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남정숙 대표의 명예훼손 ‘혐의없음’이 문화예술계에 미치는 의미
[단독]남정숙 대표의 명예훼손 ‘혐의없음’이 문화예술계에 미치는 의미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4.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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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 남정숙 본지 편집위원 ‘명예훼손’ 형사고소 ‘불송치, 혐의없음’ 결론
1년 만인 지난 3월 28일, 결정문 받아
남정숙 “‘정의는 더뎌도 마침내 승리하는 것’ 진리 증명하게 돼 기뻐”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남정숙(대한민국문화예술인포럼, 이하 포럼) 대표에 대해 지난달 28일 수사기관이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남 대표는 지난해 4월 19일 서울시 예술회관 대표 안호상 사장으로부터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2010년 12월 학계와 언론계, 광고계 등 인사로 구성된 예술의전당 비전위원회가 출범했다. 남정숙 대표(왼쪽에서 다섯번째)는 비전위원으로 경영자문을 맡았다.
▲2010년 12월 학계와 언론계, 광고계 등 인사로 구성된 예술의전당 비전위원회가 출범했다. 남정숙 대표(왼쪽에서 다섯번째)는 비전위원으로 경영자문을 맡았다.

문화예술계에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남정숙 대표는 15년여 이상을 안호상 사장의 비리사실에 대해 꾸준히 주장해왔다. 

안 사장은 예술의전당ㆍ국립극장ㆍ세종문화회관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술센터에서 임직원직을 두루 거친 현직 문화예술계 정점에 있는 권력자이고, 남정숙 대표는 비록 민간인이지만 1세대 문화기획자로서 40여 년 동안 현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계 산 역사이자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남정숙 대표는 성균관대학교 대우전임교수 시절 성균관대학교 미투 폭로를 했으며 2018년 대한민국 미투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남정숙 대표는 본인이 확보한 증거자료들을 근거로 안 사장이 문화예술경영자로서 자질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음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아울러 블랙리스트를 비롯해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망친 사람이 국공립 문화예술센터 기관장 등에 임명되는 것의 부당함에 대해 주장하고 이에 대한 근거들을 추적하고 업데이트하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다. 남 대표는 “코로나 이전에만 해도 문화예술계 역사를 아는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조자들도 함께 행동했으나 정권이 몇 차례 바뀌어도 승승장구하는 안호상 사장의 대단한 관운 앞에 문화예술계의 약한 고리들은 정의의 스크럼을 멈추고 하나 둘 몸을 숨겼다”라며 “코로나 이후에는 지원기금 신청에 불이익을 이유로 공동투쟁을 멈추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대표는 안 사장의 문제를 여러 경로를 통해 홀로 제기해왔다. 그러던 중 400여 단체가 참여한 2021년 안 사장의 세종문화회관 사장 내정철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포럼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안호상 사장은 남정숙 대표 개인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으로 형사 고소했다. 남정숙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한 이유를 묻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안 사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남 대표는 “안 사장이 블랙리스트 주동자라는 등의 부정적 행적에 대한 언급은 2017년 1월부터 현재까지 5~6년 동안 수백 개의 기사와 SNS 등에 산재되어 있다. 남정숙 대표 개인을 고소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언론사가 존재하는 한 기사 등으로 영원히 박제화 되어 있으므로 명예훼손은 남정숙 대표의 책임이 아니라 과거의 본인책임인 것” 이라고 지적했다.

물 밑에 잠겨있던 안 사장의 블랙리스트 흔적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만인이 알게 된 계기는 2021년 오세훈 시장이 400여 문화예술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호상 사장을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내정할 때부터였다. 그러므로 안 사장이 블랙리스트 주동자라는 혐의를 벗고 싶었다면, 당시 내정철회를 주도한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나 세종문화회관 노조 등을 고발하거나 아니면 내정철회에 참여한 400여 단체들과 그 중 하나의 단체였던 대한민국문화예술인포럼(회장 남정숙)을 동시에 고발했어야 한다. 

그러나 안호상 사장은 남정숙 대표 개인을 형사고발했다. 누가 봐도 불공정하고 어색한 고발이었다. 주동자도 아니고 단체도 아닌 남정숙 개인을 타겟으로 하는 형사고발은 안호상 사장이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형사고발을 통해 힘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적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비춰졌고, 그동안 강약약강 처신으로 블랙리스트 주동자까지 이어져 온 그의 부정적인 이미지만 더욱 부각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남정숙 대표가 받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불송치 결정 통지서

“문화예술 기관장 자격ㆍ도덕성, 국가에서 검증해야”
안호상 사장 명예훼손 ‘혐의없음’, 블랙리스트 가해자에 대한 공식적ㆍ법률적 근거 확보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승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문화예술계에서 돌아봐야 할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정숙 대표는 “안호상 사장 역시 자신의 비리와 과오를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일련의 증거들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행적들을 모두 부정한다면 이는 오만에서 오는 허위선동에 불과하다. 허위선동이 어떻게 역사적 진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라며 “과거 자신의 행적을 모두 지우고 싶다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개인을 고발할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 직간접 피해를 당한 문화예술인들 전체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는 안 사장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 등 문화예술 생태계에 피해를 끼친 가해자 전체에게 해당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정숙 대표는 15년 이상을 안호상 사장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비리들을 추적해왔고, 서울문화투데이의 편집위원으로 칼럼으로 기록하고 시민에게 알리는 일을 지속해 오고 있다. 

이번 안호상 사장의 사건에서도 ‘혐의없음’ 결론이 바로 그의 ‘혐의있음’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남정숙 대표가 15년 이상 개인적으로 주장해왔던 주장과 증거들이 사실이라는 것은 밝혀진 셈이다. 그동안 문화예술인들조차 남정숙 대표의 주장이 과격하다거나 분란을 일으키는 행동으로 치부하기도 했으나, 이번 형사사건의 결론으로 오히려 남정숙 대표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한 문화계 인사는 “‘혐의없음’으로 안호상 사장 스스로가 주장하는 과거행적보다, 남정숙 대표가 검증한 안호상 사장의 과거행적이 더 진실임이 밝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임직원 임명 당시 오세훈 시장을 비롯해서 국가에서 제대로 된 역량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문화예술이 점점 낙후되고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소수의 카르텔들이 몇 개 되지 않는 국공립 기관장들 자리를 돌려막기를 하며 수십 년 간 소수의 정치편향 비전문가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기관장들의 자격과 도덕성 검증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남정숙 대표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안호상 사장이 형사고발에 실패함으로써, 가해자들의 ‘자신들은 블랙리스트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허위주장에 대한 공식적ㆍ법률적인 사례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규모는 밝혀진 것만 총 9,273건(단체 342곳, 개인 8,931명)에 달한다. 서울연극협회만 유일하게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승소했을 뿐 가해자들을 다 가려내지 못했으며,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구제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언론과 감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진상조사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영화진흥위원회 진상조사위 등에서 자체조사 등을 진행하고 보고서 등을 만들었고 징계권고안 등을 제안했으나 안 사장의 “블랙리스트 혐의를 벗었다“는 구두주장에 대해 속수무책인 면이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남정숙 대표의 ‘혐의없음’ 사례는 안호상 사장 블랙리스트 및 예술의전당 재임 문제에 관한 확실한 공식적ㆍ법적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