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매듭공예의 진수, ‘우리매듭 색실에서 별전까지’
[성기숙의 문화읽기]매듭공예의 진수, ‘우리매듭 색실에서 별전까지’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3.04.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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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매듭공예연합회 창립 40주년 기념전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전통시대 우리의 일상에는 늘 매듭이 함께했다. 궁중의 실내장식에 사용된 매듭은 웅장미를 배가했고, 서민의 실생활에 쓰여진 매듭은 실용성이 돋보였다. 한복에 곁들여진 노리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빛나게 한다. 유가의 선비들이 착용한 도포의 허리끈은 또 어떤가? 단조로운 도포 위를 가로질러 맨 매듭 허리끈엔 실용성과 함께 특유의 멋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며칠 전 한국의 전통매듭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한 전시가 있었다. 한국매듭공예연합회(회장 황순자) 주최로 열린 “한국의 별전_우리매듭 색실에서 별전까지 40년展”(2023년 3월 23~29일, 용산아트홀 갤러리)이 바로 그것이다. 연합회의 지난 40년 궤적을 조망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였다. 

한국매듭공예연합회 40년 그리고 황순자 명인

한국매듭공예연합회는 1984년 서울 인사동 관훈빌딩에서 첫 발을 떼었다. 40년 전 매듭공예인들이 모여 전통매듭의 올바른 전승과 저변확대를 위해 연합회를 창립했다. 김주현 초대회장에 이어 조일순(2대), 심영미(3대) 회장 그리고 현재 황순자 명인이 4대 회장을 맡고 있다. 

연합회는 열악한 전승환경에서도 매년 국내외 전시를 통해 매듭 명인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갈고 닦은 매듭 기량을 뽐내는 장이자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켜간다는 자부심을 확인하는 자리로 간주된다. 연합회는 그간 교육과 전시를 통해 매듭의 정통기법 전수와 더불어 오늘의 심미안에서 재해석하는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이어왔다. 

현재 그 중심에 매듭명인 황순자 회장이 있다. 매듭명인 황순자는 두 갈래의 길을 걷는다. 하나는 매듭의 정통기법 전수이고, 다른 하나는 매듭공예의 현대화, 대중화 그리고 세계화이다. 이는 모두 전통 매듭공예의 가치 확산으로 귀결된다. 황순자가 표방하는 두 가지 지향성은 교육을 통한 후진양성과 국내외 매듭공예 전시 개최를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매듭공예연합회는 매듭을 주제로 한 전시, 교육, 심사 등으로 전통매듭의 가치를 일깨우고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으로 쉴 틈이 없다. 특히 2000년 이후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 한국 전통매듭의 문화적 우수성을 지구촌 곳곳에 알리고 있다.

해외 전시도 여러 번 치렀다. 프랑스 파리국제박람회(2008) 전시를 비롯 영국 런던한국문화원(2008), 일본 동경한국문화원(2011),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특별전(2013), 벨기에·독일·영국에서 연달아 열린 전통매듭 유럽전(2015) 등 우리 고유의 매듭공예로 세계인의 심미안을 자극했다. 그의 지향성은 전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전통 매듭기법을 토대로 현대화를 추구한다. 팔찌라든가 펜던트, 브런치, 지갑, 각종 인테리어 소품에 이르기까지 창의적 발상으로 상업성을 모색한다. 그만큼 그는 시대와 호흡하는 열린 의식의 소유자라할 수 있다.

별전·열쇠패, 전통 매듭공예의 진수

“한국의 별전_우리매듭 색실에서 별전까지 40년展”이라는 타이틀에서 보듯 이번 전시는 별전·열쇠패에 방점이 있다. 별전의 기원은 고대시대로 소급된다. 고구려 집안지역의 광개토대왕비 인근 고분에서 출토된 와당에서 찾아진다. 학계에서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네 글자에 새겨진 와당전(瓦當錢)을 최초의 별전으로 추정한다.

불교와의 연관성도 빼놓을 수 없다. 삼국시대 불가에서 의례용으로 사용된 종이돈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또 신라시대 고승 월명사의 행적을 기록한 ‘월명사 도솔가’ 장에 지전(紙錢)을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데 여기서 한국 별전의 효시를 찾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르러 별전은 보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효종대의 별전에는 태조대왕을 기리기 위해 북두칠성을 그려넣었다. 1894년 고종대에는 순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사조용(四爪龍)을 새겼다는 기록도 흥미롭다. 

한편, 별전은 기념주화로서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경축기념품으로 쓰였다. 그렇기에 희소적 가치가 높았다. 열쇠패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왕실과 관청, 사대부가에서 주문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조선시대 별전·열쇠패는 권력과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별전·열쇠패가 소장적 가치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10년 영국인 램스던이 한국별전책(Corean Coin and Amulets)을 저술하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별전·열쇠패가 외국인의 심미안으로 재발견되어 한국공예의 조형적 독창성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은 실로 아이로니컬하다.

