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자 인터뷰]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흩어지듯 모든 것을 아우르는 ‘허튼 가락’, 내 모든 화두의 완성”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자 인터뷰]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흩어지듯 모든 것을 아우르는 ‘허튼 가락’, 내 모든 화두의 완성”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김재성 사진기자
  • 승인 2023.04.1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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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에게 물려받은 ‘풍류’, ‘허튼 가락’ 핵심…19년 전 4개 화두 완성 결실
피아노제작자 서상종과 피아노+가얏고 합친 ‘피앗고’ 개발
풍류학교, 예술 넘어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라
‘자신이 하는 음악’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오는 26일, 베트남서 재외동포 위한 연주 선봬
전남 신안 자은도에서 10월 개최되는 ‘피아노의 섬 페스티벌’ 이끌어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김재성 사진기자]미스터치(Misstouch)가 콩쿠르 심사 기준일 만큼 정확성을 요구하는 피아노와 줄을 밀고 흔들며 음의 여운을 음악으로 만드는 가야금. 양악과 전통음악의 대표주자 격인 두 악기는 동서양의 문화 차이만큼 소리도 연주 기법도 매우 다르다. 

하지만 피아노 치는 국악인 임동창은 자신의 오랜 화두였던 ‘나만의 오롯한 음악’을 위해,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악기를 하나로 만들었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오랜 지기, 피아노제작자 서상종을 밤낮 없이 괴롭힌 끝에 17년 만에 완성한 결과물이 바로 ‘피앗고’다. 임동창의 ‘피앗고’는 피아노와 가얏고(가야금의 옛 이름)의 합성어다. 서양에서 유입된 지 100년도 넘은 2012년, 피아노는 가야금처럼 원시적이고 거칠며 입체적인 소리가 나는 국악기로 재탄생했다.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피아노와 피앗고를 직접 연주하며 두 악기가 내는 소리의 차이를 들려줬다 ⓒ김재성 사진기자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피아노와 피앗고를 직접 연주하며 두 악기가 내는 소리의 차이를 들려줬다 ⓒ김재성 사진기자

K-클래식이 세계무대를 장악한 가운데, 판소리·민요·정가 등 한국 전통음악도 다양한 방식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중음악과 섞이고 스며온 전통음악이 서양 클래식 음악과도 주저 없이 경계를 허물고 영역 확장에 나선 모습이다. 경계를 허물되 ‘나’를 지키는 것. 이것은 오랜 시간 임동창이 세상을 향해 연주해온 음악이기도 하다. 클래식, 국악, 가요, 가곡, 불교음악 등 그의 음악은 자유자재로 경계를 넘나든다. 15살에 신 내림 받듯 피아노를 시작했고, 17살이 되던 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악상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20살 때 피아노 페달에 구멍이 난 후 피아노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자유로운 연주’, ‘오롯한 내 음악’,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뭐꼬?’ 이 네 가지 인생에 주어진 숙제를 마친 그는 해방감과 함께 그간 고민해온 화두의 결론으로 ‘허튼 가락’이라는 답을 얻었다. 임동창은 “‘허튼 가락’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할 수 있엇던 것은 결국 조상이 남겨준 우리의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자유롭게 그 모습을 달리하는 ‘허튼 가락’의 중심에는 ‘나’의 DNA가 존재한다.

인터뷰 중 임동창은 우리에게 한 권의 책을 보여줬다. 지난 2017년 출간된 ‘임동창 풍류 아리랑’ 작곡집이었다. 2010년부터 공연이나 강연 등으로 인연을 맺게 되는 지역마다 선물로 하나씩 만들었던 아리랑을 한 데 모은 것이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고유의 아리랑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거의 다 소실된 것이 안타까워 시작한 작업이 필리핀아리랑 등 해외아리랑까지 해서 벌써 200곡 가까이 모였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산봉우리가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한적한 마을에서 임동창은 열두 제자와 함께 살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연주홀 겸 연습실에는 피앗고와 피아노를 비롯해 여러 악기들과 글, 그림 등이 곳곳에 놓여있어 열두 명 각각의 예술적 일상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들은 정성으로 가득한 환대를 받았다. 공간의 입구에는 기자들의 이름이 들어간 그림이 우리의 방문을 반겼고, 서울문화투데이만을 위한 학생들의 정가와 판소리, 가요를 절묘하게 믹싱한 노래와 장구연주, 자작 헌시 낭송은 약속된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제자는 차를 우려 우리에게 건넸고, 또 다른 제자는 우리의 모습을 다양한 색으로 그려 선물했다. 

