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발굴 조사 성과 발표…4단계 걸친 변화과정 확인
문화재청, ‘광화문 월대’ 발굴 조사 성과 발표…4단계 걸친 변화과정 확인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4.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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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 규모 및 복원 위한 실물자료 확보
오는 10월 복원공사 마무리 예정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진행 중인 광화문 월대(越臺, 月臺/궁궐의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발굴조사의 성과가 발표됐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25일 국립고궁박물관(서울 종로구)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ㆍ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 관련성과,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원본)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사진=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1890년대 이후로 전해지는 사진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구조물이다. “1866년 3월 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둔 잡토를 지고 왔는데, 실로 4만 여 짐에 이르렀다(光化門前築月臺以募軍負宮內所積雜土而實之至四萬餘負).”라고 기록돼 있다.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월대 전체 규모(남북길이 48.7m, 동서너비 29.7m)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의 어도지 기초시설 ▲월대의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편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고종 대 경복궁 중건 시 월대의 전체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광화문 월대의 복원을 위한 실물자료를 확보한 것이 이번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1890년대 광화문과 월대 전경 (사진=도서출판 서문당 제공)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cm, 너비 30~50cm, 두께 20~40cm)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든 형태다. 월대의 남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해 계단을 조성했고, 그 중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을 이용해 동·서 계단과 분리했다. 특히, 어도계단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에 의해 일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고종년간 월대 축조 이후 크게 4단계의 변화과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1단계>에서는 월대 축조 당시로 남쪽에 경계가 나누어진 3개의 계단이 존재했고, 당시 월대의 평면형태는 역철자형( )이었다. <2단계>에서는 중앙의 어도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화되고, <3단계>에서는 경사로의 범위가 확장,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다. 그리고 이 시기에 처음으로 단선(외줄) 형태의 전차선로가 설치됐다. <4단계>에서는 전차선로의 복선(겹줄)화로 월대가 파괴되면서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광화문의 이건과 함께 도로로 사용된 변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25일 열린 월대 성과발표회 현장
▲25일 열린 월대 성과발표회 현장 (사진=문화재청 제공)

한편, 기단석 하부에 여러 매의 지대석을 놓고 적색점토로 보강한 기초시설, 철편과 점토, 석회를 이용한 장대석 사이의 수평맞춤, 장대석의 밀림 방지를 위해 점토와 깬 돌을 섞어 보강한 뒷채움방식 등을 통해 당시 조선시대의 건축기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정성조)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난간석, 하엽석 등)를 재사용”하고 “문화유산수리장인 등의 전문가와 함께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진정성 있게 복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시와의 적극적인 업무협조체계를 지속 유지해 월대 주변부 정비사업(삼군부 및 의정부 터 일부)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며,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는 오는 10월에는 ‘광화문 월대 복원 기념행사’를 궁중문화축전 등과 연계해 개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