우리네 생활 가까이 존재했던 별전·열쇄패는 근대에 이르러 침체기에 놓여진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더욱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해방이후 정연수, 심칠암, 강기만 등에 의해 겨우 명맥이 유지되었다.

다행이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로 매듭장이 지정되면서 정연수 장인이 예능보유자 반열에 올랐다. 이후 최은순, 김희진 명인을 거쳐 현재 김혜순, 정봉섭이 예능보유자로 그 맥을 잇고 있다. 한편, 무형문화재 제도 밖에서 매듭공예를 묵묵히 지켜온 여러 명인들의 존재도 가치롭다. 이들에 의해 한국의 별전·열쇠패의 다양한 기법들이 오늘로 전해지고 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매듭공예연합회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열린 “한국의 별전_우리매듭 색실에서 별전까지 40년展”은 유의미한 전시였다. 고(故) 김주현·조일순 회장을 비롯 심영미, 황순자, 유점순, 이미혜, 강미자, 권양자, 박양자, 이신자, 이춘세, 최선례, 이기현, 이원섭, 류광숙, 박순열, 박미연, 신진희, 배경연 등이 참여한 가운에 4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작품 하나하나 정성 가득한 매듭솜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선, 다양한 기법과 재료 활용이 돋보였다. 부재료 또한 다채롭다. 주물을 비롯 옛날자수, 다자인 바늘, 별전, 엽전, 명주천, 실크천, 나전칠기 등 마냥 잊고 지내던 전통에 내재된 속 깊은 멋을 제대로 느끼는 절호의 기회였다.

매듭전시를 통해 우리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현장과 마주한다. 출품된 작품들은 한마디로 우아하고 정갈하며 격조가 넘쳐난다. 격조 너머 작품이 탄생되기까지의 산고(産苦) 또한 능히 짐작된다.    

매듭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색을 입히고 그 결과의 산물인 명주실을 꼬아 끈목을 만드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의 작업도 인내와 고통의 연속이다. 때문에 매듭명인들의 손은 정상인 경우가 드물다. 손가락이 갈라지고 휘어지고 뒤틀리는 등 이른바 직업병에 시달리기 일쑤란다. 거친 손바닥, 굵은 손마디가 연륜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는 셈이다.

모름지기 매듭은 천지인(天地人)의 합일에서 완성된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인기(人氣)가 그만큼 중요하다. 오랜 세월 숙련을 통해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작품다운 작품이 잉태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제된 마음가짐, 내면의 수양이 으뜸 덕목일 게다.

전시도록 발간, 기록문화의 중요성 일깨워

별전과 관련, 전하는 일화가 있다. 주인공은 조선후기 서예가이자 금석학의 대가로 이름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이다. 그는 갈천고폐전(葛天古幣錢)이라는 이름의 별전을 늘 주머니에 지참하고 다녔다. 심지어 병환 중에도 이 별전을 만져 보며 확인했다고 하니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 짐작케 한다. 

추사는 자신의 주머니 속 별전을 확인하면서 왜 중국 동진시대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을 떠올렸을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한때 권력에서 밀려나 은거했거나 또는 귀양살이 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번 별전·열쇠패 전시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동양의 인문정신과 그에 깃든 문화적 향훈(香薰)을 반추한다. 

아울러 전시도록 발간을 통해 전통매듭의 정신문화적 가치 창출을 모색한 점도 의미롭다.  전시도록 『한국의 별전_우리매듭 색실에서 별전까지 40년展』(사과나무미디어, 2023)은 황색 양장 표지에 내지 88쪽을 올 칼라로 꾸몄다. 품격 있고 고급스럽다. 전시도록의 전형적인 편집과 구성으로 손색이 없다.  

황순자 회장의 한국매듭공예연합회 40년 궤적에 대한 회고 글을 비롯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신정철 대한민국기능전승자회장, 박양우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칠용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의 축사 등도 곱씹게 한다. 

본문은 열 아홉 명의 매듭명인이 출품한 작품과 작가 소개로 채워져 있다. 우리 고유의 미감이 가득한 아름답고 다채로운 매듭 작품들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부록에 실린 한국매듭공예연합회의 40년 연혁과 역대 전시도록 및 각종 행사 사진자료 또한 기록적 가치를 더한다. 

무엇보다 김영란 한상수자수박물관장의 「별전·열쇠패와 매듭공예」는 전시의 이해를 돕는 길잡이 역할로 유익하다. “한국의 별전_우리매듭 색실에서 별전까지 40년展”은 한국 전통매듭의 진수와 함께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운 값진 전시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