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MMCA서울관 《게임사회》, 게임으로 본 ‘사회’…“가상ㆍ현실 경계서 실존을 묻다”
[현장리뷰] MMCA서울관 《게임사회》, 게임으로 본 ‘사회’…“가상ㆍ현실 경계서 실존을 묻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5.11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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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 2,3,4전시실 및 서울박스, 오는 9월 10일까지
게임 문법ㆍ미학이 동시대 예술에 미친 영향 탐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2018년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80,90년 대 비디오 게임 세대의 추억을 가득 담아, 가상현실 게임을 소재로 많은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유명 어드벤처 게임 ‘슈퍼마리오’의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시대에서 ‘게임’이란 더 이상 ‘게임’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하게 확장되며, ‘예술’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람한, 튜토리얼_내 쌍둥이를 언인스톨 하는 방법, 2023, VR앱, 25분.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 람한 (사진=MMCA 제공)
▲람한, 튜토리얼_내 쌍둥이를 언인스톨 하는 방법, 2023, VR앱, 25분.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 람한 (사진=MMCA 제공)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직무대리 박종달)이 MMCA서울관에서 오는 12일부터 9월 10일까지 선보이는 《게임사회》는 ‘게임과 사회’를 주제로 한 기획전이다. 《게임사회》는 비디오 게임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 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게임이 미술관에서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펼쳐 보며 기존의 게임적 경험을 새로운 접근과 관점을 제시해본다.

전시는 ▲예술게임, 게임예술 ▲세계 너머의 세계 ▲정체성 게임 3개의 주제로 구성됐고, 서울박스 공간에선 김희천 작가의 대형 신작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선 2010년 초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스미소니언미술관이 수집한 비디오 게임 소장품 7점과 MMCA에서 선보이는 국내 게임 2점까지 총 9점의 게임이 선보여 진다. 이와 함께 비디오 게임의 문법과 미학에 영향을 주고받은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 점 등 총 40여 점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으로는 ‘세계 너머의 세계’ 섹션 전시작인 로렌스 렉(Lawrence Lek)의 <노텔 (서울 에디션)>(2023), ‘정체성 게임’ 섹션 전시작 람한의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2023), ‘서울박스’공간 전시작 김희천의 <커터 3>(2023)이 있다.

▲MMCA 서울박스 김희천 <커터 3>(2023) 전시 전경 (사진=MMCA 제공)

‘미술관’과 ‘게임’ 사이 이질감ㆍ신선함

《게임사회》는 ‘게임’을 ‘작품’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실제 전시장에서는 게임을 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 기획을 맡은 홍이지 학예사는 팬데믹이 촉발한 사회와 게임의 강력한 동기화 과정에서 기획의 단초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홍 학예사는 팬데믹 시기에서 ‘게임’은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우리의 일상을 소개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작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게임’에 가지고 있는 익숙함을 언급했고, 비디오 게임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에서 ‘게임’이 우리 시각인식에 끼친 영향을 드러내본다.

홍 학예사는 “2010년 초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스미소니언미술관에서 비디오 게임을 소장한다고 했을 때, 당시 언론과 대중은 ‘어떻게 게임이 미술관 수장고에 들어갈 수 있냐’ 큰 반발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이 ‘예술’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 속 ‘게임’의 입지를 다시 세웠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MoMA의 소장품 <팩맨>, <포털>, <마인크래프트>, <심시티 2000> 등은 대중에게 정말 익숙한 게임들이다. 각자의 집에서 한 번쯤 편안하게 즐겨봤던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금은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미술관에 설치돼 있는 조이스틱 또한, 작품인 듯 아닌 듯 도구로 느껴진다.

