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이목을 작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작품을 완성한다”
[Special Interview] 이목을 작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작품을 완성한다”
  •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기자
  • 승인 2023.05.10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지시로 세이지’ 2인전, 영광이라고 느껴
예술을 대하는 태도ㆍ신념을 지키는 일, 후지시로와 공통점
신작 ‘점정’ 시리즈, 내 삶 정리하는 개념 담아
대중과 소통ㆍ교감, 내 작품 중요한 경향
“화가로서 사회적 역할, 내 마음 속 항상 있다”
《관계의 교감과 소통의 미학》展,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서 오는 28일까지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기자] 이목을 작가의 명함은 굉장히 독특하다. 지난달 말, 종로구 계동에 자리하고 있는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이목을 작가를 만났다. 기자는 인사를 나누며 이 작가에게 명함을 건넸고, 이 작가는 기자의 명함을 받곤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 크기만 한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펜도 한 자루 꺼내, 아주 익숙하게 그림을 그렸다. 이 작가와 정말 똑같이 생긴 캐릭터였다. 안경을 끼고, 붓과 파레트를 들고서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림 옆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한문으로 적어서 기자에게 전했다. ‘李木乙’ 이름 한자도 정말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乙’자의 삐침은 정말 무심한 붓질로 마무리된 느낌이었다.

▲이목을, 점정–23001, 162X130.3cm, acrylic on canvas, 2023 (사진=
▲이목을, 점정–23001, 162X130.3cm, acrylic on canvas, 2023 (사진=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제공)

어린 시절부터 전국 사생대회를 휩쓸며, 유명한 화가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던 한 어린아이의 부푼 꿈이 처참하게 무너진 때가 있었다. 이 작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이 작가는 천재적인 끼를 가지고 있었지만, 중학생 시절 왼쪽 눈의 실명 판정을 받는다. 그에게 닥친 고난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생활고로 인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고, 그에겐 학업보다 당장의 생계와 노동이 우선 순위였다. 그럼에도 그는 ‘화가’라는 꿈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은사를 만나 대학에 진학하고, ‘화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 작가는 이후에도 20대에 스스로 청도 산중으로 들어가 속세와 모든 연을 끊고 칩거 생활을 하는 등 평범치 않은 길을 택해왔다.

인터뷰 전 그의 험난하고 우여곡절 많았던 시간을 찾아보면서, 어떤 인터뷰가 진행될지 많은 궁금증이 들었다.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개인사와 그의 변화무쌍한 작품 경향, 방송 출연까지. 이 작가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들을 단 한 번에 해소 시켜준 것이 명함 크기 흰 종이 위에 그려진 작은 그림과 글자였다.

기자는 이 작가의 명함이 ‘이목을’이란 사람 자체라고 느꼈다. 작은 그림과 이름 한자 세 글자로, 자신을 이렇게 명징하게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작가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것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깊이와 토대를 지니고 있었다.

▲인터뷰 후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는 이목을 작가 ⓒ김재성 사진기자

인터뷰는 한 편의 토크쇼처럼 진행됐다. 거침없는 언사도 있었고, 스스로에 대한 조용한 성찰, 최근에 느낀 감정들이 모두 담겼다. 이 작가는 극사실주의 작품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나, 이후 시력상실증의 진행으로 <스마일> 시리즈, <하루화담> 시리즈 등을 선보이며 작품 경향을 바꿔왔다. 자주 변하는 그의 화풍에 대해, 일각에선 불안정하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본인 역시 자신의 작품 경향은 ‘고이지 않고 흐르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이런 이 작가 작품 경향에 대해 김광명 숭실대 명예교수는 ‘삶의 복합성을 단순화한 미적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즉, 그의 작품은 단순히 작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 그 자체와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시간여의 인터뷰는 이 작가의 다양한 작품 경향처럼 다채로웠고, 그가 걸어온 지난 시간의 공력이 담겨있는 듯 탄탄하게 흘러갔다. 이 작가는 ‘물’을 좋아한다고 한다. 자유롭게 흐르는 느낌이 그의 삶 면면에 깔려있는 듯 하다. 동시에 그는 우직한 큰 나무의 느낌도 지니고 있었다. 삶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서있는 큰 나무였다. 한국 미술계의 인지도 있는 중견 작가이지만, 이 작가는 여전히 자신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종로구 계동에 자리한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진행됐다. 그 흐름과 신념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오는 28일까지 전시를 개최한다. 그간 한국 작가를 소개한 적이 없는 공간에서 처음 소개된 한국 중견작가인데, 어떻게 전시를 선보이게 됐는가.

