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공진원, 공예기획전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 89명 공예작가 참여
[현장프리뷰] 공진원, 공예기획전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 89명 공예작가 참여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4.04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역서울284, 4.4~6.4
7개 주제 공간 아래, 500여 점 작품 전시
전통공예부터 현대미술 콜라보도 진행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인간은 꽤나 오랫동안 자연이 보내고 있던 많은 메시지들을 무시해왔다. 그 결과가 현재 우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늦었지만, 지금 인류는 다시 자연에게 답을 보내려 하고 있다. 그 시도를 공예로 풀어낸 전시가 개최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원장 김태훈)은 2022년 밀라노 한국공예전을 재구성하고 확장해 선보이는 공예기획전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를 4일부터 오는 6월 4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개최한다.

▲‘2. 내가 서 있는 땅(3등 대합실)’ 공간 ⓒ서울문화투데이

지난 3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팬데믹 이후 기후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자연’에 대한 주제는 너무 식상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강신재 보이드플래닝 대표는 이러한 문제제기가 있을 것 같았다며, 답을 전했다.

강 감독은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이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연’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그러하다’라고 풀어서 기획을 시작해봤지만, 그 또한 너무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우린 지금 3월말, 4월초에 벚꽃이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고, 그에 대해 지금이라도 자연에게 답을 해야 할 때다. 모든 공간들이 자연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로 봐주길 바란다”라고 지금 이 시점에서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의도를 설명했다.

▲지난 3일 언론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김태훈 원장 ⓒ서울문화투데이
▲지난 3일 언론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김태훈 원장 ⓒ서울문화투데이

공예로 풀어낸 자연을 향한 일곱 장의 편지

이번 전시는 지난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개최된 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Again, From The Earth’s Foundation)》를 재구성한 부분을 포함해 자연 본래의 모습에 대한 고찰, 자연 존중의 미학을 공예를 통해 조망하고자 기획됐다. 공예의 정신적 가치를 땅의 기초에 두고, 전통적 재료와 현대적 재료를 아우르며 만들어진 작품들을 선보인다. 7개 주제 공간으로 50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공진원 김태훈 원장은 “지난해 공간이 협소해 구현이 어려웠던 한국공예전을 확장해 선보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라며 “지난해 밀라노의 느낌을 한국에서도 다시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고, 관람객들이 자연을 산책하듯 전시를 즐기기 바란다”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선 작가
▲이선 작가 <한지탑>(2023)  ⓒ서울문화투데이

강 감독은 "이번 전시는 89명의 공예 작가의 5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공예전으로, 국내에서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이외 공예 단일 전시로는 드문 경우일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해 외국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밀라노 한국공예전은 좀 더 한국적인 소재와 기법에 주목했다면, 이번 전시는 ‘자연’이라는 주제로 좀 더 확장된 작품과 작가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전시에선 주얼리 공예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회화적 평면 작업 등을 선보이며, 공예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어 강 감독은 “전시를 기획하면서, 자연에서 얻은 재료의 소재나 물성에 대한 연구가 깊은 작가들을 주목했는데, 주얼리 공예작가들이 특히 재료 물성에 대한 연구가 깊고 그에 대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주얼리 공예 작가들에게 평면작업은 낯선 영역이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접근을 함께 해보고 싶었고 좋은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 ‘6. 평행하게 걷는 우리(그릴)’ 공간 전시작 ⓒ서울문화투데이

총 7개의 주제로 구성된 전시 공간들에는 모두 짤막한 편지글이 작성돼 있다. 편지글들은 각 방의 주제에 맞게 자연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로 이뤄졌다. 내용은 전시장 리플릿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 방들의 주제는 ‘1. 시간이라는 이 곳(중앙홀)’, ‘2. 내가 서 있는 땅(3등 대합실)’, ‘3. 껴안으며 바라보는(1,2등 대합실)’, ‘4.다른 말, 같은 숨(부인대합실, 역장실)’, ‘5. 여유로운 변화(귀빈실)’, ‘6. 평행하게 걷는 우리(그릴)’, ‘7. 단단한 숨을 모아(구회의실)’ 로 구성됐다. 마지막 8번 째 공간에선 올해 밀라노 한국공예전의 프리뷰를 볼 수 있다.

각 공간들은 주제문장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뜻하거나, 인간 중심 시선에서 확장돼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시도,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꿈꾸는 시도를 담은 작품으로 구성됐다. 마치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듯 개별의 공간이 구성된 것은 이번 전시에서 꽤 흥미로운 지점이다.

▲장성 작가 <Given/주어짐>(2023) ⓒ서울문화투데이

자연과 인간-태초의 자연-자연 속 살아가는 인간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작품은 장성 작가의 설치 작품 <Given/주어짐>(2023)이다. 자연적 소재 ‘돌’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으로, 의자 시리즈와 함께 이를 기념하는 영상과 플라스틱 유닛으로 만든 대형작품으로 구성했다.