▲게임 <팩맨> 설치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간담회에선 게임이 우리 시각 체계 어떤 영향을 주고, 그것을 어떻게 전시 안에서 풀어내고자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홍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목격하고 싶은 장면 중 하나였다”라며 “관람객들이 전시장에서 작품으로 <팩맨>을 마주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팩맨>을 실행했을 때, 어떤 효과가 일어날지 궁금했다. 관람객들은 ‘게임’을 작품이라고 인식하고 예전과는 다른 시지각을 경험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전과 동일할까, 그것을 위해 MoMA와 스미소니언 미술관에서 고전 게임들을 대여해 선보이게 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장 안에서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것인지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혼동이 존재한다. 분명 평범한 ‘게임’임에도, 사회의 일면들을 교묘하게 건드리고 있는 지점에서 ‘게임’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

‘예술게임, 게임예술’ 섹션 전시작인 <플로우>와 <헤일로 2600>은 게임이 지닌 또 다른 가치 지향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MoMA와 스미소니언미술관 소장품인 <플로우>는 바람이 주인공인 게임으로 바람으로 꽃가루를 날려서 평야를 유영하는 게임이다. <플로우>는 폭력을 없앤 게임도 가능한가, 폭력이 없는 게임도 게임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스미소니언미술관 소장품 <헤일로 2600>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출시됐을 때 제작된 게임이다. 이 때에는 좀 더 높은 수준의 디지털 화면 구현이 가능해졌음에도, <헤일로 2600> 제작자들을 낮은 수준의 디지털 화면을 구현하고 사운드 디자인에 더욱 큰 공력을 들여서 게임을 제작했다. 게임에서 ‘시각’만이 중요한 지각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로렌스 렉, <노텔 (서울 에디션)>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이처럼 전시는 ‘게임’을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세 가지의 주제를 선보이면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야와 사고를 제안한다. ‘예술게임, 게임예술’ 섹션은 ‘아트게임(Artgame)’의 정의와 매체로서의 게임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이 섹션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게임기의 카트리지(게임팩)를 해킹하여 화면을 조각내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스토리와 영화적 서사를 구축한 코리 아칸젤(Cory Arcangel)의 <슈퍼 마리오 무비>(2005)가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슈퍼마리오 게임’을 해킹하고, 길이 아닌 곳으로 달려나가는 마리오의 모습은 독특한 쾌감과 이질감을 전한다.

‘세계 너머의 세계’섹션은 게임을 통해 미래적인 상상력과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탐구하길 제안한다. 게임의 문법과 기술로 가상 세계를 만드는 로렌스 렉(Lawrence Lek)의 <노텔 (서울 에디션)>(2023) 등으로 게임의 세계가 보여주는 무한한 가능성과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 루 양(Lu Yang)<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 연작 시리즈를 둘러보고 있는 취재진들 ⓒ서울문화투데이

‘정체성 게임’에서는 게임과 사회의 강력한 동기화를 거쳐 가속화된 가상현실세계의 확장의 의미를 살펴보고 게임 매체를 통해 공동체가 느끼는 사회적 경험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특히 이 공간에 마련된 루 양(Lu Yang)의 대규모 영상 설치 작품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 연작 시리즈는 전시장을 하나의 오락실처럼 디자인해 선보인다. 루 양은 작품을 디지털 파일로만 전송했지만, MMCA 직원들이 직접 작품과 어울리는 전시장 디자인을 구축한 것이다.

또 다른 전시작인 람한의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2023) VR 신작은 실제 관람객들이 VR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총 25분 분량의 게임이고, 리 현실에 깊숙하게 진입한 VR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을 제안한다. 특히,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의 게임 시나리오는 쌍둥이 자매의 특수한 관계성, 경쟁 심리 등을 담고 있고,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설정돼 더욱 흥미롭다. 한국 사회 속 여성과 뒤틀린 자매의 관계성 등 직접적인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그 공간을 이질적인 곳을 설정한 것이 인상적이다.

