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갤러리, 장준호 "Neon after Nature" 개인전 개최
삼정갤러리, 장준호 "Neon after Nature" 개인전 개최
  • 오형석 기자
  • 승인 2023.02.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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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부터 3월 1일 까지 부산 서면 삼정타워 8층 전시실
장준호 작 '무제(Untitled)' wood, neon_139x26x20cm_2023(사진 제공_삼정갤러리)

[서울문화투데이 오형석 기자] 삼정갤러리는 장준호의 개인전 'Neon after Nature'을 지난 17일부터 오는 3월 1일까지 개최한다. 

장준호는 주변에서 발견한 잘려진 나무 조각들을 재료로 활용하여 그 겉면을 다듬고 깎아내 조합하거나 원래 형상을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나뭇가지의 고유한 형태와 물성을 미적 대상으로 승격시키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나뭇가지라는 자연 대상을 제도의 틀 안에 들여와 일종의 은유를 제시하는 장준호의 작업은 문화에서 자연으로 돌아가 언어 이전의 경험을 환기하려 한 반-산업적 예술 전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신작들에 새로이 등장한 네온이라는 산업 생산물은 단지 산업화 이전 시대의 재료와 절차로 회귀하려는 반동적 태도에 맞서 특유의 복합적인 제스처를 취한 아르떼 포베라 조각가 마리오 메르츠의 작업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장준호의 네온 사용은 문자 기호를 매개로 어떤 메세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네온 빛의 선을 토대로 나뭇가지의 형태를 모방하려는 조형적 행위의 결과물이자 시적인 장치로서 기능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작가가 신체 노동을 통해 깎아내고 다듬어낸 나뭇가지의 형상과 기술공이 그 선을 본떠 정교하게 제작한 네온 조명 사이의 절묘한 조응은 자연물이 지닌 근원적 순수성을 따라가고자 시도한 작가의 변증법적 예술 기획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손길에 내재한 장인적 성격의 원시성과 네온 빛이 지시하는 과학기술적 근대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마주한다. 동시에 관람객은 자연물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려 애쓴 듯한 인공조명의 공간 속 드로잉을 숨죽여 음미하는 독특한 이중성을 경험하게 된다.

장준호 작 '무제(Untitled)' wood, neon_149x89cm_2023(사진 제공_삼정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3차원 공간을 차지하는 조각 작품은 작가가 2020년에 제작한 <4개의 점을 위한 6개의 선>의 변주이다. 구부러진 나뭇가지 여섯 개를 절단하고 접합하여 만들어낸 삼각뿔 형태의 조형물을 작가는 ‘완벽한 선’들의 조합으로 구현한 ‘가장 완벽한 도형’이라 부른다. 여섯 개의 나무 선 중 하나를 그대로 재현하여 덧붙인 네온 조명은 어둠 속에서 공간을 가로질러 마치 ‘생명’과 ‘가능성’을 담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인 양 빛을 뿜어낸다. 

전시장을 걸어가면 바닥에 길게 뻗은 하나의 굴곡진 나뭇가지가 허물처럼 비슷한 모양새를 띈 네온 빛을 등에 업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역시 자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선을 따라 그려보고자 한 인공조명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조금 떨어진 곳에는 네 개의 발을 딛고 서 있는 듯한 나무 입체가 마찬가지로 그 유연한 선들을 네온의 빛을 빌려 한껏 뽐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보는 이의 상상력에 따라 자율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생명체로 착각하기에 충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Neon after Nature' 삼정갤러리 전경(사진 제공_삼정갤러리)

장준호는 여전히 나무의 물성을 지녔으나 모종의 가공이 가미된 나무 합판을 또 다른 새로운 재료로서 선택하여 네온 빛을 담은 원형의 진공관과 조응시켜 벽면에 설치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 작업은 합판-네온의 조화를 통해 계기월식과 같은 자연 현상을 모방하는 유사자연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자 한 시도이다. 이같이 차가운 산업재료와 따뜻한 생명의 흔적 사이의 이원적 관계를 과감히 전복시켜 빛과 선의 변주곡을 선보인 장준호의 작업은 미학자 빌헬름 보링거의 예술 의욕(Kunstwollen) 이론을 역설적으로 떠오르게 한다.

보링거는 인간의 근원적 심리욕구인 예술 의욕을 추상 충동과 감정이입 충동으로 구분하고 양자의 관계를 상호 대립적인 쌍으로 설정하는데, 장준호의 유사자연 형상에 있어서 두 개념은 결코 대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장준호의 나무-네온 조각은 자연물의 형태를 따라가려 한 네온 빛, 즉 자연 대상의 예술적 모방을 통해 추상에 접근한 ‘감정이입적 추상’이라는 미학적 변증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연 대상이 지닌 유연한 아름다움에서 만족을 발견할 때, 즉 인간과 자연이 친화적인 관계를 맺을 때 환기되는 미적 쾌감은 감정이입의 예술 의욕을 불러일으켜 세계를 모방하려는 자연주의적 예술 양식을 탄생시킨다. 반면, 인간과 세계가 대립적일 때 형성되는 부조화의 감정은 자연의 사실적 재현이 아닌 추상적인 예술 양식을 성립시킨다는 것이 보링거의 이원론적 견해이다. 

장준호의 작업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문명적 진보라는 모순적인 교차로에서 두 대립항을 융합하는 유기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무한한 변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이 빛과 선의 소리 없는 역동적 향연처럼 느껴지는 것은 보는 이에게 조형적 미와 더불어 시적인 은유를 감지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