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MMCA 《젊은 모색 2023》展, “미술관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다”
[현장스케치] MMCA 《젊은 모색 2023》展, “미술관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4.26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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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과천관, 4.27~9.10
건축, 디자인 등 새로운 장르 중심 전시
공간ㆍ전시ㆍ경험으로 보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미술관의 인프라를 보고, 작가와 작품 이외에 미술관 공간 자체 의미를 환기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을 모아봤다” 《젊은 모색 2023》 전시 투어를 마친 정다영 학예연구사가 전한 말이다.

▲씨오엠, 〈미술관 조각 모음〉, 202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김주영.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직무대리 박종달)은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을 27일부터 9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젊은 모색》은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해 올해 42주년을 맞이한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올해 《젊은 모색 2023》은 《젊은 모색》 40주년(2021) 이후 첫 전시로, 향후 《젊은 모색》이 나아갈 방향성을 확장된 시각으로 탐색해본다. 이번 전시에선 건축과 디자인을 포함해 미술관에서 다루지 않았던 장르 작가들을 선보인다.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에 참여하는 신진 작가는 김경태, 김동신, 김현종, 뭎(손민선, 조형준), 박희찬, 백종관, 씨오엠(김세중, 한주원), 오혜진, 이다미, 정현, 조규엽, 추미림, 황동욱 등 13인(팀)이다. 이들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7인과 외부 전문가 7인의 추천과 자문을 통해 선정됐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 학예사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미술제도권 안팍을 사유하는 작가들로 선정했다”라며 “미술계에서는 기존 제작 방식이나, 단단한 틀 같은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을 넘어서서 이전엔 없었던 다양한 시도, 다양한 협업을 추구하는 작가들에 집중했고 통섭의 시선으로 전시를 기획했다”라며 작가 선정 의도를 밝혔다.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박종달 기획운영단장 ⓒ서울문화투데이

‘건축’ 중심의 《젊은 모색》전 향한 의구심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건축’과 ‘공간’에 주제를 두고 있는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앞으로도 주제를 중심에 둔 《젊은 모색》을 기획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특히 2021년 40주년 전시 이후의 주제를 ‘미술관을 위한 주석’으로 시작한 것에 있어, 기존 50여 년간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에 대한 반성의 태도가 담겨 있는 것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취재진 질문에 앞서, 윤범모 前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사임으로 직무 대리를 맡은 박종달 기획운영 단장은 “국현이 최근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국현의 50년의 역사는 질곡의 역사로 점철 돼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50년의 시간은 켜켜이 쌓인 나이테와 같아, 국현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체력을 갖추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려운 시간은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때까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라는 인사말로 안팍으로 어수선한 국현의 상황을 언급했다.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한 정 학예사는 이번 기획이 ‘반성의 태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 코로나 이후 미술관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팬데믹 시기를 겪으면서 미술관의 환경을 예전과 동일하게 인식하기보다 새롭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젊은 모색》전시 계획에 대해선 임대근 현대미술 2과장이 답했다. 임 과장은 “《젊은 모색》은 동시대의 아젠다를 보여주고 있는데, 동시대에 미술관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 고육지책으로 ‘건축’을 꺼내기도 했지만,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젊은 모색’답게 새로움을 전할 수 있는 기획을 준비했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이런 식의 시도를 넓혀갈 것이며, 이번을 첫 시도라고 봐주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에 참여하는 13인(팀)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미술관을 위한 주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공간, 전시, 경험을 재맥락화하고 사유하는 작업들로 구성된다. 작가들의 작품은 마치 원문에 주석을 다는 것처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대한 해석을 확장한다. 작품에 담긴 시각 언어들은 미술관의 ‘공간’, ‘전시’, ‘경험’에 주목해 특히 전시의 무대가 되는 과천관 자체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만든다. 나아가 이번 전시는 곧 개관 40년을 맞이하는 MMCA 과천관의 본격적인 재생 전에 미술관 공간의 다변화를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오는 7월 말 전시 주제에 대한 확장된 논의를 담은 선집 발행이 예정돼 있다. 「미술관을 위한 주석」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이번 전시 주제에 대한 확장된 논의가 담겨있다.

정 학예사는 “《젊은 모색 2023》이 동시대 공공미술관 ‘공간’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장의 시작이 되길 바라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리모델링 등을 염두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등 장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건축가, 공간ㆍ가구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함께 하는 전시인 만큼 이번 《젊은 모색 2023》은 전시 전,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워크샵, 미술관 투어 등을 진행하며 작가들이 시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13인(팀)은 각자가 추구해 온 활동 경향의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 주제를 해석한 창작물을 제안했고, 미술관은 ‘공간’, ‘전시’, ‘경험’이라는 갈래로 갈무리해 전시로 선보인다.

▲추미림 〈횃불과 경사로〉 설치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13인의 작가가 본 ‘MMCA 과천관’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은 MMCA과천과 1,2 전시실과 중앙홀에서 펼쳐지며, 총 5개의 섹션 <들어가며>, <공간에 대한 주석>, <전시에 대한 주석>, <경험에 대한 주석>, <13인(팀)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전시의 시작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라는 공간에 주목해 주제에 진입하게 되지만, 전시의 끝은 작가들의 인터뷰로 끝나면서 공간을 통해 개인의 시선과 사유로 집중해볼 수 있게 한다. 미술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세 가지 주제 ‘공간, 전시, 경험’은 각기 다른 물성과 감성을 지니며 미술관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공간에 대한 주석>은 김경태, 이다미, 김현종, 황동욱, 씨오엠의 작업으로 기둥, 로툰다, 램프코어 등 미술관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건축적 형식들을 보여준다. <전시에 대한 주석>에선 김동신, 오혜진, 정현의 작업으로 그간 미술관이 생산한 도면, 책자 등 전시 부산물들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전시 형식을 다시 읽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어지는 <경험에 대한 주석>은 백종관, 박희찬, 추미림, 조규엽, 뭎의 작업으로 관객이 미술관을 관람하고 경험하는 다양한 차원의 관점을 담고 있다.

