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미술현장 크리틱] 황규태의 현대사진 실험: 포토몽타주에서 픽셀아트까지
[이은주의 미술현장 크리틱] 황규태의 현대사진 실험: 포토몽타주에서 픽셀아트까지
  •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23.03.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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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창작욕, 끊임없는 도전
어디까지가 사진인가?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끊임없이 발달하는 기술에 대한 탐욕은 미디어 작가들만의 것으로 여겼다. 황규태 작업을 처음 맞닥드린건 아트선재 《황규태 개인전(2001)》 이었다.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카데믹한 사진 개념을 훌쩍 넘어 있을 뿐 아니라 데미안 허스트의 알약 시리즈보다 더 특별하고 강렬했다.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알약은 순간 나의 신체와 병치 되었다. 알약을 피사체로 삼았지만 육안으로 인식할 수 없는 시각성에 압도되었다. 시각적 효과에 머물지 않았다. 육안을 스크린으로 덮어 버리는 가상현실의 온몸 몰입 경험과 일치한다. 사진으로 가능한가? 이 경험이 황규태 작업과의 처음 대면이다. 사진은 기술을 품고 있다. 디지털 매체 시대에 미디어아트가 그랬듯이 사진은 현대미술사 속에서 그 위치를 찾기 어렵다. 그 맥락을 되짚어 보니 초현실주의와 겹쳐진다. 재현 회화의 유고한 역사의 견고한 창을 깨고자 선택된 최초의 실험이다. 그곳에도 역시 추상이 있었다.

황규태의 작업은 사진사에서 어디쯤 위치할까.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사진에 반하다(2023.1.14.~3.12.)》라는 황규태 개인전이 열렸다.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을 출발로 사진의 전통적 프레임이 작업의 토대를 이루고 있지만 그의 사진은 한 번도 새롭지 않았던 적이 없다. 사진과 동고동락한 60년 동안 그는 사진의 역사에서 점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을 섭렵했다. 아니 능가하고 있다. 사진을 향한 그의 변화무쌍한 시도는 보도사진, 인물사진, 추상사진, 흑백사진, 컬러사진, 포토몽타주, 버노그라피(필름태우기), 픽셀아트 등으로 규정된다. 황규태는 사진가로서의 위상과 동시에 사진을 이용하는 미술가의 지위를 동시에 갖고 있다.

▲2001 황규태 개인전, 아트선재 센터 전시전경
▲2001 황규태 개인전, 아트선재 센터 전시전경 (제공=황규태작가)

그 시작은 1960년대부터다. 그의 사진 세계는 ‘사진가’와 ‘미술가’의 본질적인 차이를 분류할 필요가 없다. 루시 수터(Lucy Soutter)가 제시한 ‘예술사진(art photography)과 ’미술로서의 사진(photography-as-art)’의 면모가 모두 통합된다. 그는 확실히 ‘사진가’와 ‘예술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논쟁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황규태, 컨텍트, 150x100cm, 포토몽타주, 2021 (제공=이은주학예사)
▲ⓒ황규태, 컨텍트, 150x100cm, 포토몽타주, 2021 (제공=고은사진미술관)

1990년대 후반 한국 사진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스트레이트 포토’와 ‘메이킹 포토’ 논의에서도 빗겨서 있다. 오히려 그 두 가지 논쟁을 포섭한다. 분류체계가 오류였을까. 그의 사진은 너무 앞서가 있다. 1960년대 <블로우 업> 시리즈는 흑백 다큐멘터리이다. <블로우 업>은 한 장의 필름 컷으로 여러 작품을 제작한다. 큰 화면에서 부분적으로 파편화된 작품은 클로즈업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자유자재로 이미지를 조작하고 변형시키는 이 모든 것은 디지털 기술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작품 형식은 최첨단 기술이 출현하기도 전에 이미 개념을 완성 시킨다는 의미이다. 사진술이 기술에 압도되기 전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이 집약된다. 지금은 디지털 매체로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편집하여 <펙셀> 시리즈 작업에 한창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황규태, <불타는 도시>, 100x150cm, 버노그라피, 1969(촬영)/ 1970’s(메이킹) /2022(프린트) (제공=고은사진미술관)

황규태의 사진은 왜 다른가? 황규태의 흑백 다큐는 초기 사진 시장을 개척한 종군사진, 보도사진과 다르다. 클로즈업, 뿌연 이미지, 전체를 부분으로 파편화, 필름에 덧칠하기가 그 차이를 만든다. 결과물은 평면이지만 작업 과정은 굉장히 입체적이다. 황규태의 사진은 한 컷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황규태만의 블로우업, 포토몽타주, 버노그라피 기법은 모두 필름 기반으로 이뤄진다. 그의 실험은 인화실에서 펼쳐진다. 황규태는 뉴미디어의 기술언어로 각인된 이미지의 조작, 수정, 편집을 아날로그 과정에 대입시켰다. 그 당시 도래하지 않았던 사진을 구성했다. 1990년대 후반 실제 컴퓨터 보급이 개인화 되었을 때 이미지 변형은 더 과격해졌다. 내용은 더 기괴하고 왜곡된 형태를 띤다. 그는 시대적 요구와 기술과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기존 분류체계에 안주하지 않았다. 황규태를 다큐멘터리 사진가로만 규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예술사진의 역할을 동시적으로 진척시키면서 그 범주를 확장한다. 디지털 매체 예술 시대는 기술이 예술로 침투해 가는 미학적 현상에 주목했다. 기술의 철학적 함의는 기술 그 차제를 예술론으로 탈바꿈 시켰다. 미디어아트는 끊임없이 발달 되는 과학 기술을 의식한다. ‘사진은 사진이다’, ‘미술은 미술이다’ 라는 사진계에 보이지 않는 이분법적 틀을 깰 자 그가 바로 황규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