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성능경 개인전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 “예술 아닌 것을 예술로 만드는 행위”
[현장스케치] 성능경 개인전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 “예술 아닌 것을 예술로 만드는 행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2.22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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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트 서울, 2.22~4.30
55년간 170여 회 퍼포먼스, 쉬지 않은 예술 활동
‘신문’, ‘퍼포먼스’, ‘사진’으로 정의되는 성능경의 예술세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1970년대 우리나라의 전위적 실험미술을 이끌며, 작품을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예술 활동을 멈추지 않은 성능경 작가의 전시가 개최된다. 생애 여섯 번째 개인전이자, 상업 갤러리에서는 두 번째 개인전인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이다. 전시는 백아트 서울에서 22일부터 4월 30일까지 관람객을 만난다.

▲(좌측부터) 끽연, 1976, Gelatin silver print, 25.4x20.3cm, (17prints), ed.mono_4
▲(좌측부터) 끽연, 1976, Gelatin silver print, 25.4x20.3cm, (17prints), ed.mono_4/끽연, 1976, Gelatin silver print, 25.4x20.3cm, (17prints), ed.mono_5 (사진=백아트 제공)

22일 공식적인 전시 오프닝 전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성능경은 “항상 나는 나를 소개할 때, 나를 논 프로핏(non profit) 작가, 논 파퓰러(non popular) 작가라고 말한다. 평생의 예술 활동 기간 중에 개인전을 총 다섯 번 했는데, 올해에만 다섯 번의 전시가 준비돼 있다. 고목에 꽃이 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55년의 예술 활동 기간 동안 170여 회의 퍼포먼스로 자신의 존재를 공고히 다져온 작가가 현재를 돌아보며 전한 말이다.

백아트에서 펼쳐지는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전시는 성 작가 생애 두 번째 갤러리 전시다. 그는 상업적 작품 활동과는 거리가 먼 작가였다. 1970년대부터 개념미술, 아방가르드 미술, 퍼포먼스를 행해온 그의 미술은 미술 시장의 관심과는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의 첫 상업 갤러리 전시는 1991년 대구 삼덕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였다. 삼덕 갤러리는 상업화랑이긴 했지만 판매에 주력하는 화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성 작가는 2009년에서야 생전 처음 아르코 미술관에 작품을 판매했다.

▲22일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성능경 작가(우측) ⓒ서울문화투데이

하지만 성 작가는 올해만 벌써 다섯 번의 전시를 선보이게 됐다. 백아트 개인전을 시작으로 5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체전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에 참여하고 이 전시는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이어진다. 같은 5월 달에 자하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갖는다. 8월 말에는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9월에는 리만머핀 뉴욕에서 개인전을 개최 한다.

언론간담회에선 갑작스레 시대의 호명을 받게 된 성 작가에게 ‘왜 지금에서야 부름을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성 작가는 “팔자라고 생각한다”라는 답을 전하면서도, 겸손한 대답을 이었다. 그는 “굉장히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해외 갤러리들의 제안을 받으면서 1999년 뉴욕 퀸즈뮤지엄에서 개최한 《세계 개념미술의 기원(Global Conceptualism : Point of Origin 1950s~1980s)》에 참여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의 작품으로 지금 나를 부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들은 항상 검색을 하고 작가를 찾고 있는데, 이제 나한테 그 순서가 온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답했다.

최근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로 쏟아지는 관심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전했다. 성 작가는 “실험미술의 시작은 어찌됐든 서양에서 시작되긴 했다. 서양에서 시작된 미술이 다세계에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그 결과를 확인하고자 하는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동시에 1970년대 그 시대의 언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떤 사회를 보고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지금 시대가 궁금해 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수축과 팽창, 1976, Gelatin silver print, 27.2x27.8cm, (12prints), ed.mono_10 (사진=백아트 제공)
▲수축과 팽창, 1976, Gelatin silver print, 27.2x27.8cm, (12prints), ed.mono_10 (사진=백아트 제공)

이번 성능경 작가 언론간담회는 조금 특별한 형식이었다. 간담회에서 대게 필수적으로 행해지는 전시투어가 없었는데, 이는 22일 오후 5시에 예정돼 있던 오프닝 전까지는 작품을 은박지로 모두 덮어서 공식 공개를 하지 않기로 한 성 작가의 결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성 작가는 ‘은박지’로 작품들을 가린 것일까. 성 작가는 상이 맺히지 않고 빛을 받으면 난반사되는 모습에 주목해 은박지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성 작가는 “작품을 은박지로 덮어둔 이유는 ‘예술이 만만하지 않다’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예술가가 예술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얻어낸 결과물들을 함부로 보지 말아라, 한 겹을 더 들춰내서 작품을 감상하라는 뜻을 담고자 했다”라고 은박지 행위에 대해서 설명했다. 작품을 덮어놓은 은박지들은 22일에 행해지는 성능경의 퍼포먼스 <아무것도 아닌 듯>을 통해서 제거됐다.

