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서울극평가그룹>에서 <세계연극평론가그룹>의 한 기구가 된 <한국연극 평론가 협회>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서울극평가그룹>에서 <세계연극평론가그룹>의 한 기구가 된 <한국연극 평론가 협회>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3.05.3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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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극평가그룹>의 활약 변천사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한국연극이 대학중심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어 문학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연극에 대한 열정은 특히 영어영문학과 중심으로 그 관심이 일기 시작하고 독어독문학과에서 불어불문학과로 옮겨붙으며 그 중심에는 이화여자대학과 고려대학교가 중심이 되어 견인차 역할을 한다. 또한 그 중심에 서서 한국연극의 발전과 그 방향을 이끌어 온 중심에는 고려대학의 영어영문학과의 교수 여석기 교수님의 셰익스피어 강의가 견인차 역할을 했고 이화여자대학 영어영문학과의 김갑순 교수님의 414 대강의실에서 펼쳐진 대학연극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극공연에서 출발한 연극공연의 활발한 양상은 오늘의 현실에 비하면 비록 몇 편 안 되는 공연이지만 한국지성인들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불러 일으키며 다시 예술을 통한 사람들의 지성과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줬다. 예술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예술이란 대상을 보고 그 대상에서 풍기며 우러나오는 모든 힘과 아우라로 사람을 에워싸며 변화시킨다. 예술을 접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나 사회는 처음엔 당연히 황당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한 예술을 올바르게 바라보며 그에 합당한 가치를 알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다시 예술평론이란 또 하나의 장르를 구성하며 예술작품의 올바른 가치를 세워주는 안내자로 나선다.. 이러한 지적 호기심과 가치판단의 기준을 안내하기 위해 고려대 여석기 교수는 한상철교수( 연대출신이며 연극의 가치를 세우는 안내자로서의 당시 강사)를 조수와 동료 삼아 <연극 평론> 이란 잡지를 창간한다. 몇 안 되는 필진들이 기고하며 연극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호응에 대응한다. 이렇게 구성된 연극평론가들은 이태주, 이상일, 한상철이 중심이 되어 서울극평가그룹을 만들고 이에 필자인 양혜숙이 합류하며 연극평론가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다음 세대의 김방옥, 김문환에 뒤이어 연극사학자로 더 공헌하는 유민영, 서연호가 합세하며 타 장르의 예술평론계를 한동안은 활발하게 끌어나가는 역할을 하며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서울극평가그룹의 멤버는 이상일, 이태주, 양혜숙, 유민영과 뒤늦게 참여한 송동준(서울대 독문과) 정도였다. 이러한 몸체로 활동과 모임도 부진한 80년대 초반 세계연극평론가 그룹《AICT Assotiation of International Theater Critics》 의 초청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통해 왔던 듯싶다. 당시 회장을 맡고 있던 한상철 교수가 대응을 못하자 갑자기 이상일, 이태주 교수는 필자인 양혜숙을 불러 서울극평가그룹의 대표를 맡아 <세계연극평론가협회> 총회참석에 대응하는 회장직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대학로 어느 다방에서 만난 두 선배님의 명령과 같은 지령을 받아 세계연극평론가협회 AICT 총회가 있는 이태리 로마로 제12차(?) 세계연극평론가협회에 참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으로 세계적인 연극잡지, 영국의 Theater Record의 편집장 겸 발행인, 동. 서독의 세계적인 연극잡지 Theater Heute와 Theater der Zeit의 편집장과 발행인들을 만나며 당시 처음으로 세계연극협회의 회장으로 부임하는 영국의 John Elsom 회장들과 친교를 맺게 되며 한국연극과 한국연극평론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고 온다.

그해가 1986년 여름 6월 말, 7월 초로 기억되니 내 나이 딱 50이 되던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연극협회장들은 마치 내가 30도 안 된 앳된 여자로 보며 매우 신기해 했다. 그러나 내가 그들 잡지들에 실린 수 많은 내용을 알고 있음에 매우 놀라며 친절하게 한국연극계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1주일 동안의 로마에서의 한국연극평론가로서의 여러 다채로운 경험과 세계연극인들과의 만남은 앞으로 다가오는 한국연극계의 국제화 작업의 주춧돌이 되었다.

예를 들어 동독에서 큰 역할을 하며 세계적인 국제기구로 이끌어 낸 <국제 아동 및 청소년연극협회> (Asitej)와 <서울연극평론가그룹>이 국제기구로 성장하는 단초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인적 조직을 구성하며 국제적 관계의 초석을 놓았다는 큰 보람을 느낀다. 오늘날 당시의 나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나라 연극계와 세계의 다리를 놓은 최초의 행보였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당시 로마에서 알게 된 일본 연극평론가협회장은 90년대 초 중반 일본 연극평론가들의 한국연극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러 일본연극평론가들의 내한, 관극을 유도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세계경험은 다음번으로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