장성 작가는 시카고 일리노이 주립대학 선업 디자인과 조교수로 있으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장 작가는 원래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계속 만들어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플라스틱’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들어, ‘돌’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게 됐다. <Given/주어짐>은 돌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상태로 디자인된 의자 시리즈다. 장 작가는 직접 거주하고 있는 인근에서 돌 그대로를 취득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의 시작은 ‘어떻게 하면 돌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재능을 그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란 생각이었다. 작품을 만들기 전 장 작가는 작업실에 돌을 옮겨놓고 그냥 바라본다. 그리고 때가 됐을 때 작품을 시작하는데, 작업실에 놓여있는 돌이 마치 ‘반려 돌’ 같기도 했다며 간담회장에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끌어냈다.

작품에 사용된 돌에는 모두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작가와 돌이 만난 위도와 경도를 표시해둔 것이다. 장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은 ‘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인간은 자연 앞에 있어서 조연이 돼야 한다고 봤다”라며 “사실 나의 이전 작품인 플라스틱 유닛은 <Given/주어짐>과는 완전히 상반된 지점에 있는 작품이고, 전체적인 전시에서 가정 적과 같은 존재라고 봤다”라며 이번 전시에 참여하며 느낀 생각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3. 껴안으며 바라보는(1,2등 대합실)’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지난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였던 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를 재구성한 ‘2. 내가 서 있는 땅(3등 대합실)’ 주제 공간에서 주목할 것은 공예로 재현된 땅, 태양, 하늘이다. 한국적 기법으로 제작된 공예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자연에서 얻어진 재료가 어떻게 자연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구현됐는지 만나볼 수 있다. 강승철, 김계옥, 류은정 작가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밀라노 전시 때와는 설치 방식을 달리해 1m 높이의 갈라진 땅 위에 작품을 두고, 관람객이 좀 더 세밀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3. 껴안으며 바라보는(1,2등 대합실)’ 주제 공간은 전통적 소재에서 확장해 3D 영상, 혼합섬유, 플라스틱 등 현대적 매체로 자유롭게 자연을 재해석 하는 8명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강 감독은 이곳을 태초의 자연(Mother Nature)의 모습으로 구현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 공간은 동시대 자연의 모습인 동시에, 태초의 자연이었고 계속 이어져나갈 자연의 모습을 담는다.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은 나무의 형태를 띠고 있는 동시에 인간의 몸이기도 하고, 창작자가 생각한 태초의 바다 생물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연의 무한함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이능호 작가 <집- 그 이후>ⓒ서울문화투데이

‘7. 단단한 숨을 모아(구회의실)’는 유리공예 작품으로만 전체공간을 채운 곳이다. 이 공간의 특별함은 10명의 기성 작가와 29명의 학생 작가 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지점이다. 기성작가 제자들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는데, 현재와 미래를 함께 도모하는 이들의 작품으로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또한, 유리 공예가 인간의 숨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자연과 인간이 맞닿는 ‘숨’이라는 소재를 이끌어낸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기원하는 듯한 공간이다.

이 공간 앞 작은 방에 전시된 이능호 작가 <집- 그 이후>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지난해 밀라노 디자인위크 당시 출품한 작품에서 확장됐다. 씨앗의 발화 전을 도자기 오브제로 구현하고, 그 위에 투각 기물을 달아 씨앗에서 발화된 제 2의 생명체를 표현했다. 구멍이 뚫린 투각 기물은 빛을 받아 그림자로 확장되는 데 작가는 이것을 생명의 무한성, 세상 존재들이 가질 수 있는 꿈들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씨앗에선 건강한 기운이 발화되고, 그 기운은 그림자로 확장돼 무한히 넓어지고 있다. 이 기운과 꿈을 우리 모두가 지닐 수 있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작은 방안에 단독으로 설치된 이 작품에선 실제로 청명하고 맑은 생의 기운을 품고 있는듯 하다.

2층 그릴 공간에서는 공예와 현대미술의 결합을 볼 수 있다. 젊은 작가들 위주의 새로운 시도들이 담긴 작품으로, 공예의 미래를 보여주는 동시에 현 시대를 직면하고 있는 세대의 시선을 담고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다.

▲‘7. 단단한 숨을 모아(구회의실)’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지난해 밀라노 한국공예전에서 시작된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에서 확장된 기획전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는 식상하지만, 지금 시대에 필요한 시선들과 고찰을 담고 있다. 선명한 주제를 드러내기보단, 공간을 거닐면서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 동시에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물을 제작하는 공예의 확장된 영역도 만나볼 수 있다. 기물인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예술적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