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아르코미술관 《기억ㆍ공간》, ‘예술’로 ‘공간’을 기억하는 법
[전시리뷰] 아르코미술관 《기억ㆍ공간》, ‘예술’로 ‘공간’을 기억하는 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4.21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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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미술관 주제기획전, 오는 7월 23일까지
동시대 작가 9명이 기억하는 ‘아르코 미술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면 사람들에게 잊힌 장소에서 가상의 문을 닫는 행위가 나온다. 이 때 주인공이 문을 닫기 위해선 그 공간을 지나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올려야 한다. 놀이공원에 놀러왔던 가족이나, 학교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목소리 들이다. 어떤 존재가 한 공간에 머물게 되면, 그 공간은 더 이상 하나의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그 공간에 존재했던 무수한 존재들에게 그곳은 각자 다른 기억으로 남게 된다. 또한, 그런 기억이 쌓일수록 공간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문승현, 미술관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 (사진=아르코 제공)
▲문승현, 미술관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 (사진=아르코 제공)

올해 아르코미술관의 주제기획전 《기억ㆍ공간》은 동시대 작가들의 시선으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아르코 미술관’을 기억해보는 전시다. 지난 14일 시작해, 7월 23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올해 10월 맞게 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설립 50주년 및 내년 3월 아르코미술관(구 미술회관) 개관 50주년을 계기로 기획돼, 지난 시간동안 ‘미술관’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자리해왔는지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선을 제안한다.

지난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임근혜 관장은 “팬데믹 시기에 아르코 미술관은 이동, 경계, 다양한 종 등의, 시대의 첨예한 주제들을 다뤄왔다”라며 “팬데믹 시기동안 우리는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고민과 함께 아르코미술관 개관 50주년에 앞서서 이번 전시를 선보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주제기획전 《기억ㆍ공간》은 아르코미술관에 대한 동시대 작가들의 기억을 통해 미술관 안과 밖의 다양한 공간을 연결하고 활성화함으로써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해본다.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설치 등을 포함해 국내외 작가 9명(팀)의 23점 모두 신작으로 구성되며, 전시장을 비롯해 아카이브라운지, 프로젝트스페이스, 야외 로비, 계단, 통로, 화장실 등 미술관 곳곳에서 펼쳐진다. 공간을 매개로 형성된 개인적·사회적 기억을 감각적 매체로 다루는 예술적 기록을 시도하며, 오늘날 예술과 사회의 관계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박민하 작가가 〈터(군중)〉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미술관을 기억하는 9명의 다른 작품

이번 전시에는 김보경, 다이아거날 써츠, 문승현(옐로우 닷 컴퍼니), 박민하, 안경수, 양승빈, 윤향로, 이현종, 황원해 9명(팀) 작가들이 참여했다. 작가들은 《기억ㆍ공간》이라는 주제로 모두 다 신작을 제작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미술관에 대한 기억, 미술관으로부터 촉발된 기억, 미술관 어떤 공간에 대한 사유가 작품의 소재가 됐다.

아르코미술관이 위치한 장소는 옛 경성제국대에 이어 서울대 문리대가 자리했으며, 1960년 4.19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한 후 조성된 마로니에 공원 안,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로 1979년 미술관이 완공됐다. 이후 붉은 벽돌 건물은 바로 옆 아르코극장과 함께 대학로의 상징이 됐다. 한국 최초로 동시대 미술을 위한 공공 전시장으로 신축된 미술회관(아르코미술관의 전신)은 1960~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90년대 이후 청년문화와 소비문화가 주도한 사회 변화 등을 목도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이러한 다양한 시간의 층을 가로지르며, 미술관과 직접 관계 맺어온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미술관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목격했을 법한 역사적 순간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작가들이 기억하는 미술관의 모습은 다양하고, 그 표현의 방식도 다채롭다. 전시는 《기억ㆍ공간》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다양하고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 장르 역시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회화, 조각, 영상, 사운드설치 작품이 설치되며, 전시 공간 역시 지하 전시장 뿐만 아니라 전시장 외부와 2층 공간까지 아우른다.

▲양승빈, SGS No.1, No.2, 구니스(2023)
▲양승빈, SGS No.1, No.2, 구니스(2023) (사진=아르코 제공)

특히, 이현종의 사운드설치 작품 〈아마데우스 의자〉는 2층 전시실에서 내려가는 계단과 화장실에서 만나볼 수 있고, 또한 마로니에 공원 방향으로도 사운드가 재생된다. 아르코미술관 1층의 야외 로비는 마로니에 공원과 맞닿아 있으며, 건물의 양옆, 공원과 낙산 방향의 도로에 개방되도록 설계됐다. 작가의 사운드 설치 작품은 공간의 벽을 허물고 내부로 침투하는 소리 경험에 기반해 예술과 일상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안과 밖의 동세와 영향을 주고받는 아르코미술관에 대한 경험을 풀어나간다.

미술관에 대한 기억을 구축하는 방식도 다채롭다. 김수근 건축가에 대한 사실, 허구, 상상력을 기반으로 촬영한 모큐멘터리(페이크 다큐멘터리) 영상과 그 이야기에 대한 증거물로 김수근 건축가(가 만들었을 법한)의 의자 작품 <구니스>를 선보이는 양승빈 작가는 유명한 건축가들은 대부분 의자를 제작했는데, 왜 김수근 건축가는 의자를 디자인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작품을 제작했다. 양승빈은 실재와 허구를 넘나들며, 김수근 건축가의 인터뷰 중 그가 제작하려던 의자에 관한 단서에서 출발해 미발표 테라코타 의자 원작을 복원한다. <구니스>는 아르코 미술관을 바라보는 허구가 더해진 색다른 시각의 장을 열어준다.

