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떡은 떡 다워야 제일 맛있소”
“그래도 떡은 떡 다워야 제일 맛있소”
  • 편보경 기자
  • 승인 2010.02.04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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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명가, 흉내 낼 수 없는 옛날 방식 떡 맛 고수, 원조 낙원 떡집 이광순 대표

손 끝에서 정성이 실린다는 말을 90년간 한 결 같이 실천해 온 장인가가 있다. 90년 명가인 원조 낙원 떡집이 바로 그 주인공.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이 변해도 훈훈한 옛 정이 그리워지는 것은 변함없을 터, 옛날 방식을 고스란히 고수하며 장인정신을 이어 온 낙원 떡집이 그 그리움을 자극한다.
한류와 떡 마케팅을 타고 화려한 형형색색 조그맣고 앙증맞은 떡들이 쏟아지고 있는 이때에 그래도 ‘역시 떡은 넉넉하면서도 두톰한 것이 제 맛’이라는 이광순 대표와 종로 70년 토박이로 구민들과 함께 하면서 이 대표의 곁을 평생 지켜온 온 단짝(남편) 김정귀 회장(종로자유총연맹지회장)은 주변에서 ‘자식 농사’까지도 최고로 잘 지었다고 칭송받는 우리나라 ‘대표 위인’들이었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떡집명가의 구수하고 훈훈한 떡 냄새를 맡고 왔다.
  

“며느리는 어떻게 생각 하냐고요? 뭐 별로 좋아하진 않지 뭐.”

90년 명가 낙원떡집 이광순 대표

90년 명가 낙원 떡집을 운영해온 이광순 대표는 둘째인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을 예정으로 현재 인사동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자랑스러운 듯 퉁명스레 한마디를 툭 던진다.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된 떡 장인가, 100프로 유기농 재료 손으로 직접 만드는 법 고수

90년 전통의 낙원 떡집. 떡 만드는 새벽을 지켜온 그 역사를 말하자면 이 대표의 외 할머니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대표의 외할머니께서 궁궐의 상궁으로부터 떡 만드는 기술을 전수 받은 이래로 대대로 이어지게 됐다.

낙원 떡집은 떡명가답게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집하며 손을 직접 사용해 만드는 떡을 매일 3~40여 가지를 빚어낸다. 명가답게 재료 또한 100프로 유기농 재료들만 쓰고 있다.

“저희 집은 전통을 지켜가기 때문에 옛날식으로 떡을 만듭니다. 모든 음식이 손맛인데 기계를 돌리고 그러면 맛이 안나요. 손으로 하게 되면 떡 맛의 묘미가 살아나고요. 손으로 하면만드는 시간이 오래가긴 하지만 이렇게 재래식으로 떡을 만들어야 맛도 좋고 오래가요.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 떡에 대해서도 마지막 부분은 반드시 손을 거칩니다. 재료도 100프로 국산 유기농을 사용합니다. 쑥은 제주도에서 해오고 쌀은 경기도에서 해오고 견과류도 우리는 국산 것만 씁니다. 우리는 정말 명품 떡을 만들고 싶으니까요. 재료를 국내산 최상급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럼 장인 명가의 대표 주자 떡은 무엇일까? 바로 두텁떡이다.

“두텁떡은 할머니 때부터 만들었으니 한 10년 가까이 만들어 온 떡이지요. 근래 와서 색도 변하고 모양도 더 예쁘게 변해 인기가 좋아요. 동그랗게 만들어서 시루에 하나하나 찌는데 예전에는 잣, 호두를 비롯한 12가지 견과류 재료를 겉에다가 발랐는데 요즘은 그것을 속에다 넣어서 오히려 사람들이 더 좋아해요. 두텁떡이 제일 손이 많이 가는 떡이기도 해요. 하나하나 재료를 선별하고 속도 일일이 다 볶아야 하니까 말이죠.”
옛날식을 고집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낙원 떡도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진화해 왔다. 그러나 ‘떡은 떡 다워야 된다’는 이광순 대표는 최근 너무 ‘과자스럽게’ 나오는 떡들이 사실 맘에 들지 않는단다.