북촌스페이스의 강 대표를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후 전시 제의를 받게 됐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후지시로 세이지 전용 전시 공간인데, 이 공간에서 처음으로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데, 왜 그 사람이 나인지 궁금했다. 그러자 강 대표가 후지시로 세이지 선생의 세계와 내가 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했다. 속된 말로 좀 ‘또라이’ 같은 기질이 있다는 말이었다. (웃음)

내가 작품 경향이 계속 변한다는 것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내 작품 경향은 내가 변하고 싶어서 변한다기보다, 상황이 나를 그런 변화로 이끌곤 한다. 그런 내 개인적인 역사가 후지시로의 여정과도 많이 비슷하다고 했다. 초청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후지시로 세이지와 2인전을 받아들인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가.

처음엔 개인전인줄 알았다. 전시 현장도 개인전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 후지시로 선생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2인전인 것 같기도 하다. 전시를 준비하기 전까진 후지시로 선생의 작품을 몰랐다. 처음에는 선생의 작품이 일러스트(삽화)나 애니메이션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간에 다시 방문해서 두 번째로 선생의 작품을 마주했는데, 이전과는 정말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위대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자를 이용한 작품을 봤을 때였다. 설명을 듣기 위해 불이 딱 꺼졌는데, 그 순간 후지시로 선생은 미술에서 어떤 한 영역을 창조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을 하는 입장에서 정말 많이 놀랐다. 공간을 압축한 기법이나, 작품에 빛이 들어왔을 때 작품의 그라데이션 톤들이 오묘하게 드러나는 데 정말 대단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밝고 어두움의 색깔들은 붓질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종이를 면도칼로 긁어서 부피를 줄여서, 색의 차이를 드러냈다. 작업하기 전부터 한 면 안에서 빛이 어떻게 드러날지 미리 생각하고 행위를 이어갔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현재 선생의 나이가 100세인데, 어떤 시대의 흐름 안에서 생각했을 때도 후지시로 선생의 작업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애니메이션 장르의 어떤 한 부분을 일궈낸 인물이다. 그런데 상업적인 작가, 대중적인 작가로 치부돼,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를 만든 강 대표에게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일관계도 있고, 굳이 일본 작가 전문관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강 대표는 이 공간이 양국의 문화교류를 지향하고 있기도 하지만, 후지시로 선생의 세계를 한 번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은 욕구도 담겨 있었다고 했다. 후지시로 선생을 향한 존경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 내가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라고 느꼈다.

후지시로 선생은 지금 원화를 한 점도 팔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있어, 일본 곳곳에 개인미술관이 생기고 있다. 일본 천황도 후지시로 선생을 만날 땐 고개를 숙이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고 한다. 현재 이 세상의 미술사나 예술의 역사는 서양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그런 지점에서 후지시로 선생이 미술사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지시로 선생의 작품은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 있어서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열게 돼 정말 기분이 좋을 뿐이다.

▲전시장에서 이목을 작가, 좌측에 이목을 작가 작품이 전시됐고 우측이 후지시로 세이지 작품이다. ⓒ김재성 사진기자

좀 더 구체적으로 후지시로 세이지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느끼는가.

