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심정순의 중고제 판소리 창본
[성기숙의 문화읽기]심정순의 중고제 판소리 창본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3.03.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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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주지하듯, 중고제 국악명인 심정순(沈正淳. 1873~1937)은 20세기 초 뚜렷한 위상을 지닌 예인이었다. 내포의 중심 충남 서산 출신인 그가 뚜렷한 족적을 남긴데는 나름 연유가 있었다. 심정순은 일찍이 피리와 퉁소의 명인 부친 심팔록에게 국악의 기초를 배웠다. 이후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재담 등 다양한 종목에서 재능을 뽑냈다. 선조에게 물려받은 가계전승 내력이 국악명인을 키운 것이다.

충청도 서산은 그의 재능을 발산하기엔 비좁았다. 그는 1910년 전후 고향을 떠나 경성에 입성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에 이른다. 공연을 비롯 음반취입, 방송활동 등 전방위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이른바 심정순협률사를 조직하여 전국순회공연을 다녔는가하면 판소리 개작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당시 서구식 극장무대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공연미학을 모색한 국악의 최전선에 있었다. 

심정순의 국악활동과 관련 특별히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1912년 매일신보에 그의 판소리사설이 연재된 것이다. 이해조(李海朝 1869~1927) 산정(刪定)에 의한 것이기에 주목도가 높았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이해조는 당시 문화권력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심정순의 판소리 사설이 이해조의 심미안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알다시피, 산정이란, ‘쓸데없는 글자와 구절을 깎고 다듬어서 글을 잘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판소리 산정은 당대 소리광대의 구술(口述)을 텍스트로 하여 신문이라는 근대적 활자매체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된다. 매일신보에 연재된 심정순의 판소리 창본은 ‘강상련(江上蓮)’, ‘연의각(燕의脚)’, ‘토의간(兎의肝)’ 등 세 편이다.

심정순의 판소리 사설은 신문 1면에 배치되었다. 그만큼 비중있게 다뤄졌다. 『매일신보』 1912년 1월 1일자 ‘옥중화(獄中花)’를 시작으로 ‘강상련’, ‘연의각’, ‘토의간’ 등 네 편이 연재되었다. 이 중 ‘옥중화’를 제외한 나머지 세 편이 중고제 판소리 명창 심정순의 사설로 되어 있다. 여기서 ‘강상련’은 심청가를 말하고, ‘연의각’은 박타령(흥보가)을, 그리고 ‘토의간’은 토기타령(수궁가)을 의미한다. 

우선, ‘강상련’은 1912년 3월 17일부터 4월 26일까지 연재되었고 ‘연의각’은 4월 29일부터 6월 7일까지, 그리고 마지막 ‘토의간’은 6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 실렸다. 1912년 상반기 약 5개월 동안 심정순 판소리 사설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신보』에 게재된 셈이다.

거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언론환경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애국계몽운동의 선두에 있던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성격이 변모하면서 제호 또한 『매일신보』로 바뀐다. 더불어 신문의 편집체제 및 필진도 대폭 교체된다. 당시 조선 제일의 소설가로 위상이 높던 이해조가 편집에 참여한 점이 눈에 뛴다. 

인쇄술의 진보로 『매일신보』는 작고 정교해진 5호 활자를 사용하면서 지면이 늘어났다. 자연히 늘어난 지면을 채울 수 있는 기사원이 필요했다. 심정순의 판소리 사설은 구전된 것으로서 창작 원고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는 신문의 체제 변화에 따른 늘어난 지면을 채우는 긴요한 방편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심정순 판소리 사설의 『매일신보』 연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선 ‘듣는 판소리’에서 ‘읽는 판소리’로 시각화되었음을 들 수 있다. ‘강상련’, ‘연의각’, ‘토의간’ 등은 순한글체로 실렸고, 필요한 경우에 한자를 병기했다. 또 자진모리, 중모리, 엇중모리, 진양조 등 국악의 다양한 장단을 각 판소리 작품에 표기한 점도 이채롭다.

이해조 산정, 『매일신보』 연재

우리가 알듯, 중고제 판소리는 여타의 소리제에 비하여 전승력이 열악한 편이다. 중고제 판소리 중 이동백, 김창룡 등의 소리가 토막소리로 잔존하는 형국에 있다. 이에 반해 심정순의 판소리는 아에 전승이 단절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 점에서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심정순의 ‘강상련’, ‘연의각’, ‘토의간’ 등  세 편의 판소리 사설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사실상 전승의 맥이 끊겼다고 보는 심정순 가(家) 소리문화를 제고하는데 긴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고전문학 형식인 판소리를 근대적 출판매체인 신문지면에 활자로 표기하여 새로운 유통방식을 꾀했다는 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꽤 긴 전화를 받았다. 작년에 건내준 책에 대한 상찬이었다. 민망스런 칭찬에 지난날을 잠시 반추하게 된다. 2019년 연낙재무용학술총서(11) 『매일신보 연재 심정순 판소리 창본』을 펴냈다. 새삼 작업 당시를 떠올리면서 책의 서문(序文)을 반추해 봤다.

재론하자면, 이 책은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해조 산정, 심정순 판소리 사설 ‘강상련’, ‘연의각’, ‘토의간’을 묶은 것이다. 전반부는 각 판소리 작품의 사설에 대한 한글본이고, 후반부는 각 작품의 판소리 사설이 게재된 1912년 매일신보 신문의 원본 이미지를 수록했다. 중고제 국악명인 심정순 가(家)에 전하는 판소리 사설이라는 점에서 희소적 가치가 적지 않다.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늘 고단함의 연속이다. 『매일신보』에 연재된 심정순의 판소리 사설은 구어체적 표현과 고사성어 사용이 두드러지고 원본 텍스트의 훼손으로 확인이 불가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최대한 원본 텍스트를 살리면서도 현대적 문법을 준용하려 애썼다. 가독성을 고려하여 소실된 글자를 복원하고 문장의 띄어쓰기 작업도 병행했다. 또 한편, 이본(異本)을 비교하면서 소실된 글자를 추정하여 가능한대로 복원하는 작업을 곁들였다. 

책 작업은, 꼼꼼히 그리고 촘촘히 본다고는 하지만 늘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아쉽지만 어쩌랴. 심정순 판소리 사설을 『매일신보』에 연재된 지 107년 만에 엮어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기로 했다. 100년 후 혹은 500년 후쯤 누군가에 의해 심정순의 판소리 사설이 ‘미래의 현대어’로 복기되어 또 한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