트럼펫은 너무 크게 들려서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해 몰려가는 죽은 자들의 무시무시한 행렬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트럼펫 연주자들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어느 곳에 자리하는 게 최상이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무대 측면 문밖이라면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주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피날레에서 종소리가 너무 큰 반면 오르간 소리가 너무 작았던 것도 조금 아쉬웠다. 

90분의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10여분간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 지휘자 에셴바흐에게 보내는 존경의 박수이자 혼신의 힘을 다한 KBS교향악단, 성악가와 합창단에게 보낸 찬탄의 박수였다. 또한 개관 30주년을 맞는 예술의전당에게 보내는 감사의 박수이기도 했다. 청중, 연주자, 예술의전당이 하나로 어우러진 감동의 연주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