▲김동신 <링> 일부 ⓒ서울문화투데이

<공간에 대한 주석>섹션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씨오엠은 공간, 가구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팀으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미술관 조각 모음>은 미술관 곳곳의 모습을 가구 크기 조형물로 제작한 작품이다. 씨오엠은 “<미술관 조각 모음>에는 보는 순간 미술관의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있는 조각도 있고 비밀스러운 공간도 있다”라며 “우리는 어릴 적 장롱 안이나 책상 아래 등의 공간에서 습도, 온도, 빛을 느끼며 그 감성을 기억하고 있다. 가구가 주는 감정은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거대한 외형을 가진 국현 과천관을 설계한 김태수 건축가도 자신이 봤던 어릴적 기억을 기반으로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좀 더 감각적으로 인지해보고자 했다”라는 작품 설명을 전했다.

<전시에 대한 주석>은 그래픽 디자이너 2인의 작품과 건축가 1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중 김동신 작가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미술’이라는 규정화된 제도를 넘어서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장르를 선보이는 것에 방점을 찍어 작품을 구상했다. 김 작가는 미술관의 도면들을 ‘그래픽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인다. <링>이라는 작품은 과천관이 설계될 때의 염원을 담은 ‘상량문’을 박스테이프에 인쇄한 작품이다. 김 작가는 “미술관이라는 무거운 건축 공간과 무거운 주제를 지극히 가볍게 표현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오혜진, 〈미술관 읽기〉, 202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김주영.

오혜진 그래픽 디자이너는 자신이 그래픽 작업을 할 때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발상을 얻어 작품을 기획했다. 오 작가는 “건축가 친구와의 대화에서 ‘건축은 만드는 데 오래 걸리고 만들면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잘 만들지 못하면 정말 괴롭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에 비해 그래픽 디자인은 정말 가볍고, 소비하는 속도가 빠르다. 그 차이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과거 국현에서 있었던 전시 포스터와 정보를 다시 지금으로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책으로 데니스 우드 「모든 것은 노래한다」가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지도의 정보값을 서사적으로 읽으면 지도도 시가 될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를 토대로 미술관을 다시 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오 작가의 작업 <찾아오시는 길>이라는 작품은 과천관이 가지고 있는 ‘외곽에 있기에 쉽게 찾아오기 힘들다’는 특별한 ‘장소성’에 집중해, 미술관의 오는 길을 시각ㆍ청각의 언어로 구현한 작품이다. 특히 과천관을 오는 방법 중 ‘코끼리 열차’를 타는 방법을 주목하는데, ‘코끼리 열차’를 타고 오는 시간과 소리들을 통해 미술관의 공간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백종관, 〈섬아연광〉, 패널 아래로 보이는 관람객들의 다리가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한다 ⓒ서울문화투데이

<경험에 대한 주석>에선 관람객의 경험과 시선에서 어떻게 새롭게 미술관이 인식될 수 있는지 고민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백종관 작가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공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척도라고 본 작업을 선보인다. 백 작가는 실험 영상, 영화들을 제작해오고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 뿐 만이 아니라 관람객의 시선을 제한하는 프레임들에 집중해 작품을 선보인다. 백 작가는 “설치물을 통해 관객의 동선을 제한하고 시선도 막아봤다. 영상을 선보이고 있지만, 영상을 잘 안보이게 한 것도 작품의 의도다”라며 “관람객이 이동하면서 만나는 공간과의 새로운 관계성에 대해 표현해보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건축과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이는 뭎(손민선, 조형준)은 특정 장소의 맥락에 신체 및 사물을 배치해 발생하는 공간과 안무, 현상에 대해 실험한다. 뭎은 중앙홀에서 〈내 사랑, 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 당신은 그저 다른 삶으로 넘어간 거였는데〉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중앙홀 공간에 시퀀스를 입혀 작품 속 ‘천왕문’을 거쳐 ‘제단’을 걸어가 ‘용광로ABFF’를 만나는 과정을 구현한다. 작품은 미술관 중심에 있지만 실제로는 잘 사용되지 않고 있는 Y자 계단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관람객들은 실제로 작품 위를 걸어가면서 미술관 Y자 계단에 설치된 ‘재단’까지 걸어가 미술관 중심부에 닿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작품에는 동작 감지 센서가 장착돼 관람객 움직임에 따라 재단의 영상을 달리 재생시킨다.

▲뭎, 〈내 사랑, 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 당신은 그저 다른 삶으로 넘어간 거였는데〉 작품 중 Y자 계단에 설치된 <재단>, 취재진이 재단 앞으로 다가가 새로운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모색 2023》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라는 물리적 형태의 건축물의 안과 밖을 오가는 시선을 담는 동시에 하나로 규정된 ‘미술’이라는 제도의 안팍을 오고가는 발상까지 담고 있다. 시대가 다변화되고, 다양한 가치가 혼재되면서 ‘유일’, ‘단일’의 가치와 발상이 유효한지 의문이 드는 때다. 미술관에서 쉽게 소개하지 않았던 ‘건축’을 ‘젊은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자칫 산만하고 낯선 지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간-전시-경험으로 이어지며 미술관을 이해하는 전시의 방향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이전과 달리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선명하게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