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간 170여 회 퍼포먼스, 쉬지 않은 예술 활동
‘신문’, ‘퍼포먼스’, ‘사진’으로 정의되는 성능경의 예술세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1970년대 우리나라의 전위적 실험미술을 이끌며, 작품을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예술 활동을 멈추지 않은 성능경 작가의 전시가 개최된다. 생애 여섯 번째 개인전이자, 상업 갤러리에서는 두 번째 개인전인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이다. 전시는 백아트 서울에서 22일부터 4월 30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22일 공식적인 전시 오프닝 전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성능경은 “항상 나는 나를 소개할 때, 나를 논 프로핏(non profit) 작가, 논 파퓰러(non popular) 작가라고 말한다. 평생의 예술 활동 기간 중에 개인전을 총 다섯 번 했는데, 올해에만 다섯 번의 전시가 준비돼 있다. 고목에 꽃이 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55년의 예술 활동 기간 동안 170여 회의 퍼포먼스로 자신의 존재를 공고히 다져온 작가가 현재를 돌아보며 전한 말이다.
백아트에서 펼쳐지는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전시는 성 작가 생애 두 번째 갤러리 전시다. 그는 상업적 작품 활동과는 거리가 먼 작가였다. 1970년대부터 개념미술, 아방가르드 미술, 퍼포먼스를 행해온 그의 미술은 미술 시장의 관심과는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의 첫 상업 갤러리 전시는 1991년 대구 삼덕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였다. 삼덕 갤러리는 상업화랑이긴 했지만 판매에 주력하는 화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성 작가는 2009년에서야 생전 처음 아르코 미술관에 작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성 작가는 올해만 벌써 다섯 번의 전시를 선보이게 됐다. 백아트 개인전을 시작으로 5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체전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에 참여하고 이 전시는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이어진다. 같은 5월 달에 자하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갖는다. 8월 말에는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9월에는 리만머핀 뉴욕에서 개인전을 개최 한다.
언론간담회에선 갑작스레 시대의 호명을 받게 된 성 작가에게 ‘왜 지금에서야 부름을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성 작가는 “팔자라고 생각한다”라는 답을 전하면서도, 겸손한 대답을 이었다. 그는 “굉장히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해외 갤러리들의 제안을 받으면서 1999년 뉴욕 퀸즈뮤지엄에서 개최한 《세계 개념미술의 기원(Global Conceptualism : Point of Origin 1950s~1980s)》에 참여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의 작품으로 지금 나를 부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들은 항상 검색을 하고 작가를 찾고 있는데, 이제 나한테 그 순서가 온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답했다.
최근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로 쏟아지는 관심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전했다. 성 작가는 “실험미술의 시작은 어찌됐든 서양에서 시작되긴 했다. 서양에서 시작된 미술이 다세계에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그 결과를 확인하고자 하는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동시에 1970년대 그 시대의 언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떤 사회를 보고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지금 시대가 궁금해 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번 성능경 작가 언론간담회는 조금 특별한 형식이었다. 간담회에서 대게 필수적으로 행해지는 전시투어가 없었는데, 이는 22일 오후 5시에 예정돼 있던 오프닝 전까지는 작품을 은박지로 모두 덮어서 공식 공개를 하지 않기로 한 성 작가의 결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성 작가는 ‘은박지’로 작품들을 가린 것일까. 성 작가는 상이 맺히지 않고 빛을 받으면 난반사되는 모습에 주목해 은박지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성 작가는 “작품을 은박지로 덮어둔 이유는 ‘예술이 만만하지 않다’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예술가가 예술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얻어낸 결과물들을 함부로 보지 말아라, 한 겹을 더 들춰내서 작품을 감상하라는 뜻을 담고자 했다”라고 은박지 행위에 대해서 설명했다. 작품을 덮어놓은 은박지들은 22일에 행해지는 성능경의 퍼포먼스 <아무것도 아닌 듯>을 통해서 제거됐다.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전시에서는 성 작가의 1970년대 초기 대표작부터 최근작까지 공개한다. 성 작가는 한국 미술계에 매체로서의 사진을 도입한 거의 초창기 인물이다. 그는 사진을 주요매체로 등장시키면서 자신의 행위 작업을 남겼다. <끽연>(1976), <위치>(1976), <수축과 팽창>(1976), <어느 도망자>(1977), <현장>(1979-2013) 등은 초창기에 남긴 행위 작업들이다. 사진 작업임에도 1970년대 성 작가의 작품은 에디션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 백 아트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오리지널 작품이다.