피앗고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겠냐는 우리의 부탁에 임동창은 벌떡 일어나더니 피아노로 향했다. 그는 “피앗고 소리를 듣기 전, 일반 피아노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라며 그 자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리고는 ‘정악’용 피앗고Ⅰ과 ‘민속악’용 피앗고Ⅱ의 소리를 차례로 연주하며 그 차이를 들려줬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을 수상한 임동창(가운데)와 이은영 발행인, 일랑 이종상 화백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을 수상한 임동창(가운데)와 이은영 발행인, 일랑 이종상 화백

임동창은 올해 초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제14회 문화대상에서 특별대상을 수상했다. 그가 세간의 엄청난 인기와 명예를 뒤로 하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뒤, 제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그의 여러 활동이 심사위원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많은 비가 내리던 4월의 어느 날, 직선의 공간 속 곡선의 예술을 이야기하는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을 만나 그의 인생을 아우르는 ‘허튼 가락’을 청해봤다.

제14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현장에서 전하지 못했던 소회를 전한다면?

수상 당시 짧게 밝힌 바 있지만, 그동안 나는 주로 혼자 하는 예술 활동에 집중해왔다. 그런데 시상식장에 가서 보니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문화예술 전반에 애정을 갖고 모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참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한 사람의 예술관도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 움직임이 모인다면 세상에 더 큰 영향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곳곳에 흩어져있는 여러 움직임을 세심한 관찰력과 애정으로 한데 모아 세상에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대표님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임동창이라는 이름 뒤에 ‘풍류’라는 단어가 한 몸처럼 따라다니는데, 이 풍류는 어디서 기인했나?

절대적으로 조상이다. 우리 조상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이를 학문ㆍ생활ㆍ문화ㆍ예술 등으로 전부 보여주셨다. ‘전통’이라는 겨우겨우 남아있는 흔적들을 추적하며 조상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썼고, 그렇게 모인 것이 풍류더라.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 ⓒ김재성 사진기자

그런 깨우침은 언제 온 것인가? 

이를 깨우친 건 19년 전이고, 이 과정에서 ‘자유로운 연주’, ‘오롯한 내 음악’,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뭐꼬?’ 등 네 가지 내면의 숙제를 풀었다. 

전북 군산의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 방학이 끝나고 만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음악 선생님이 가곡 ‘고향집’을 피아노로 연주해주셨다. 그 순간 선율이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쑥 들어왔다.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음악 선생님에게 달려가 막무가내로 음악실 열쇠를 받아냈다.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아보는 건데, 수업 시간에 한 번 들어본 ‘고향집’ 선율이 건반 누르는 대로 흘러나왔다. 다음 날은 왼손을 두 배 빠른 속도로 쳤다. 그 후로 머릿속이 온통 피아노 생각으로 가득 찼다. 3일째 되던 날 선생님께서 ‘네 마음대로 치지 말고 책을 보고 연습하라’고 하셨고, 헌책방에서 바이엘을 한 권 샀다. 그때 산 책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금 찢긴 빨간 표지에 ‘천동욱’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책 한 권을 1년 동안 혼자 익혔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치다가 한계를 느끼게 됐고, 군산의 부자 동네였던 월명동으로 무작정 향했다. 거기서 피아노 교본을 든 아이들이 오가는 집을 발견했다. 그렇게 나의 첫 스승, 이길환 선생을 만나게 됐다. 레슨비가 3천 원이었는데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마련하셨는지 첫 레슨비를 주셨는데, 선생님이 ‘다음부턴 레슨비 가져오지 마라’라고 하셨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 형편을 눈치 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내 평생 피아노 치면서 든 돈은 3천 원이 전부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내 삶은 온통 피아노였다. 당연히 학교 수업은 뒷전이 됐다. 낮에는 선생님께 레슨을 받고, 밤에는 교회 피아노로 연습하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고3 때 자퇴 처리가 됐고, 고등학교 교육 과정은 이후 야간학교에 진학해서야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숙제인 ‘오롯한 내 음악’ 만들기는 작곡 과정에서 만나게 된 과제일 텐데, 모든 창작자가 안고 있을 이 고민을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하다. 