후지시로 선생은 100살까지 살아오고 있는 작가다. 내가 만약 10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저 정도의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후지시로 선생과 나는 예술을 하는 태도에서 유사성이 있다. 선생은 미쳐서 산 사람이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미쳐서 살아왔다. 그리고 후지시로 선생이 어떤 한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특히 제도권에 인정을 못 받는 상업 작가라는 이미지가 나와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미술 작가는 고수하는 스타일이 있어야 브랜드가 생기고, 그의 작품론이 정립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작품이 고이지 않고 늘 흘러버린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돌이켜보니, 내가 5년 주기로 변했던 것 같다. 학부생도 아니고, 기성작가로서는 하기 힘든 변화였다. 기성작가로서 어떤 작품세계를 갖추고 상품적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그런 게 안되니까, 상업 갤러리에서 어려워하는 작가다.

어떻게 보면 이런 내 작품 변화 경향은 ‘대중들과의 소통, 교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점 역시 후지시로 선생과 공통점의 지점이다. 작품을 봤을 때 어떤 드러나는 지점이 가벼운 느낌도 비슷하다. 순수미술이라고 하면 왠지 새롭게 느껴야 할 지점이 있을 것 같고, 좀 모르고 느껴야 하는 그런 지점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산에서 수행을 마치기 전에는 설치 작업을 하고 비구상 작업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모두가 이해되는 선에서 작품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 때부터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추구했다.

사실 극사실주의 작품은 내가 가장 그리기 싫었던 것이었다. 나는 극사실주의 작품을 가장 추상화로 생각하고 표현했다. 그러나 세상엔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참 편해졌다. 나는 추상을 좋아한다. 눈으로 읽히지 않지만, 그림 뒤쪽에서 이야기를 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점점 눈이 안 보이니까, 언젠가는 정말 추상화만 할 수 있을 때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니 아직 이것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마일>을 시작했다. <스마일>은 점과 선의 배치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마일’을 다 인식할 수 있으니까 이걸 구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미술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 그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후지시로 선생과 나는 ‘무엇을 표방하는가’에서는 거의 동일하다. 타인이 모르고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그것을 마침내 행하는 사람들이고 본인의 철학이 확고한 사람들이다. 차이점이라면, 후지시로 선생은 나와 달리 자신의 작품 양식이 매우 굳건하다는 점, 정도 인 것 같다.

▲이목을, smile 13001, 72.71X91cm, acrylic on canvas, 2013
▲이목을, smile 13001, 72.71X91cm, acrylic on canvas, 2013 (사진=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제공)

“고통은 하늘이 준 보약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스마일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한 말이었는데,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고통’이 ‘보약’인가.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절대 긍정의 병이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을 만나도, 빨리 긍정적인 마음을 만든다. 아마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내 어린 시절 삶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내가 지나온 길은 마치 내 담금길과 같았다. 과거는 내게 거름이 됐다.

‘극사실주의 작가’로 상업 갤러리에서 굉장한 블루칩 작가였다. 그러나 ‘스마일’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예전과 같은 관심은 받지 못했다. 힘든 시기가 있었을 텐데.

내가 힘든 시기가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내 신념대로, 내 기분대로 작품을 하고 또 SNS를 보면 매일같이 ‘차박’을 하러 다니니까 사람들은 내가 여유롭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차박이 보이는 건 여유로워 보일지 몰라도, 정말 고생이다. 차 안에서 자고, 밥 먹고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백조가 호수 위에 유유히 있기 위해선 물속에서 빠르게 발을 놀려야 하는 법이다.

살아오다 보니 ‘소통’이라는 것은 외적인 것, 사람의 껍질로 하는 것이라고 보게 됐다. 측은지심은 아주 잠깐이고, 사람들은 결국 외적으로 좀 더 갖춰진 사람이랑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이렇게 옷을 갖춰 입고 말끔하게 나와야 소통하려 하지, 노숙인처럼 있으며 누가 봐주나 싶다. 이런 것을 겪다 보니, 사람에게 욕망이랑 욕심이 없을 순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난 항상 얘기한다. ‘욕심을 버리려고 하지 마라, 욕망을 삭이려 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에너지라고 본다.