떡은 떡 다워야...두툼하고 맛깔스럽게

낙원떡집에서 만드는 다양한 떡들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요즘 떡이 갖가지 모양으로 기교를 부리고 있는데 저희들도 그런 것을 많이 연구해서 개발 했어요. 영양 떡을 반듯하게 만들어서 선물용으로 내 놓았고 쑥 인절미를 매일 아침 식사대용으로 낱개 포장을 해서 만들고 있는데 주문을 많이들 해 가시지요. 하지만 저희는 시대에 발맞추긴 하되 그래도 떡 본연의 모습을 살리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나오는 떡들이 너무들 과자 같이 만드는데 그런 것은 떡 본연의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 같아서 전 좀 싫더라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옛날 같았으면 이바지 떡을 할 때도 자르지도 않고 길게 하고 푸짐하게 하는데 요즘은 하나하나 포장해서 하는 것을 원하지요. 하지만 내가 아무리 고집하려 해도 시대에 따라 가야하니까 맞추긴 하되 그래도 떡의 본연의 모습을 살려 조금 두툼하고 먹기 좋게 만들려고 하고 있죠.”

떡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법을 묻자 ‘배고플 때 먹는 게 제일’이라는 농섞인 대답과 함께 떡과 어울리는 음식을 짚어준다.

“시루떡은 동치미랑 나박김치하고 먹어야죠. 겨울 명절 때는 인절미하고 동치미하고 같이 먹어야 하고요. 수정과 하고 인절미도 잘 어울리지요. 두텁떡은 차하고 먹을 때 그 맛이 최고죠. 계절적으로는 봄 가을이 떡이 가장 맛있을 때에요. 그 때는 결혼식도 많기도 하고요. 떡 맛이 여름에는 빨리 쉬고 겨울에는 빨리 굳고 그러니까 우리 입맛에는 아무래도 봄가을에 훨씬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만약 떡집을 하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어 있었을 것 같다는 이 대표는 떡 명가를 지켜오기 위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육체적인 고된 노동이었다며 힘들었던 나날들을 회고했다. 그러나 그 정성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어 이날 까지 오게 된 것이란다.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원하는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고 모든 일이 손끝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쉽지 않죠. 그런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떡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어 그대로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해요. 인천, 수원, 대전 같은 아주 먼데서도 우리 떡 맛을 보고 싶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고요. 이름만 들으면 단 번에 알 수 있는 그런 유명하신 분들도 우리 집 단골이시죠. 얼마 전에는 이명박 대통령님 내외도 생신 때 떡을 해 가셨고 현대 건설 사모님 같은 분들도 단골 중에 단골손님이시고요. 송해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죠.”

그동안 떡집을 하면서 감동적이거나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한 나이 드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집 떡이 꼭 먹고 싶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참 감동이 되더라고요. 또 한 번은 85세를 생신을 맞으시는 분이 생신 떡을 주문했는데 그만 돌잔치용 떡이랑 바꿔져서 배달 된 경우가 있었어요. ‘축 첫돌’이라고 쓰여진 떡이 배달 됐는데 더 좋아들 하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낙원 떡집 이름 도용 많아...국가 차원에서 장인가 예우 해 줘야

낙원 떡집이 인기다 보니 곳곳에는 떡집이름을 낙원 떡집이라고 지어 원조의 이름을 퇴색시키는 안타까움도 있다. 최근에는 누군가 인터넷에 낙원 떡집과 관련해 모집한 적도 없는 떡 체험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띄우기도 해 당황스러웠다는 말도 전했다.

“우리가 ‘원조낙원떡집’, ‘낙원떡’이라고 해서 특허청에 신고를 한지가 20년이 넘었는데 계속 이름을 도용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 불법인 것은 명백하지만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는 이상에야 한 두 집이 아니니 불법이라고 일일이 소송을 내기도 힘들고요. 우리도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우리 유명세 타서 돈벌이 좀 하겠다는데 구체적인 문제가 안 생기는 바에야 그냥 둘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실정에 대해서도 토로 했다.

