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이명호 작가 “사색과 명상으로 ‘사진’과 ‘자연’을 숙명으로 담아내는 작가”
[Culture Interview]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이명호 작가 “사색과 명상으로 ‘사진’과 ‘자연’을 숙명으로 담아내는 작가”
  •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 기자
  • 승인 2023.04.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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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but〉, 0을 통해 무한을 알 수 있었던 작업
안정적인 교수 삶 포기, 살엄음판 ‘작가길’ 다시 돌아오니 정말 좋아
‘샤또 라로끄’ 와인프로젝트, 프랑스 생떼밀리옹에서 작위까지 받아
〈드러내다〉 작업, 한국수출입은행 광고로 이어져
시인 이우성 “이명호가 찍은 사진은 시적인 무엇이 아니라 명백히 시”
‘작가’와 인간 ‘이명호’의 합일, 숨쉬듯 작업 하고파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 기자] “나는 사진가 이명호의 팬이다”(한겨레, <이우성의 낙서 같아> 칼럼 「시적이라고 하는 것」 중) 한 편의 글을 누군가의 팬이라고 선언하면서 시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시선에 대한 자신감과 ‘이명호’라는 작가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문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업실에서 이명호 사진가 ⓒ김재성 사진 기자
▲작업실에서 이명호 사진가 ⓒ김재성 사진 기자

이 달 초, 봄꽃이 다 저물어 갈 무렵 도봉구에 자리한 이명호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중 이 작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이우성 시인의 시집을 소개했다. 이 작가는 “이 시인이 내 전시를 주제로 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이명호의 사진은 시 적인 것이 아니라, 시다’라고 표현했다. 그게 정말 내게 엄청난 감동이었다. 이 시인은 내게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진짜 시인이 그렇게 불러주니 고맙고 많이 행복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시’라고 표현한 이 시인의 말에 나 또한 동의를 한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우리 세계 수많은 순간들 중 딱 하나를 포착해 정지시킴으로서 그 순간의 깊이를 확장하는 듯하다. 특히 무한한 세계 속 딱 한 그루의 나무만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 이 작가의 <나무 시리즈>는 더욱 그 시간대와 공간을 포착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가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서양에서 이 작가 작품의 미학으로는 ‘절제’와 ‘소박미’를 꼽는다. 2007년 국내 첫 개인전 이후, 프랑스 「렌즈 컬쳐」, 네덜란드 「FOAM」 등에 특집 기사로 실리며, 세계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고 2020년 3월 24일에는 프랑스 유력 일간지 「LE FIGARO(르 피가로)」 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현재 프랑스 와인 브랜드 <샤또 라로끄 Chateau Laroque>와 협업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작가의 사진을 마주하면, 고요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동시에 선한 인간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마 이 작가가 작업을 행하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이 작가는 항상 나무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직접 설치하고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작가는 작품 자체는 고요하지만, 작업을 하는 현장은 잔치날 같다며, 그 소리들이 자신을 작업으로 이끈다고 말한 바 있다.

칼럼에서 이 시인 또한, 작품에 묻어있는 캔버스 뒤의 모습을 언급한다. “누군가는 상상할 것이다. 여러 사람이 캔버스를 붙들고 있을까? 서로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있을까? 떠들고 웃을까? 캔버스가 차단한 모습은 이런 것만이 아닐 것이다. 원래 거기 있던 많은 모습이 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어떤 소리들’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올해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은 꾸준하게 자신의 영역 안에서 가치 있는 작업을 한 이들을 주목했다. 이 작가는 적합한 수상자로 꼽혔다. 이 작가의 사진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가 우리 눈앞으로 가지고 오는 작품 한 장은 아주 얇은 하나의 장면이지만, 그 깊이는 더더욱 넓어지고 있다. 여러 층의 레이어를 더듬고, 사진 속 공간 사이를 오갈수록 그의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다. 하나의 단어나 표현의 깊이를 헤아리면서 시인이 숨겨놓은 세계로 함께 걸어 가보는 시와 그의 작품이 비슷한 이유인 듯하다. 인터뷰에선 작품이 아닌 ‘이명호’라는 작가의 세계를 헤아려봤다. 절제되고 고요한 듯하지만, 아주 바쁘고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그의 세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명호,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2(Nothing But #2), 종이+잉크, 1040 x 1040 x 1mm, 2018, 《[드러내다]/[drənæna]》 전시작품 (사진=이명호 작가 제공)
▲이명호,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2(Nothing But #2), 종이+잉크, 1040 x 1040 x 1mm, 2018, 《[드러내다]/[drənæna]》 전시작품 (사진=이명호 작가 제공)

