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안에서 하룻밤을... 순천 ‘낙안읍성’
성안에서 하룻밤을... 순천 ‘낙안읍성’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1.0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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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벽 초가지붕 돌담사이 고샅길 거닐어, 흥이 절로난다

무자년 끝자락 31일. 고향 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순천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빨리 도착하길 바라는 초조한 마음에 엉덩이를 들썩이며 4시간을 넘게 달리던 열차가 순천역에 멈췄다.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역을 빠져나오니 빨간색 시티투어 버스가 낙안읍성, 순천만 등 순천의 유명한 관광지로 안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기대에 부풀어 흥분된 마음을 부여잡고 15분쯤 달렸을까.
낙안읍성 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벌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갈대밭이 은빛 물결 포구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풍경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문학관, 채동선 음악당, 나철 선생의 고향, 소화다리(부용교), 보물 31호로 지정된 홍교 등 우리 역사와 문화가 곳곳에 배여 있는 벌교에 취해 정신 차리고 보니 장승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표정을 한 위엄 있는 장승들이 지키고 있는 서문을 지나 성곽에 오르자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한 눈에 다 들어오기 벅찰 정도로 넓었고 그 목가적인 풍경은 누구나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저녁 해질 무렵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와 냄새를 맡다보니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이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져 향수에 젖기 시작했다.

▲ 서문 성곽에 올라서면 서민의 생활터전을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낙안읍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넓은 평야지대에 자연석을 이용해 높이 4m, 전체 1,410m 길이의 정방형으로 지어진 성곽은 생활근거지를 감싸 안은 듯 안온했다.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끊긴 데가 없이 견고했고 그 웅장함은 이를 데가 없었다.

동문과 서문을 잇는 큰길 너머는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의 관아(官衙)들과 낙안군 시절 군수가 집무하던 동헌(東軒), 거처였던 내아(內衙), 조정 사신들의 숙소였던 객사(客舍)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초가집사이에 우뚝 선 관아는 위풍당당해 보였다.

이처럼 조선시대 성곽부터 동헌, 객사, 임경업 군수비, 중요민속자료 가옥 9동, 장터, 초가까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된 낙안읍성 민속마을.

지금도 성 안과 밖에는 279명의 사람들이 108세대를 이루어 동·서·남내에서 실제 생활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 학술자료는 물론 서민들의 역사와 문화, 생활사까지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했다.

▲ 낮은 돌담과 사립문에 둘러싸여 낙안읍성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도서관'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과 집 안이 들여다보이는 낮은 돌담에 얽혀 있는 담쟁이와 호박넝쿨과 어우러져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낮은 돌담 덕에 개에게 밥을 주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쳐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시는 모습에서 친근함과 동시에 모처럼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정을 느꼈다.

마을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가락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동초제 판소리의 창시자이며 ‘심청가’와 ‘적벽가’로 유명한 동초 김연수 선생의 판소리 보존회. 마을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판소리 한마당에 심취해있었다.

▲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게 나무로 된 표지판이 마을 어귀의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흙벽의 초가지붕 돌담 사이에 나있는 고샅길을 거닐어보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흥이 절로 난다.

동문 ·서문 ·남문의 길들이 만나는 중심부에는 시시때때로 장터가 열려 관람객들도 장을 보고, 장터 주위 음식점들도 옛정취로 물씬 풍긴다. 초가지붕 처마 끝에 잇대어 쳐진 흰 광목 차일이 펄럭거리고 그 아래 평상마다 상(床)들이 놓여 있다. 소머리국밥·설렁탕·팥죽·빈대떡·동동주·막걸리 등 옛날 음식들에 결국 동동주 한 잔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읍터 대장간에서는 83세의 대장장이가 쇠를 달구어 농기구를 직접 만드는 모습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체험시간도 마련돼 있다.

▲ 옛날 군수들이 드셨다는 '큰샘' 우물

 성내에 깊은 우물을 파면 그 마을이 쇠한다고 해 낮은 곳에서 고스란히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는 우물은 옛날 군수들이 드셨다고 ‘큰샘’이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옛 모습을 보존하고 지켜나가기 위해 초가집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가꾸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존경스러웠다.

여느 집 관람은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높지 않은 돌담 너머로도 초가집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골목골목 물레방앗간, 서당, 도서관 등 생각지 못한 옛 것들로 즐거움이 배가 됐다.

 

민속마을에서 유일하게 개방돼 있는 초가집은 서문에서 제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국가문화재 95호로 지정돼 있는 서내리의 김대자 가옥으로 현재 낙안읍성 민속마을 보존회 송상수 소장이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체험 가옥으로 개방해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 국가문화재 95호로 지정된 서내리의 김대자 가옥, 현재 체험가옥으로 방안을 제외하고는 개방해 관람객들이 드나들 수 있다.

마당은 투호와 다듬이질 체험장으로 내 놓았고, 혼례식 상차림과 가마, 예복을 전시해 흔히 볼 수 없는 서민 전통혼례식을 상상해볼 수 있게 했다.

토방에 놓인 흰 고무신 신고 마당 한 바퀴 돌아보니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위의 장독과 마당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절구통은 할머니 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정감이 간다.

초가지붕 처마 밑 나무선반에는 다이얼 전화기, 라디오, 나무주판, 초롱불 등 생활용품들이 즐비해있어 서민생활을 엿볼 수 있다.

마당 한 켠에는 맛있는 장이 담긴 장독대가 옹기종기 놓여있고, 작은 우물에는 바가지가 반쯤 빠져있어 지금도 쓰고 있는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 마당에 마련된 투호와 다듬이를 직접 해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관람객들의 모습
부엌 아궁이의 빨갛게 타오르고 있는 불씨는 자연스레 따뜻한 아랫목을 생각나게 했다.
보일러가 설치돼 있지만 전통방식을 고수해 나무땔감으로 불을 넣는 온돌방을 사용하다보니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감자, 고구마에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시간도 길을 잃은 낙안읍성 민속마을 초가집 온돌방에서의 하루는 어떤 이에게는 추억을, 또 어떤 이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왔지만 아직도 몸은 따뜻한 온돌방의 아랫목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순천 낙안읍성,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아침 일찍 출발해 기차나 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이면 순천에 도착.

순천만으로 가는 길에 보리밥·백반 정식으로 유명한 ‘벽오동’에서 맛보는 전라도의 특색이 있는 20가지가 넘는 맛깔스런 반찬이 함께 하는 식사는 6천원이 아깝지 않다.

순천만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장의 설명을 들으며 구부러진 물길을 들어가면 용산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생태도시 순천의 세계적인 습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S라인 수로와 갯벌에 펼쳐진 황금빛 갈대밭이 어우러진 그 사이에서 천연기념물 흑두루미의 비상까지.
이밖에도 검은 머리 갈매기, 송곳부리 도요새, 괭이갈매기 등 많은 종류의 조류들도 볼 수 있다. 

순천만에서 벌교를 지나 20분쯤 가면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나온다.
살아 숨 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에서 서민들의 역사와 문화, 생활사를 배우고 직접 체험해보면서 낙안읍성의 매력에 취해보자.

판소리를 들으며 마을 구석구석을 거닐다 출출해지면 목가적인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는 주막 같은 음식점에서 동동주에 파전도 좋겠다. 내키지 않거나 아이들과 함께라면 근처 별량에서 싱싱한 꼬막과 새조개 등 지역 해산물을 맛보는 것도 괜찮을 듯..

낙안읍성까지 왔으니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어른들에게는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의 추억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
아침에 씻는 것이 걱정이라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금전산 중턱에 낙안온천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