그런데 나는 그런 욕망과 욕심이 없어진 상태다. 있긴 있지만, 많지 않다. 잘 나갈 때는 잘 나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그 때에 비해 관심을 못 받고 있어도 그로 인해서 대단히 어떤 결핍을 느끼거나 그러진 않는다. 나는 그냥 내 삶을 살다 가고 싶다. 사람들에게는 여유롭게 보이면 되지, 내가 꼭 정말 여유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유가 물질적 여유에서만 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목을, 점정–23003, 91X116.8cm, oil on canvas, 2023
▲이목을, 점정–23003, 91X116.8cm, oil on canvas, 2023 (사진=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제공)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신작 시리즈 <점정(點睛)>이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스마일> 시리즈나 <하루화담> 시리즈를 하면서, 한 번씩 무언가 울컥울컥 올라오는 때가 있었다. 추상적인 것을 하고 싶었던 마음과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겨져, 내 안에 담아뒀던 것들이다. 그런 감정들이 밀려오면 조금씩 한 작업이 있었다. 항상 주저하고 있었던 지점이었고, 아직은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11점 정도의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강 대표가 작업실에 찾아와 작품을 보는데, 자꾸 내게 신작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기에, 신작은 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나는 지금 <하루화담> 시리즈에 만족하고 있고, 이것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라고 했는데도 강 대표가 물러서질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번 보여줬는데 정말 좋다는 답이 왔다.

강 대표는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이자면서, 그때부터 나를 은근하게 몰아붙였다. 정말 묘한 느낌이었는데, “선생님, 한 점만 더요. 한 번만 더 해보죠”라며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강 대표가 나한테 이렇게 그림을 요구하는 게 맞는 상황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안 좋기도 했다. 왜 내게 고통을 주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강 대표는 계속 해 달라는 말뿐이었다.

이 기회를 통해 원래 숨어서 몰래몰래 하고 있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집중적으로 다 실현해봤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못 하겠다’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나를 밀어 붙여봤다.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기분이 묘하고, 느낌이 좋았다. 작가로서 어떤 본능적인 느낌 같은 것이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맛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스마일>이나 <하루화담>은 내가 받은 것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고자 하는 어떤 봉사의 느낌의 작업이었는데, 이번 <점정> 시리즈는 정말 새롭고 다른 느낌이었다.

<점정-23003>은 백자의 외형보단 백자에 던져진 점과 같은 한 줄기 빛이 가장 도드라져 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화룡점정’할 때, 그 ‘점정’의 세계다. 점을 찍지 않으면 화면은 완전한 평면의 세계인데, 점 하나로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게 된다. 점이 화면은 입체로 만든다. 나는 완전한 비구상, 완전한 구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중간에 있을 때가 좋고, 그 중간에 있을 때 세계가 흐를 수 있다.

작업할 때, 내 인생 전체를 정리하는 느낌이 있었다. 면을 그리는 행위는 내 인생 전체를 정리하는 개념이었고, 점을 찍는 것은 내 삶을 압축하는 행위였다. 가장 나 같은 부분 하나를 점으로 찍은 것이다. 이 작품은 그 흰점을 그리기 위한 그림이다.

삶에서 핸디캡은 참 크다. 내가 보고 있는 세계처럼, 모든 사물을 뿌옇게 만들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백자’나 ‘물감’도 소재이긴 하지만, 결국 흰 점을 위한 그림이다. 작품 속에서 흐려진 부분은 과거이거나 현재를 뜻한다. 그리고 점은 미래를 의미한다. 점을 찍을 때 손을 정말 ‘발발발발발’ 떨곤 한다. 점에 힘이 없으면 안 되고, 흰 점이 가질 그라데이션도 생각해야 한다. 정말 무심한 붓질로, 작품에 극사실을 더한다. 사실 배경은 백자나 물감은 물티슈로 그렸다.