제14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사진부문 수상을 축하한다. 당시 포항국제사진제 심사 일정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늦었지만 수상소감을 듣고 싶다.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전하고 싶다. 부족한 게 많은 데 좋은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수상은 내 개인의 작업 뿐 만 아니라, 우리 사진계를 위한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제’같은 의미로서의 상이 아니었나 싶다. 내 개인 작업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사진계를 위해 이바지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나 뿐 만이 아니라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작업하면서 살아나가도록 하겠다.

굉장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꾸준히 열고 있고, 협업프로젝트도 많았다. 인상 깊은 프로젝트가 있었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바삐 움직였다. 2021년도에 한국수출입 은행과 광고를 찍기도 했다. 사실 나는 금융권에 대한 관심이 전무해서, 한국수출입은행이 제 3금융권의 은행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국책은행인 어마어마한 곳이었다.(웃음) 한국수출입 은행에서는 당시 내가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었던 《[드러내다]/[drənæna]》라는 전시를 보고 연락을 준 것이었다. 그때 했던 작업들은 ‘드러내다’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동음반의어’적인 성격에 주목했던 것이다. ‘드러내다’를 보여주는 뜻의 ‘드러내다’라고 이해할 수 있고, 없애 버리는 ‘들어내다’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 작업이었다.

한국수출입은행 광고의 카피는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일, 그가 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세계무대로 드러내는 일, 한국수출입은행이 잘하는 일입니다”였다. 21년도 4월에 촬영하고 7월부터 송출되기 시작했는데, 현재도 계약이 연장됐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원래 광고를 하지 않는 곳이었는데 창립 45주년을 맞아 진행된 첫 광고 프로젝트였다. ‘드러내다’라는 작업이 이런 식으로도 활용이 되는 것을 보면서, 작가로서 굉장히 영광스러웠다. 광고의 내레이션은 최민식 배우가 맡아줬다.

2018년, 2022년 프랑스 <샤또 라로끄 Chateau Laroque>와 와인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포도밭을 직접 탐방하고, 지역 아이들과 함께 작업 과정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어떤 작업이었는지 궁금하다.

내 작품을 접한 와인 소믈리에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나무 시리즈>를 보고 포도나무 뒤에 캔버스를 두고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시작해 여러 제안들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도 한국수출입은행 광고처럼 홍보를 위한 작업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깊이가 달랐다. 이 협업 작업을 진행하면서, 프랑스 보르도 근교 생떼밀리옹에서 작위까지 받게 됐다. 그들에게 있어서 ‘와인’은 굉장한 전통과 신념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샤또 라로끄 Chateau Laroque> 와인의 포도밭이 총 일곱 군데가 있다. 각각의 농장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그 농장의 포도로 와인을 100병씩 한정 생산한다. 이 와인들의 병 라벨이 내 작업이다. 라벨에는 내 서명과 에디션 넘버가 들어간다. 지금 두 군데서 작업을 완료했고, 200병을 생산했다. 앞으로 500병이 더 나올 계획이다.

나와 함께 작업을 한 와이너리 뿐만 아니라, 포도밭을 가꾸는 프랑스 지역의 이들은 단순히 ‘와인’을 생산하는 ‘밭’만을 가꾸지 않는다.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땅, 그 자체를 존중하고 주변의 환경까지 모두 관리하고 보존해나간다. 그러한 그들의 가치관이 내 작업과 잘 맞아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수 있었다.

