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SeMA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뉴욕 풍경이 서울 도시로 전하는 감정
[현장리뷰] SeMA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뉴욕 풍경이 서울 도시로 전하는 감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4.25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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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서소문 본관, 오는 8월 20일까지
뉴욕휘트니 미술관 공동기획, 160여 점 작품 공개
에드워드 호퍼 65년 화업 조명, 7개 섹션 구성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뉴욕의 도시 풍경을 특유의 빛과 그림자, 대담한 구도로 표현해낸 작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를 조명하는 국내 첫 전시가 열렸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은 2023년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를 지난 20일 부터 오는 8월 20일까지 서소문본관에서 개최한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 실내〉, 1921년경. 캔버스에 유채, 61.8 × 74.6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200.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사진=SeMA 제공)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세계적 명화들을 소개하는 해외소장품 걸작전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이번전시는 2019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이 협의를 시작해 공동 기획한 전시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 점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의 자료 110여 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누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충실히 조망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작가가 선호한 장소를 중심으로 섹션을 구성해, 호퍼가 어떻게 도시를 바라보고 표현해왔는지를 선보인다. 또한, 장소적인 ‘길’ 뿐 만 아니라 호퍼의 ‘작업의 길’ 측면에서도 전시를 읽어볼 수 있다.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작품의 지평을 넓혀간 호퍼의 65년 화업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이전 섹션의 작품들이 이후 섹션과 연결되는 경우도 만나볼 수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사진=SeMA 제공)

작품 뿐 만 아니라 호퍼의 아카이빙 자료도 주목할 전시작이다. 이번 전시에선 호퍼의 그림 판매 장부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공개된다. 호퍼의 부인 조세핀 니비슨 호퍼는 그림이 판매될 때마다 장부에 기록을 해뒀다. 장부의 실질적인 기록자는 조세핀이었지만, 사실 호퍼 부부가 함께 장부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호퍼는 1913년 최초로 작품을 판매하면서부터 호퍼는 장부에 제작한 작품에 대한 작은 스케치를 그려 넣었고, 조세핀은 과묵한 호퍼가 결코 말한 적 없던 작품에 대한 일화와 세부 사항 등을 상상하면서 그 작품에 대한 생생한 설명을 추가했다. 작품의 생생한 뒷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계관을 좀 더 깊이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작이다.

호퍼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조력자였던, 조세핀 호퍼를 하나의 섹션으로 구성한 것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이다. 에드워드 호퍼와 조세핀 호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에드워드가 조를 만나면서 더욱 잘되기 시작했고, 부부는 눈을 감는 날까지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전시투어에서는 에드워드와 조세핀에 관련된 질의가 있었지만,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이승아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가 에드워드 호퍼의 가정사를 조명하는 전시는 아니다. 에드워드의 조력자, 동반자로서의 조를 조명해보고자 했다”라며 선을 그었다.

▲에드워드 호퍼, 조세핀 니비슨 호퍼, 〈작가의 장부 1권〉, 1913–63.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Gift of Lloyd Goodrich 96.208.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사진=SeMA 제공)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국내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나이트 호크> 등 호퍼의 유명 작품이 오진 않았지만, 전시는 호퍼의 학생 때부터 작품을 다루며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예술과정을 구축해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 에드워드 호퍼는 도시의 고독을 잘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도시 뿐만이 아니라 도시와 자연의 사이를 오고가며, 자신만의 빛을 찾아간 호퍼의 시선을 만나볼 수 있다.

이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에드워드 호퍼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의 장소를 오고가며 그 안에서 도시와 자연을 오고 갔던 호퍼의 작품을 선보인다.

휘트니미술관의 킴 코너티 학예사는 “호퍼는 대도시 속 현대인의 고독감을 드러내면서, 여름이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 풍경을 즐겼다. 관찰자로서 뉴욕 대도시의 풍경을 담아냈으며, 자연 속에서는 자연 뿐만 아니라 그곳의 건축물을 통해 인공의 개입도 표현했다”라며 “호퍼는 대도시의 좌절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뉴욕이 가진 긴장감을 그리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고민하는 어떤 순간들, 내면의 고독을 호퍼는 잘 표현했다”라고 말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킴 코너티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 (사진=SeMA 제공)

자화상으로부터 시작되는 65년의 화업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 총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전시 기획의 글’에서는 지난 2020년 영국 『가디언』지에 실린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고립, 단절, 소외의 정서가 만연한 오늘날에 1900년대 초 미국 작가인 호퍼가 재조명 받는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묻는다.

호퍼는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면의 삶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호퍼의 시선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 무심히 흘려버리는 평범한 것들에 오랫동안 머무른다. 그리고 호퍼 특유의 표현을 통해 호퍼의 풍경이 된다. 호퍼의 그림은 풍경 너머 내면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모습은 우리와 닮아있다.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 동시에 여러모로 지친 우리에게 공감과 위안을 전한다.