작품 속에서 흰 점은 점정이 됐다가 정점(定點)이 되기도 한다. 아직 이 의미들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겠다. 물이 흐르다 보면 하나의 소(沼)를 이룬다. 지금 이 순간이 쉬어가는 때일지, 머무는 때일지는 정말 모르겠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테라스 공간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이목을 작가 ⓒ김재성 사진기자

책도 출간하고, 근간에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 <운탄고도 마을호텔>에 출연하기도 했다. 어떤 경험이었는지 궁금하다. 예능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있었을까.

옛날에 석탄을 나르던 길을 트래킹 코스로 만들어서, 그 곳을 함께 걷고 쉬고 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엄홍길 산악인이 대장을 맡고, 박상원 배우가 촌장, 오민석 배우가 주방 일을 맡아서 게스트하우스같은 것을 운영하는 것이다. 나는 손병호 배우와 함께 게스트로 초대받아서 1박 2일동안 잘 쉬고 왔다. 프로그램이 특별히 무엇을 한다기보다, 밥 먹고 술 마시고 트래킹을 함께 하는 것이다.

2019년부터 ㈜가족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방송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대부분 CF나 다큐멘터리, 교양프로그램 위주로 방송했는데, 이번에 첫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어떤 ‘예인(藝人)’으로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스마일>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우리 미술이 대중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미술이 일상이 되길 바라고 있다. 미술시장이 더욱 성장하고, 우리 후대에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바람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미술이 어렵지 않고,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탄고도 마을호텔>에서도 출연자와 모두와 함께 스마일을 그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엄홍길 산악인도 스마일을 그리고, 모두 다 그렸다. 나는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짓’이라고 표현을 하고 싶은데, 예술인이라면 절대 안 할 것을 난 시도해보고 싶다. 그림쟁이가 예능으로 들어가서 무얼할 지 나 또한 궁금하다. 나는 미술로 놀이문화를 만들고 싶다. 요즘엔 유튜브를 만들어 볼 생각도 해보고 있다. 어차피 지금 차박을 하고 있으니, 전국을 돌아다니며 함께 그림을 그려보고 우리의 일상 안으로 미술을 넣어보고 싶다.

<점정(點睛)>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어떤 영감을 받게 됐는데 앞으로 작품을 기대해봐도 되는가.

예전 같으면 벌써 작품 속으로 ‘풍덩’ 빠졌다. 그러나 지금은 액션만 하고 기다리고 있다. 함부로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내 작업실에 써놓은 글귀가 있다. ‘하늘이 공짜로 부여한 이 재주를 남을 미혹하거나 죄를 짓고 있지 않은가. 함부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적어 놨다. 지금 내 이 감각이 나의 또 하나의 욕망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조심히 잘 기다려야 할 것 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작품은 내가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함께 해 나갈 사람도 필요할 것이고, 나 스스로도 풀어갈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면, 거기에 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냥 두려고 한다.

▲전시장 통로에서 사진촬영에 응하는 이목을 작가 ⓒ김재성 사진기자

올해 전시 계획은?

올해 전시 계획은 없다.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고,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일부러 할 필요가 없다. 어떤 시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본다. 강 대표가 지금 일본에까지 소개할 계획은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제작한 신작이 중요할 것 같다. 잘 흘러가다 보면 나름의 내 역할이 생기고, 내게 또 다른 생각이 올 것이라고 본다.

인터뷰에서 다 못한 말이 있다면.

이번 전시를 오픈하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물질은 나눌 것이 없는데, 그래도 무엇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신작을 발표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설렘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전시가 기획되다 보니 회고전 형식으로 운영돼 내 작업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를 기억 안 해도 된다. 나는 내가 이 세상의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썩어서 잘 나뉘고, 세상에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유언장을 만들었다. 내가 죽는다면 화장해서, 수목장도 하지 말고 슈퍼에서 파는 검정 쓰레기 봉지에 담아서 쓰레기차가 오면 톡 던져버리라고 적어 놨다. 죽기 전에 한 번 작품 화형식도 해야 하는데 고민이다. 국가에서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수장할 공간도 없다고 한다.

난 그림을 그릴 때면 어떤 사회적인 역할이라는 부분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보이지만, 내 마음엔 항상 있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역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