첫 번째 라벨 프로젝트의 경우 와인으로 캔버스 천을 물들여, 그 캔버스를 찍은 작품이다. 와인 프로젝트를 제안 받을 때부터, 내 안에서는 ‘컬러 시리즈’에 대한 구상이 조금씩 있었다. 항상 나는 흰색의 컨버스만 사용해왔는데, 그 의미는 비어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하얀 캔버스가 색깔을 입게 되는 순간, 그 ‘색’ 자체가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발상들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와인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두 번째 라벨은 와이너리의 농부들이 갈대나 풀을 들고 풀숲에 서 있는 작업인데, 그들이 자연의 받아들이는 태도를 담고자 했다. 작품은 와인병의 라벨로 사용되고, 지역 와이너리의 작은 방 하나에서 전시를 하는 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 지역 아이들과는 촬영 시에 캔버스를 들어주거나, 와인으로 천을 물들일 때 함께 했다.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때는 정말 즐거웠다. 나는 ‘미술’이라는 작업을 ‘미술계’라는 우리들만의 리그에서 개념적으로 소통하는 것보다 현장으로 나가 직접 다가가면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친절한 방식으로 바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안하곤 하는데, 아이들과의 작업이 그런 맥락이었다. 교육적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는 어린 포도나무를 찍는 작업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키만한 포도 나무 옆에 서고 친구들이 캔버스를 들어줬는데, 작품을 보면 캔버스를 든 아이들이이 캔버스 앞의 상황이 궁금해 고개를 빼꼼 내민 순간이 담겨 있다. 정말 재미있는 작업들이 많았다.

▲프랑스 〈샤또 라로끄〉 와인 프로젝트에서 이명호 작가가 지역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사진=이명호 작가 제공)

제 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출품작인 <귤>은 제주 상징수와 같은 감귤나무에서 추출한 색으로 캔버스를 물들인 작품이었다. 이 또한 컬러시리즈인 것 같다.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는가.

와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귤> 작업도 하게 된 것 같다. 와인으로 천을 염색한 것처럼 또 한 번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박남희 예술 감독의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와인에 비해서 염색이 너무나 어려웠다. 색이 연해서 수십 번 염색을 시도 했고, 채도를 높이려고 양파도 넣고 많은 노력을 했다. 힘든 작업이었는데,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전시장 천고가 8m 정도 됐는데, 그곳에 작품이 걸리니 굉장한 압도감이 전해졌다. 천이 흔들리지 않고 정지해 있을 때는 마치 ‘사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귤>을 작업하고, 프랑스에서도 무대를 만들고 작업을 설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컬러 시리즈는 계속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다음 작업은 콜롬비아의 색을 담은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콜롬비아 식물들의 색을 추출해서, 그 지역 원주민들과 함께 염색하고, 사진 작업을 하려 한다. 공생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보고 있긴 하다. 콜롬비아의 색을 딱 정하진 않았는데, 현재 계속 자료 조사 중에 있다. 남미 전역에 걸쳐서 아마존 우림이 펼쳐져있다. 그 지역의 미묘한 색감을 잘 찾아보고 싶다.

2020년에 프랑스 르 피가로(LE FIGARO)지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인터뷰 상황이 궁금하다.

2018년 첫 번째 와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피가로에서 연락이 왔다. 프랑스 현지에서 내 작업을 도와주는 직원을 통해서 성사될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고, 비대면으로 세 명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 작업과 사진 이외에, 한국 문화계 전반에 대해서 질문했다.

인터뷰에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실제 원고에서는 편집된 부분도 많은 것 같았다. 완성된 원고를 보니 나를 명상을 즐기던 일본 근대 철학자 니시가 기타로에 빗대며 내 작업을 ‘수행의 과정’으로 표현한 것을 봤다. 실제로 나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하는데, 흥미롭게 읽었다.

▲이명호 사진가가 작업실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 작가는 북한산 정상 정서 방향에 자리한 도봉구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북한산을 좋아해서, 북한산을 돌면서 작업실을 옮겨 다니고 있다. 3~4년 뒤에 북한산 정북 방향에 작업실을 둬볼 예정이다. ⓒ김재성 사진 기자
▲이명호 사진가가 작업실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 작가는 북한산 정상 정서 방향에 자리한 도봉구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북한산을 좋아해서, 북한산을 돌면서 작업실을 옮겨 다니고 있다. 3~4년 뒤에 북한산 정북 방향에 작업실을 둬볼 예정이다. ⓒ김재성 사진 기자

자연 속에 흰 캔버스만 덩그러니 놓아둔 <Nothing but> 작품도 흥미롭다. ‘비움’으로서 ‘채움’을 시도하는 작업이었는데,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지.