‘전시 기획의 글’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섹션 ▲에드워드 호퍼에서는 호퍼의 자화상을 다룬다. 이 섹션에서는 호퍼의 학생 시절의 그림도 만날 수 있는데, 호퍼는 1900년 초 학생 시절에는 얼굴과 상반신, 특히 손을 수차례 그리며 예술적 표현과 기술적 숙련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전시 작품 중에는 1900년 경 작품으로 <두 자화상, 하나는 선을 그어 지움>이 있다. 실제 호퍼가 자화상을 그렸고, 하나는 선을 그려 지운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가의 시작점과 그의 노력을 볼 수 있다는 특별한 감각을 전한다.

▲에드워드 호퍼, <카페에서>, 1906-07. 종이에 수채, 연필, 30.2 × 24.1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321.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사진=SeMA 제공)

이어지는 전시작에서는 도시 곳곳 계단, 창문, 현관문 등의 소재들을 계속 반복해서 표현한 호퍼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호퍼 그림에서 계단, 창문, 현관문 등의 모티프는 안과 밖을 경계 짓고 양자 간의 시선 이동을 유도하며 상상을 촉발시킨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집(문명의 공간)과 숲(미지의 공간)은 문명의 대척점을 상징하고 있다.

▲파리 ▲뉴욕로 이어지는 호퍼의 작품들은 그 곳의 건축물과 사람들 도시의 변화를 담고 있다. 파리에 머물면서 했던 크로키 작업이 뉴욕에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호퍼의 세계와 작품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도시 속의 다리나 지붕들에 집중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는 호퍼가 어떤 시선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작품을 구축해나갔는지 알아볼 수 있는 지점이다. 호퍼의 작품은 호퍼 특유의 색감으로 유명한데, 이 학예사는 “호퍼는 스케치의 단면을 정확하게 재단에 색을 사용하고, 이 때문에 호퍼의 그림에서 빛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에드워드 호퍼, 〈작은 배들, 오건킷〉, 1914. 캔버스에 유채, 61.6 × 74.3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96.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사진=SeMA 제공)

관찰한 풍경에서 내면의 풍경으로

호퍼는 실제 풍경을 바라보고, 작품을 자주 남겼다. ▲뉴잉글랜드 섹션에선 소지가 간편한 작은 크기의 패널을 지니고 암석 해안을 걸어 다니며 스케치나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호퍼는 몬헤건섬의 험준한 바다나 절벽들을 즉흥적으로 담아냈고, 이 때 작품 속 바다는 모두 다른 빛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호퍼는 풍경을 직접보고, 그것을 화폭 안에 담아내는 과정을 디뎌왔고 뉴잉글랜드에서의 시간은 호퍼의 삶에 많은 변화를 줬다. 1923년 여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에서 그는 동문이자 작가인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과 교제를 시작했고, 1924년 결혼을 한다. 이후 그는 조세핀의 영향으로 야외 수채화 작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그녀의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이 시기에 작업한 호퍼의 수채화는 화단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판매로까지 이어지며 전업 화가로 진입하는 본격적인 기회가 열리게 된다.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74.5 × 122.2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0.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사진=SeMA 제공)

호퍼는 1930년대 말 이후 작업에 기억과 상상력이 결합된 이미지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이 시기 작품에는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호퍼의 자전적 경험이 내면화되면서 현실과 환상, 자연과 인공물의 대비를 통해 나날이 원숙한 표현을 갖춰나간다. 호퍼 부부는 1925년 기차로 미국을 횡단하고, 1927년 중고 자동차를 구입한 뒤로 미국 서부, 멕시코 등을 평생에 걸쳐 여행하는데, 호퍼의 오랜 지인이자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관장이었던 로이드 구드리치는 “여행에 대한 호퍼의 몰두는 꽤 의식적이었다. 호퍼는 운전할 때 그림 주제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라고 한다. 도시와 자연을 오가는 호퍼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호퍼의 변화를 명확히 볼 수 있는 작품은 ‘길 위에서’라는 특별 섹션에 전시된 <철길의 석양>이라는 작품이다.

이어지는 ▲케이프코드 섹션에선 호퍼가 제2의 고향처럼 30여 년간 매해 머물던 ‘케이프코드’에 대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소에 대한 호퍼의 독특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오전 7시>, <이층에 내리는 햇빛>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섹션에 전시된 <벌리 콥의 집, 사우스 트루토>는 오바마 미국 前 대통령 재임시절, 직무실에 걸어놨던 그림이다. 이 학예사는 “국가의 시급한 현안들을 마주하면서, 한적한 시골의 전경과 조용함을 느끼고자 걸어둔 작품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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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간담회 현장 ⓒ서울문화투데이

‘에드워드 호퍼’의 전체적인 작품 흐름, 그의 시선을 만나볼 수 있기에 이번 전시는 꽤나 흥미롭고 다채롭다. 전시 말미에는 호퍼가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삽화가로 활동했던 시기의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극장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호퍼가 조세핀과 함께 관람했던 연극 티켓 모음도 특별한 감정을 전한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유료전시이며,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예매 및 전시 관람에 대한 상세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람료는 일반(만 24세 초과 ~ 만 65세 미만) 17,000원, 청소년(만 12세 초과 ~ 만 24세) 15,000원, 어린이(만 6세 초과 ~ 만 12세) 12,000원이다. 디지털 약자 및 전시장 내 적정 인원수를 고려하여 당일 현장 구매도일부 병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