“사실 제일 오래 되었다면 국가 차원에서 예우를 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동네에서 제일 오래 됐고 매출이 제일 많은 곳이라고 인식되다보니 세무서에서 와서 조사를 하는데 세무사찰을 3번인가를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장인정신을 갖고 한다는 것에 참 회의를 느꼈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사실 가업을 무척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세제 혜택은 커녕 더 많은 세금을 부과 한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김정귀 회장)

이광순 대표 옆을 늘 지켜준 남편 김정귀 회장

김정귀 회장이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는 젊은 시절 아내의 사진  

그래도 이광순 대표의 손과 발이 되어 힘든 길을 지켜준 조력자는 단연 남편인 김정귀 회장이다. 김 회장은 22살~23살 젊디젊은 시절 친구 소개로 만난 아내 이 대표의 젊은 시절 고왔던 자태의 사진을 지금도 늘 지갑 속에 보관하고 다닌다.

더욱이 자상한 할아버지로 손주들의 사진까지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며 보여주는 김 회장은 현재 2천 여 명 회원이 활동하는 종로자유총연맹 회장이기도하다. 종로에서 6~70년 세월을 지켜오면서 종로 토박이답게 자율방범연합회장, 종로구 주민자치 협의회 회장도 역임해온 김 회장은 정치와 아주 가까이 있는데 왜 정작 정치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단다.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이고 종로선관위부위원장까지 맡고 있다 보니 여러군데서 정치에 입문하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방송 토론을 하면 방송토론 위원을 해달라고 전화가 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100만 대군을 얻는 것보다 한명의 적을 만드는 것을 더 싫어해서 정치는 뜻이 없습니다. 제가 중립을 확고히 지키니까 적이 없어요.”

 다정한 모습의 이광순 대표와 김정귀 회장

떡 먹으면 머리도 좋아진다?...수재들만 둔 부부

이 대표와 김 회장 슬하에 둔 4남매들의 이력도 예사롭지 않다. 떡을 많이 먹고 자란 아이들은 수재가 된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학벌들이 좋다.

“큰애는 이대, 둘째 애가 서울대학교를 왔고 그다음 작은 애는 연대를 나왔어요. 딸은 일본에 있는 아오야마 대학교 나왔는데 떡을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해도 되겠습니까?(웃음)다들 결혼도 쉽게 했습니다. 막내딸의 경우도 일본 대사관 취직을 앞두고 선을 봤는데 바로 그 다음 달에 약혼을 하고 또 다음 달엔 결혼을 했지요.” 

낙원 떡집은 앞으로 세계로 쭉쭉 뻗어나갈 예정이다. 현재 이민 간 어머니와 가족들이 있는 미국에 지점이 있고 곧 일본에도 진출 할 계획이 있다.

“일본 신주쿠 쪽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어요. 우리 히트 상품인 명품 ‘쑥인절미’하고 ‘현미 인절미’ 두 가지로 간단하게 아이템을 잡아서 해보려고 합니다. 또 제가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양에서 대북 사업을 하시는 목사님이 평양 시내 낙원 떡집을 하다가 민속 박물관처럼 크게 운영을 하시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자문을 해주곤 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떡이 더 비싸게 팔리고 있어서 중앙 간부들이 많이 산다고 해요. 직접 가보고 싶지만은 자칫 자유시연맹 보안부로 끌려 갈수 도 있으니 조심해야죠.(웃음)”

현재는 향후 사업 계획에 있어서는 아들과 조금 의견 차이가 있어 조율 중이다.

“아들은 떡을 테이크 아웃식으로 예쁘게 해서 대학로나 연대 등 몇 군데 체인점을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해요. 전체적 인 나라 경기도 풀리고 해야 시작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시대에 맞춰서 낙원 떡집이 진화할 것은 분명합니다. 요즘은 우리 떡을 외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특히 일본, 중국 사람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사가기도 하니까요. 낙원 떡집은 옛날 방식 그대로 가되 또 다른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서 젊은 사람들 취향에 맞게 가는 거지요.”

인터뷰는 한국인에게 떡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이 대표의 말과 함께 마무리됐다.
 
“좋은 일에는 떡이 꼭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떡을 안 좋아하다 보니까 찾는 양이 많이 줄긴 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고요. 낙원 떡집은 사라져서는 안 되는 전통의 맛을 계속 고수해 나갈 겁니다.” 

인터뷰 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