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기획전 《눈은 멀고》, ‘나이’에 대해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눈은 멀고》, ‘나이’에 대해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4.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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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갤러리, 4.19~5.20
구나, 장서영, 전명은 작가 참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다양한 세대가 얽혀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두산인문극장 기획전으로 마련된 《눈은 멀고》전시다. 두산갤러리에서 19일 시작해 5월 20일까지 개최한다.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눈은 멀고》전경 (사진=두산갤러리 제공)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눈은 멀고》전경 (사진=두산갤러리 제공)

두산인문극장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다. 2013년 ‘빅히스토리’를 시작으로 ‘불신시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아파트’, ‘푸드’, ‘공정’까지 매년 다른 주제로 진행해왔다. 올해에는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를 주제로 전시, 공연, 강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눈은 멀고》는 생명으로 태어났기에 필연적으로 맞이해야만 하는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전시다. 노화로 인해 신체의 모든 기관이 점진적으로 기능을 잃어가는 상황과 주어진 일상 속에서 아득히 먼 감각으로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은유를 제목에 담았다. 구나, 장서영, 전명은의 작품을 통해 매 순간 초침을 따라 우리를 통과하고 있을 시간을 감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몸의 변화는 단순히 미적인 부분으로만 침투하지 않으며 신체 곳곳에서 퇴화와 불편함으로, 일상과 생명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질병으로 드러나게 된다. 인간의 많은 일을 기계와 인공지능이 대체하며 노화의 좋은 점을 거의 찾지 못하게 된 오늘날, 구체적으로 다가올 언젠가의 시기를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할까.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눈은 멀고》전경 (사진=두산갤러리 제공)

구나의 조각은 표면의 무수한 흔적과 색이 처음과 달리 변한 상태, 휘거나 갈라진 부위를 드러냄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인 온몸으로 맞이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견고해 보이는 외형에는 개입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변화무쌍한 표면은 세월을 담아내는 사람의 무른 피부를 떠오르게 한다. 장서영의 영상은, 단단한 벽 대신 얇고 주름진 막을 스크린이자 칸막이 삼으며 제한된 공간에서 희미하게 살아가는 노년의 시간과 멀어져가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명은은 함께 살고 시간을 보내며, 자주 닿고 서로 의지하는 사람과 사람, 크고 작은 동물과 사람, 식물과 물건에 이르기까지 삶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생명이 주고받는 관계를 사진으로 담아낸다. 이때 그의 사진은 순간과 영원을 동시에 꿈꾸도록 돕는 연료가 된다.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매체로 나이가 적지 않은 형상이나 기능이 온전치 못한 상태, 주름 지거나 구겨진 모습 등을 구현하며 벗어날 수 없는 쇠락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연하게 자리하는 조각의 몸체들과 여전히 생생하게 숨을 나누며 살아있는 사진 속 생명들, 좁아져 가는 세계를 가진 이가 무한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장면들은 공통적으로 삶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전시 《눈은 멀고》는 우리가 닿게 될 각자의 종점을 당겨보는 기회로, 자연스러운 눈으로 그곳까지의 여정을 그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