박민하 작가는 자신이 경험했던 아르코 미술관과 마로니에 공원에 대한 감각을 직접적으로 작품 〈터(군중)〉 안에 녹여낸다. 박 작가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마로니에 공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당시 마로니에 공원에는 바닥으로 움푹 패인 무대같은 공간이 있었고, 그 곳에서 다양한 춤이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발산되는 에너지를 작품 안에 담고자 했다”라며 “동시에 마로니에 공원은 젊은 사람들의 시끄러움과 나이든 분들 조용함이 중첩되는 곳으로 그 간극이나 에너지의 변화가 신기했다. 그래서 총 4개의 면을 통해 그 감각들을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박 작가의 작품은 지하 1층과 미술관 외부 2층 창문에도 설치돼 있다. ‘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아르코 미술관이 모두의 패기어린 순간의 목격자로 만든다.

▲ 미술관 2층 창문에 설치된 박민하 작가 마로니에 공원을 바라보는
▲ 미술관 2층 창문에 설치된 박민하 작가 <눈> 마로니에 공원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몸으로 공간을 기억하는 행위

《기억ㆍ공간》전시는 ‘기억’과 ‘공간’이라는 관념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 ‘신체성’을 더하며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간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 문승현 작가와 함께 참여한 김경민 작가는 “공간의 의미는 사람의 경험 기억을 통해서 완성된다. 김수근 건축가는 수많은 건축물을 완성했지만,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축물을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건축물을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라며 “공간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서 좀 더 역동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건물이 가지고 있는 동세를 살피고자 했고,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기억하는 미술관에 대해서도 말해보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신체성’이라는 키워드와 가장 근접한 작품 중에는 문승현(옐로우 닷 컴퍼니)의 퍼포먼스 영상작업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가 있다. 사실 아르코 미술관은 휠체어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한 공간이다. 아르코미술관의 1층의 개방형 로비, 필로티 구조는 다양한 예술이 연결되는 문화적 통로로서의 건축적 상징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건축적 특징과 함께 휠체어로 접근이 불가능한 공간, 즉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기능이 상실되는 지점에 주목해본다. 작품에서 공연자들은 건축 설계의 물리적 한계를 신체의 행위를 통해 노출시키고, 이들의 신체를 건축물의 물성, 부동성, 장소성으로 연결하는 매개체로 상정한다.

전 학예사는 “내년 아르코 미술관 개관 50주년을 앞두고 있다해서, 미술관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려고 전시를 기획하지 않았다. 아르코 미술관엔 실제 휠체어를 타신 분들은 입장이 힘들다. 그때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어떤 공간의 요소들을 지금은 짚어보면서, 공간에 대한 ‘반항’같은 시선도 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작품 <미술관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를 설명하는 (좌) 문승현 작가  (우)김경민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지하 1층과 2층 전시장에서 연속적으로 볼 수 있는 김보경의 〈양손의 호흡 - 5mm 왕복 운동으로 만든 반사광 #2〉 은 ‘기억’을 하나의 행위로 구현해내, 그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김 작가는 아르코미술관과 관계된 과거와 오늘의 여러 이미지들을 혼합, 중첩, 변형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들은 아르코미술관을 중심으로 마로니에 공원, 대학로, 동숭동, 낙산을 탐색하며 때로는 대륙을 지나고 물길을 따라 바다를 넘어 확장되기도 한다.

김 작가는 “자료를 리서치하는 과정의 과거를 탐색하는 작업이었고, 이 이미지들을 혼합ㆍ중첩시킬 때는 현재에 머물고 있었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고가는 것이었다. 이는 뜨개질 작업과 많이 닮아있었는데 바늘이 오고가면서 직조하는 방식이 기억의 방식과 같았다. 또한, 뜨개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내 감정을 담을 수 있는 행위였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미지를 합성하고 재조합하다가 중간에 작업을 멈추고 대바늘 뜨개질을 한 후, 다시 이미지 작업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를 기억한다. 그 행위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소실되고 남는 흔적을 신체의 운동성으로 탐구하는 것으로 새로운 인식으로 향하는 방법이다.

▲월페이퍼 작업 <표풍하는 걸음>과 〈양손의 호흡 - 5mm 왕복 운동으로 만든 반사광 #2〉 작품을 설명하는 김보경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더불어 이번 전시에는 게스트 큐레이터(손세희)와 SEOM:이 협업한 전시 연계 사운드워킹 프로그램이 있다. 관람객 참여형 행사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특별히 제작된 소리와 지도를 따라 미술관을 산책해보는 것이다. 참여 관람객은 작가와 함께 평소 출입이 제한된 공간을 포함해 미술관 곳곳을 작가와 함께 접근해 보며, 소리를 통해 공간을 자신만의 기억으로 재구성한다.

예술에 있어서 ‘기억’이란 자칫 평범하거나 식상한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기억ㆍ공간》전시는 ‘아르코 미술관’에 대한 살아있는 기억, 문자의 기억, 역사의 기억등을 담아 다양한 시선을 제안하고 있다. ‘미술관’에 대한 과거, 현재를 딛고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