작곡은 17살쯤 시작했다. 처음엔 내 느낌이 터져 나와 저절로 작곡이 됐는데, 기술을 익히고 난 후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영감은 둘째치고 땡감도 안 나왔다. 이게 왜 안 나올까, 내 음악은 뭘까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나를 찾아야 내 음악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 답을 얻기 위해 1977년 인천 용화사로 향했다. 9개월간 행자 생활을 한 후 사미계를 받았다. 법명은 ‘보림(寶林)’이었다. 

그러던 중 입대 영장을 받아서 군악대에 배정됐지만 ‘나’를 찾는 화두를 놓기 싫었다. 그래서 탈영을 결심했다. 다시 돌아간 용화사에서 진허 스님은 ‘군 생활 3년도 못 하면서 어찌 평생 중노릇을 하겠냐’며 크게 꾸짖었고, 결국 군대로 돌아갔다. 용화사에서 그토록 간절히 찾던 화두였지만, 제대 후엔 작파하고 환속(還俗)하게 됐다.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앞서 말한 세 번째 숙제가 됐나?

계기가 됐지만, 세 번째 화두가 생긴 건 각시 효재를 만나고 나서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인간의 사랑이라는 건 이상에 불과한 거구나. 실현하기 어렵구나’ 하고 접어버렸다. 가슴을 닫았다. 그렇게 질퍽거리고 살다가 효재를 만나고 닫았던 가슴을 다시 열게 됐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세 번째 화두에 대한 답은 일 년 만에 찾았다. 네 가지 숙제 중 가장 빨리 답을 얻었다. 

행자승 시절 송담 스님에게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화두를 받으며 찾아 헤맨 세 번째 숙제 ‘이 뭐꼬’에 대한 답은, 절에서 다 얻지 못했다. 절에서의 경험과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하면서 깨달은 방법을 다 모으니 이것의 답이 ‘풍류’가 됐다. 2002년 화두가 풀리고, 풀린 화두로 2003년 작업해서 ‘허튼 가락’이 탄생했다. 

피아노로 시작된 임동창의 음악은 어떻게 우리 소리를 만나 ‘허튼 가락’이 되었나?

양악은 다 직선인데, 국악은 이와 반대로 곡선의 소리 표현이다. 정확한 음표대로 악보를 분석하며 연주해오던 서양 클래식에 익숙해있던 나는, 처음 휘모리장단을 연주하던 장구 소리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명확한 음을 짚어내는 서양음악과 달리 휘감으며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한다. 곡선의 음악은 그저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것을 아우른다. ‘허튼 가락’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조상이 남겨준 우리의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외갓집이라 부르는 서양음악과 나의 DNA에 녹아있는 우리 고유의 독창성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DNA를 갖고 있다. 이에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의 내면 상태에 따라 연주하는 음악이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르도, 수준도, 기술도 규정짓지 않는 모두의 자유가 담긴 음악이 ‘허튼 가락’이다.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 ⓒ김재성 사진기자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 ⓒ김재성 사진기자

2012년 '피앗고'(피아노와 가얏고의 합성어)란 악기를 만들었다. 새로운 창작이 아닌 기존 악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변형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서양악기를 개조해 우리 소리를 연주할 생각을 하게 됐는지?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양모 해머로 쇠줄을 때리기 때문에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나는 그 고운 소리가 아니라 쳄발로처럼 거칠고 원초적인 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피아노 제작자 서상종 선생에게 이를 개조해달라고 부탁했다. 줄이 쇠니까 소리도 쇳소리가 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아노의 장점은 살리고 음색만 바꾸고 싶어, 해머를 나무로 바꾼 것이 지금의 피앗고가 됐다. 피앗고도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정악용, 다른 하나는 민속악용이다. 살아서 꿈틀대는 이 악기의 소리는 우리 음악의 생동감을 표현하기에 딱 알맞다. 

현재 열두 제자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 또한 앞서 말했듯 ‘교육’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인지?