<나무 시리즈>를 작업할 때,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해서 사진을 촬영했다. 이 때 나는 ‘나무를 잘 보여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재현’을 하고자 한 것인데, 나에게 ‘재현’이라는 ‘드러내다’라는 개념은 ‘사진이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화사를 파고 들어가게 됐다. 나아가 ‘본질적인 재현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대상 뒤에 캔버스를 설치함으로써 ‘재현’을 표현해보고자 하는 작업에 이르게 됐다.

<나무 시리즈>를 할 때에는 나무에게도 얼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나무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한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인간도 증명사진으로 정면 사진을 쓰는 것처럼 나무의 정면 얼굴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한 나무를 굉장히 여러 번 찾아가서 바라보고, 친구들이나 작업실 동료들과도 함께 가서 열심히 나무의 얼굴을 찾았다. 결국 그 행위는 하나의 ‘뷰 포인트’를 찾는 작업이었다.

학생 시절, 사진학 개론 시간에 교수님이 한 얘기가 있었다. ‘사진이라는 것은 한 점을 찾는 직업이다’라는 말이었는데, 생각하고 보면 사진 뿐 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어떤 ‘관점’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라는 직업도 하나의 관점을 찾는 일이고, 정치인도 예술인도 어떤 상황이나 대상을 두고 하나의 점을 통해서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그 하나의 포인트로 전체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나무가 내게 반문을 하는 듯 했다. “네가 나를 안다고 생각해? 너는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이 <나무 시리즈>도 나무가 가진 무한대의 뷰포인트 중의 딱 한 가지이지 않은가 싶었다. 결국 무한대 분의 1이 되는 것인데, 무한대 분의 1은 0이다. 결국 나는 ‘나무’를 잘 보여주겠다고 여태껏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꼴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때 다시 생각했다. 그럼 이 ‘나무’를 잘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순간 무한대와 0의 자리를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대 분의 1은 0이지만, 0분의 1은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

‘드러내’려고 하면 ‘들어내’지는 상황이 오고, ‘들어내’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한을 표현할 때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을 다 비울 때 무한이 드러날 수 있다는 걸 보고, 이것이 언어적으로도 딱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우주의 원리가 상통한다고 느꼈다.

나는 종교가 없는 대신 사람이 태어난 ‘팔자’를 믿고, 신(神)이 있다면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돌고 돌아 ‘드러내다’와 ‘들어내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잘 쓰는 사진작가가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웃음) 내게 큰 깨달음이 있는 작업이었다.

반사경이 없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듣고 싶다.

나는 완전 아날로그 식의 카메라를 사용한다. 카메라에는 렌즈에 들어온 상(像)을 바로잡기 위해서 반사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반사경이 없어서 상(像)이 뒤집혀서 보인다.

태도가 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무겁고 불편하다. 또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다 보니, 현장에서 바로바로 작품을 확인할 수 없다. 작업 현장에서 교정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필름 한 장에 25만 원, 27만 원씩 하기 때문에 쉽게 필름을 낭비할 수도 없다. (웃음) 결국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정성을 다해서 찍게 된다. 그렇게 찍으면 결과물도 참 좋다. 결국, 정성을 기울이기 위해 이 아날로그 카메라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나는 굉장히 아날로그 적으로 작업을 구현한다. 나무 뒤에 직접 캔버스 구조물을 설치해서 작업하고, 행위로서 사진이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나가는 작업을 행하고 있다.