▲ 람한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 VR 체험 공간 ⓒ서울문화투데이

‘게임’ 속 완전한 신체, ‘현실’ 속 우리의 세계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겼던 지점들을 뒤틀어보는 순간들이다. 《게임사회》에서 소개되는 비디오 게임들은 국립재활원의 연구개발기구인 보조기기 열린플랫폼이 기획·개발한 게임 접근성 보조기기 및 마이크로소프트사 엑스박스(Xbox)의 접근성 게임 컨트롤러를 지원받아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같은 게임을 두 가지 높이로 설정해, 낮게 설치된 모니터에선 휠체어 사용자나 어린이들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제공한다. 또한, 장애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게임 접근성 보조 기기가 곳곳마다 설치돼 있어 장애·비장애인 누구나 편하게 게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게임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보고자 기획된 ‘세계 너머의 세계’섹션에 설치된 접근성 보조기기는 보다 특별한 감각을 전한다. 장애인들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제작된 접근성 보조기기의 경우 조이스틱의 다양한 버튼 등을 분해한 형태다. 사용자는 이 버튼 등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게끔 DIY해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과 발이 불편한 경우 입으로 버튼을 물고 게임에 참여할 수 있거나, 조이스틱을 입김으로 움직일 수 있다. 또한, 척수장애를 가졌다면 버튼을 볼에 붙여서 작동할 수도 있다.

▲<마인크래프트> 앞에 설치된 게임 접근성 보조기기 등 ⓒ서울문화투데이

홍 학예사는 해당 섹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여성인 홍 학예사는 어렸을 적 자신은 게임을 잘 못한다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정말 내가 게임을 못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면 주위 어른들이 ‘무슨 여자애가 게임이냐, 오빠랑 같이 해라’라는 얘기를 하거나, 여자애가 할 만한 게임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게임컨트롤러는 단 한 번도 성인 남성 손에 맞춰진 사이즈를 벗어난 적이 없다. 과연, ‘우리는 게임을 못하는 게 맞았을까?’, ‘우리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게임을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전시 안에 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계,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나 상황들을 담고 있다. 홍 학예사는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게임 속 가상현실과 현실의 동기화를 느꼈고, 이 과정 속 동기화가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게임에서는 항상 완벽한 신체의 슈퍼히어로들이 존재하는데, 이 히어로들 밖 누락된 존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홍 학예사는 “게임을 오랜 시간 플레이하다보면, 현실의 나는 초췌해져가는 게임 속 캐릭터는 점점 더 강해진다. 이게 가상과 현실의 맞는 동기화인지 의문이 들었고, 과연 게임으로 누구나 장벽없이 진입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갖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간담회에서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Danielle Brathwaite-Shirley)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속 총을 쏘는 게임을 하면서 전시를 설명하고 있는 홍이지 학예사 ⓒ서울문화투데이 

‘정체성 게임’ 섹션에서 전시되는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Danielle Brathwaite-Shirley)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2021)는 흑인 트랜스 젠더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영상 속에서는 계속 총을 쏘지 말라고 하지만, 총을 쏴야 게임이 진행가능하다. 게임 시작 전 캐릭터를 고를 수 있는데 경찰, 흑인, 흑인 트랜스젠더 등이 있다. 그리고 경찰 캐릭터가 게임을 마치는데 더욱 효율적이다.

이 게임의 이면은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 게임이 설치된 다음 방에서 밝혀진다. 게임을 완수하고 다음 방에 넘어가면, 관람객은 총을 쏘고 있는 자신을 CCTV로 촬영한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즉, 총을 쏴서 게임을 완료했지만 ‘총을 쏘는’ 폭력성을 가진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속 폭력성 및 사회에 만연한 폭력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게임’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오면서, 조금은 정적이고 낯설었던 미술관의 벽을 완화시켜주는 듯도 하다. 그러면서 전시는 ‘게임’을 통해 ‘사회’를 얘기하고,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게임’이 누군가를 배제할 수도 있음을 알린다. 점점 더 우리 세계의 층위는 두터워지고 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공간만이 내가 인지하는 세상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존재해야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수 있다. 《게임사회》는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한 소재로, 지금 시대에 미술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