일부러 학생을 모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인이 놀러왔을 때 따라온 친구가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찾고 싶다며 내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걸 받아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하나 둘 어떻게 알았는지 소문을 듣고 나를 찾아왔고, 2008년 4월 전북 남원에서 한 학부모가 내어준 100년 된 한옥에서 7명의 학생들과 기거를 시작했다. 16년간 이곳을 거쳐 간 학생들은 100여 명 정도이고 나이도 10세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현재 ‘풍류학교’라는 이름 아래 전북 완주군에서 12명의 문하생과 함께 살고 있다. 수업료는 따로 받지 않고 생활비만 형편 되는대로 조금씩 보태서 함께 생활한다. 두 채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학생인 자매의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공간이다. 자매는 이 곳에 지내고, 부모님은 바로 앞집에 사신다. 가족을 코앞에 두고 따로 떨어져서 지내는 거다.(웃음) 

앞서 내가 지나온 길을 들어 알겠지만, 이처럼 긴 세월을 한 호흡으로 이어온 것은 ‘풍류학교가’ 유일하다. 단순히 음악가로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예술을 넘어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음악을 하는 나’보다 ‘내가 하는 음악’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합숙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 각시가 이십년도 전에 나에게 ‘사람 안 바뀝니다. 애쓰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아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말하며 그 믿음으로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몇 년 전 각시가 다시 나에게 ‘사람이 바뀌네요’라고 하더라.

사람끼리 부대끼고 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지 않은 일이 없다. 하지만 상대방만 바뀌길 바라지 않고 나도 함께 바뀌면 변화는 반드시 찾아온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삐치지 않는 것’이다. 언뜻 별 것 아니게 들리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안 삐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크고 작은 일로 다들 삐친다. 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으려면 숨기지 말고 소통해야 한다. 

▲임동창이 이끄는 풍류학교 학생들이 본지 기자들을 위해 환영 연주회를 준비했다 ⓒ김재성 사진기자
▲임동창이 이끄는 풍류학교 학생들이 본지 기자들을 위해 환영 연주회를 준비했다 ⓒ김재성 사진기자

오는 4월 26일에는 베트남에서 한인들을 위한 공연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부대를 이끌고 세계인들과 만나야 하는 운명에 놓이다보니, 재외동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장에서 (사)아시아 한인회 & 한상 총연합회 홍보대사 위촉장을 함께 받게 됐다. 이 인연으로 오는 26일 김영길 아쟁 연주가, 유경화 철현금 연주가, 김주홍과 노름마치 등 국악 예술인들과 함께 베트남 하노이에서 무대를 꾸민다. 제자들은 ‘타타랑’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 평소 나는 새로운 활동의 시작을 재외동포 앞에서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이 공연이 나에겐 매우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잘 준비해보겠다.

전남 신안 자은도에서 개최되는 ‘피아노의 섬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게 됐는데,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오는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 간, 신안 자은도에서 ‘피아노의 섬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이 프로젝트는 서상종 선생을 통해 처음 제안을 받았는데, 평소 이 양반이 피아노 박물관을 얼마나 꿈꿔왔는지 너무 알고 있던 터라 단번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군수님을 만나 ‘왜 피아노 섬을 하고 싶으시냐’고 물었더니, 관광객 증가 혹은 경제적 수익 창출 등은 크게 생각하지 않으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섬 주민들의 자긍심’을 위함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안군을 구성하고 있는 1004개의 섬을 상징하는 1004대의 피아노 연주회를 기획했으나,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100+4=104대 피아노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자은도가 피아노의 메카가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행사보다 중요한 건 아카데미, 교육이다. ‘피아노 학교’에 섬 주민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피아노를 공부할 수 있고, 이로 하여금 자긍심이 살아나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꿈꾼다. 나아가 콘서바토리(conservatory)처럼 운영되길 바란다. 장르는 재즈든 클래식이든 상관없다. 다만, 자기 국적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이 살아있는 음악 창작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풍류학교’의 학생들은, 상황에 따라 유동성이 있지만 보통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함께 모여 피아노를 한 시간 정도 친다. 이후 중간중간 장구치고 노래하는 걸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인 공부 시간이다. 이곳은 학교지만 정규 수업과정도, 의무 교육기간도 따로 없다. 모두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10년째 이곳에 있는 학생도 있다. 진로에 대한 불안함은 없냐고 묻자 “여기에 들어와서 진로보다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정도와 시기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도달 지점을 잘 인지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라며 평온하게 웃어보였다. 속도와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임동창의 열두 제자는 전시, 연주회 등을 통해 각자의 이름을 걸고 재능을 세상에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