▲문화유산 왕버들 나무, Heritage Wangbeodle #1_1
▲문화유산 왕버들 나무, Heritage Wangbeodle #1_1 (사진=이명호 작가 제공)

학교에서 꽤 오래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정식 교수로 안정적인 루트를 밟을 수도 있었는데 포기했다. 학교를 갔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고, 나올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대구 경일대학교에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년 강의를 했다. 처음에 강의 제안이 왔을 때 많이 거절했다. 현장에 계속 있고 싶었다. 필드에서 활동하는 것이 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이라면,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뒤를 보면서 후학들도 돌보면서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앞을 보고도 가지만 뒤를 보면서도 갈 필요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의 제안을 승낙했고, 처음에는 굉장히 열심히 임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시간과 에너지가 있는데, 많이 빼앗긴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후학 양성’이라는 어떤 보람들이 어느 정도 충족됐다면, 아깝지 않았을 텐데 그 충족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부족한 면이 있었고, 학생들이 잘 안 따라와 주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이럴 바엔 그냥 한 가지 길을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교수직을 포기하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엄청난 명예 직종이고, 안정적인 삶을 걸어 나갈 수 있는 기회다. 포기할 때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정적인 직장에 있고자 예술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용기를 내야겠다고 결심했고, 다시 살얼음판을 걸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작가의 길로 다시 돌아오니, 정말 좋았다.

‘무명 시절’이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어려움 없이 ‘꽃길’만 걸어왔다고여기는 데 어떤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어려움’이다. (웃음) 아마 이렇게 얘기하면, 어디서 뒤통수 한 대 때릴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다. 필드의 주목이 있어서 항상 부담이 있었고, 언제나 시샘의 대상이었다. 뭐든지 나눠가질 수 있는 파이가 적으면 싸움이 치열해지는 법인데, 아트씬은 언제나 파이가 적은 곳이다. 그러다보니 조금 튀거나, 돋보이면 쉽게 시샘 받았고 그것에 많이 시달렸다. ‘꽃길’이라는 것이 ‘생계’의 문제와 이어진다면, 나는 확실히 혜택을 많이 받은 건 맞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즐겨 읽는 책이 있다면.

이우성 시인의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를 읽고 있다. 이 시인과는 친분이 있고, 같은 동네 주민이기도 하다. 시집을 선물 받아서 읽고 있는 데 정말 좋다. 이 시인과의 인연은 이 시인이 2019년 한겨레신문 <이우성의 낙서 같아> 칼럼 「시적이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당시 갤러리현대에서 연 내 전시를 소개하는 칼럼이었다. 이 시인은 그 칼럼에서 “나는 이명호가 찍은 사진은 시적인 무엇이 아니라 명백히 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내게 그 문장이 엄청난 감동이었다.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함축적이어서 좋았다. 사진은 시공간에 잠깐 넣다 빼는 필름으로 빈약한 매체일 수밖에 없다. 사진을 보기 위해서 관객들을 사진의 여러 겹의 레이어를 봐야하는데, 이러한 서정성들이 ‘시’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답하고 있는 이명호 작가, 옆에는 이 작가가 사용하는 카메라가 놓여있다.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답하고 있는 이명호 작가, 옆에는 이 작가가 사용하는 카메라가 놓여있다. ⓒ김재성 사진 기자

올해 전시 계획은?

프랑스 아를에 있는 이우환 재단 공간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아트슈드(ACTESUDE) 라는 곳과 함께 작업할 계획이다. 원래 올해 안에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었으나, 주최사 내부 사정으로 조금 연기가 되고 있다. 국내 전시는 많이 안 잡았고, 내년 초쯤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를 선보일 것 같은데 아직 많은 것이 미정이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작가’라는 직업을 좋게 보고 동경해왔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원하는 작가 상도 존재했다. 그런데 지금은 ‘작가’라는 직업과 ‘이명호’라는 인간의 삶을 분리하지 말고, 하나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무엇을 이루고, 말고 할 것 없이 일과 삶이 하나가 되길 바란다.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걸 안 할 수 없는 것처럼, 작업을 안 할 수 없는 삶이길 바란다. 작업이 삶의 일부인 그런 상을 원하게 됐다. 굳이 ‘되고 싶은 작가’를 정의하자면, 신내림을 받듯 숙명적으로 사진이 내 삶의 일부분으로 온 작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