성능경의 작품세계에서 ‘신문’, ‘퍼포먼스’, ‘사진’은 주요 키워드로 꼽힌다. ‘사진’에 대한 관심은 신문 작업에서 시작됐다. 신문 접기, 읽기, 편집하기 등 다채로운 행위 작품을 선보이던 그는 신문에서 기사를 오려내고 나니 남는 광고와 사진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성능경은 미술의 물질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데에 주목했다.
성 작가는 “예술 중에 음악, 시, 소설, 극은 모두 물질성이 없다. 그런데 미술만이 물질성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상업성과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 그 물질성을 없애고, 미술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져나간 것이 개념 미술이었다.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 행위 작업을 이어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 작가는 1970년대 당시 광고와 이미지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 때 ‘사진’이 가장 탈물질적인 것이라고 봤다. 그가 ‘사진’에 집중하게 된 이유였다. 성 작가는 “글은 정말 수십 개의 문장으로 무엇을 묘사한다고 해도, 물질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단 한 장의 사진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이 언어의 맹점이다. 그런데 사진은 물질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음에도, 사진을 설명하는 ‘캡션’이 없으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없다. 이것이 사진의 맹점이다”라고 말하며 신문과 사진으로 이어진 그의 작업을 아우르는 개념을 설명했다.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백두산 생수병을 이용한 <백두산>, 최근 마무리한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 연작, 여전히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 연작 등이 있다.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는 수년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영어 교육 섹션을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기고 그림을 남긴 연작이다. 초기에는 심플한 형태를 보였으나, 점차 글자와 콜라주가 정교해지고 한 장의 또 다른 작품이 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총 4천여 장의 작품을 만들었으나, 완성본은 2,800장이고, 이번 전시에는 그 중 일부를 전시한다.
지금도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은 말 그대로 밑을 그린 그림으로, 작가는 2020년 7월부터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이를 앱 프로그램을 이용해 컬러링했다. 작가는 이를 생리 미술, 일종의 피지올로지컬 아트(Physiological Art)라고 명명했다. 일상의 단편을 예술에 차용함으로써 삶과 예술의 관계를 교착시키고 혼돈을 유발하는 작가의 태도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성 작가는 자신 만의 예술론을 정리하고 있다. ‘일행십자총백자예술론(一行十字總百字藝術論)’이라는 제목의 예술론은 “1) 예술은 비싼 싸구려이다. 2) 예술은 소통의 불통이다. 3) 예술은 쉽고 삶은 어렵다. 4) 예술은 직관의 폭력이다. 5) 예술은 남 말로 내 말한다. 6) 예술은 착란의 그림자다. 7) 예술은 푸지게 퍼져 있다. 8) 예술은 무관의 아우라다. 9) 예술은 죽고 작가는 없다. 10) 예술은 꿈꾸는 자유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생애 여섯 번째가 되는 성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그가 견지해온 예술적 태도와 가치관이 담겨있다. 작가 성능경은 ‘어디서 본 듯 한 미술하지 않겠다’라는 신념으로 작품을 이어왔다. 긴 세월 간 이어진 독보적인 예술과 한국 실험미술의 한 줄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지금 시대에 새롭게 호명되고 있는 그의 작품으로 한국 미술계의 또 다른 지류를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