《아무 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 행각》전시에서는 성 작가의 1970년대 초기 대표작부터 최근작까지 공개한다. 성 작가는 한국 미술계에 매체로서의 사진을 도입한 거의 초창기 인물이다. 그는 사진을 주요매체로 등장시키면서 자신의 행위 작업을 남겼다. <끽연>(1976), <위치>(1976), <수축과 팽창>(1976), <어느 도망자>(1977), <현장>(1979-2013) 등은 초창기에 남긴 행위 작업들이다. 사진 작업임에도 1970년대 성 작가의 작품은 에디션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 백 아트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오리지널 작품이다.

▲전시 공식 오픈 전 은박지로 가려진 작품들 ⓒ서울문화투데이

성능경의 작품세계에서 ‘신문’, ‘퍼포먼스’, ‘사진’은 주요 키워드로 꼽힌다. ‘사진’에 대한 관심은 신문 작업에서 시작됐다. 신문 접기, 읽기, 편집하기 등 다채로운 행위 작품을 선보이던 그는 신문에서 기사를 오려내고 나니 남는 광고와 사진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성능경은 미술의 물질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데에 주목했다.

성 작가는 “예술 중에 음악, 시, 소설, 극은 모두 물질성이 없다. 그런데 미술만이 물질성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상업성과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 그 물질성을 없애고, 미술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져나간 것이 개념 미술이었다.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 행위 작업을 이어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 작가는 1970년대 당시 광고와 이미지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 때 ‘사진’이 가장 탈물질적인 것이라고 봤다. 그가 ‘사진’에 집중하게 된 이유였다. 성 작가는 “글은 정말 수십 개의 문장으로 무엇을 묘사한다고 해도, 물질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단 한 장의 사진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이 언어의 맹점이다. 그런데 사진은 물질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음에도, 사진을 설명하는 ‘캡션’이 없으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없다. 이것이 사진의 맹점이다”라고 말하며 신문과 사진으로 이어진 그의 작업을 아우르는 개념을 설명했다.

▲간담회에서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 연작을 공개하는 성능경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백두산 생수병을 이용한 <백두산>, 최근 마무리한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 연작, 여전히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 연작 등이 있다.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는 수년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영어 교육 섹션을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기고 그림을 남긴 연작이다. 초기에는 심플한 형태를 보였으나, 점차 글자와 콜라주가 정교해지고 한 장의 또 다른 작품이 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총 4천여 장의 작품을 만들었으나, 완성본은 2,800장이고, 이번 전시에는 그 중 일부를 전시한다.

지금도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은 말 그대로 밑을 그린 그림으로, 작가는 2020년 7월부터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이를 앱 프로그램을 이용해 컬러링했다. 작가는 이를 생리 미술, 일종의 피지올로지컬 아트(Physiological Art)라고 명명했다. 일상의 단편을 예술에 차용함으로써 삶과 예술의 관계를 교착시키고 혼돈을 유발하는 작가의 태도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성 작가는 자신 만의 예술론을 정리하고 있다. ‘일행십자총백자예술론(一行十字總百字藝術論)’이라는 제목의 예술론은 “1) 예술은 비싼 싸구려이다. 2) 예술은 소통의 불통이다. 3) 예술은 쉽고 삶은 어렵다. 4) 예술은 직관의 폭력이다. 5) 예술은 남 말로 내 말한다. 6) 예술은 착란의 그림자다. 7) 예술은 푸지게 퍼져 있다. 8) 예술은 무관의 아우라다. 9) 예술은 죽고 작가는 없다. 10) 예술은 꿈꾸는 자유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생애 여섯 번째가 되는 성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그가 견지해온 예술적 태도와 가치관이 담겨있다. 작가 성능경은 ‘어디서 본 듯 한 미술하지 않겠다’라는 신념으로 작품을 이어왔다. 긴 세월 간 이어진 독보적인 예술과 한국 실험미술의 한 줄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지금 시대에 새롭게 호명되고 있는 그의 작품으로 한국 미술계의 또 다른 지류를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