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2023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박경, 정소익 공동예술감독
[Special Interview] 2023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박경, 정소익 공동예술감독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5.31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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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환경, 예측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시도”
2023년 한국관 전시 《2086: 우리는 어떻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첫 공동감독 “서로 시너지 되는 관계”
두 예술 감독 2009년 안양 공공미술프로젝트부터 함께 해
예측 할 수 없는 ‘미래’ 그 자체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장
인천, 군산, 경기도 마을 일대 프로젝트 진행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한국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게임에선 “깨끗한 물과 식량을 찾는 필사적인 약탈자들이 우리의 억만장자 고객과 그들의 벙커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에게는 자신들이 마련한 재산과 피난처를 즐길 권리가 있고, 우리에게는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 파렴치한 약탈자들을 어떻게 퇴치할 수 있을까요?(질의자: 미래의 경호업체)”라는 질문이 뜬다. 현재 우리 인간은 어떻게 대답을 할까? 한국관의 박경, 정소익 두 예술감독은 관람객이 선택할 답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막식에 참석한 한국관 참여 작가진과 예술감독 ⓒ서울문화투데이
▲개막식에 참석한 한국관 참여 작가진과 예술감독 ⓒ서울문화투데이

베니스비엔날레 제 18회 건축전에 참가한 한국관은 세계 인구가 정점에 달하는 ‘2086년’을 지금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많은 사회적, 환경적 문제가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봤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시작된 전시이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를 보면 꼭 이 상상이 ‘비관’인 것만은 같지 않다.

2023년 한국관 전시 《2086: 우리는 어떻게?》 개막 하루 전인 지난 17일(베니스 현지 시각) 전시 준비로 바쁜 한국관 옥상공간에서 두 예술감독을 만났다. 올해 한국관 전시를 설명하는 국내 간담회에서 취재진들은 ‘질문’만을 던지는 전시가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이제는 질문이 아니라 ‘답’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지 물었다. 그 때 두 예술감독은 ‘질문’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답했다. 한국관 전시 현장을 찾기 직전까지 기자에게도 ‘질문’이 목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빠르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과연 그 의문을 해결하고 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 시간여 진행된 인터뷰는 초반에 낯선 분위기를 금세 넘어서서 즐거운 대화로 이어졌다. 그건 인터뷰 내에서도 ‘우리는 어떻게?’라고 묻고 있는 두 감독의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 예술 감독이 짚고 있는 지점은 우리의 미래를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보고,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던 현재 인류가 가진 태도였다. 과연 그 태도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생각하게 하며, 그래서 우리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취재진과 두 감독의 대화는 재밌는 지점이 있었다. 기자가 ‘두 감독은 관람객들이 게임에 어떻게 응답할 거라고 보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물어보면, 대게 두 감독은 ‘모른다,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선택이 나오지 않겠느냐’라는 식의 답을 전했다는 점이다. 그 대답은 얼핏 무책임하고, 답을 찾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두 감독이 전하는 대답의 무게는 달랐다. 미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지금 당장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힘이 있는 답이었다. 우리 인류 모두가 쥐고 있는 선택권과 태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일으키는 답이었다. 이 인터뷰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그것을 예측할 수 없게 표현한 감독들의 답이다. 이하 질문에 답은 편의상 감독 각각의 성으로 표기했다.

▲2023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2086: 우리는 어떻게?》 전시 전경 (사진=아르코 제공)

2023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주제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와 한국관 전시 《2086: 우리는 어떻게?》는 주제적 측면에서 어떤 지점이 맞닿아 있는가.

(박) 2023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미래 실험실’이다. 한국관도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본전시가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가 보고 있는 미래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가 욕망하고 있는 방향을 담고 있다. 그런데, 한국관이 보고 있는 미래는 ‘예측불가능’이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미래를 생각해왔던 방식과도 다른 입장이다. 확실하지 않고, 미스터리가 많이 담겨있는 시선이다.

지금 이때까지 인류는 우리가 미래를 완전히 알고, 우리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떤 자신감에 가득 찬 태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런 자신감을 잃게 됐다. 환경 위기, 기후 재난 등이 눈앞에 닥쳐왔고,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가야하는가’라고 묻게 됐다. 이것이 우리 한국관의 목적이다.

환경 위기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미래도 알 수 없는 것이 됐다. 나와 정 감독은 이것을 ‘확실성의 종말’이라고 봤다. 이 상황 속에서 인류는 살아가기 위해서 믿어야 할 것이 필요하다. 그 믿을 수 있는 것을 ‘과거’라고 봤다. 왜냐하면 과거이자 오늘이 현재 이 환경 위기를 만든 주범이기 때문이다. 한국관은 과거를 다시 성찰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발전’에 대한 생각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현재 한국관이 말하는 ‘미래 실험실’이다.

(정) 정리를 하자면,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에서 진보의 길만 걸어왔고 미래에 대해 예측할 수 있고, 어느 부분에선 인류가 미래를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닥친 환경 위기를 보면서 박 감독님과 나는 그 믿음이 모두 깨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래의 실험실’이라는 주제 앞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예측’해서 준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불확실성 자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가에 힘을 실어서 선보이고자 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박경 예술감독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관 전시 《2086: 우리는 어떻게?》가 베니스비엔날레의 본 전시 《미래의 실험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까.

(박) 아프리카가 세계의 주목을 받을 시기가 도래했다. 값싼 노동력과 여러 자원 때문에 유럽 식민지화의 희생양으로 남아있었다. 현재에도 여전히 그런 압박은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 강대국의 희생양이었고, 아프리카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 시기를 벗어나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고, 선진국 반열에도 오르게 됐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어떤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말할 순 없다. 왜냐면 한국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닥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 한국의 과거와 발전 과정들이 아프리카에 어떤 모델이 딱 될 수는 없을 것이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는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역사적 상황은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지점도 많다. 아프리카는 식민지를 벗어난 이후에도 계속 강대국 논리에 이용당하고, 개발ㆍ발전의 과제도 있다. 어떤 성장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발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는 생긴다. 그것을 좀 더 중요하게 다뤄서 말하고 싶다. 한국은 모델일 수 있으면서, 경고(warning)일 수도 있다.

(박) 맞다. 모델만 되면 그것은 아주 뻔한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우리가 지닌 경고의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의 사례가 그들에게 있어서 앞으로 피해야 할 것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장소특정프로젝트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가 진행된 군산, 인천, 경기도는 어떻게 선정된 지역인가.

(정)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역에 대한 사례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다양하고 여러 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세 곳의 장소의 면적, 인구 수, 지역이 처한 사회문화적 상황 이런 것들이 다 다르게 골고루 선정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

‘동인천’ 지역의 경우, 지금 인구가 3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에 속해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재개발 압력이 굉장히 센 지역이다. 하지만 동시에 ‘재개발을 하지 말자’라는 거부 움직임도 굉장히 거세다. 즉, 도심이면서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 굉장히 첨예한 곳이라고 판단됐다.

‘군산’은 인구 26만 명인 중소규모의 도시다. 최근에 관광지로 많이 각광받으면서 군산을 오고가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주민등록상으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지역에 빈집이 계속 늘어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도심지역에서는 계속 아파트를 지으면서 사람들을 더 끌어 모으려 하고 있다.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점차 줄고 있고, 신도시가 생겨나면 결국 어느 지역은 비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도시라고 봤다.

‘경기도’는 경기도의 점점이 뿌려져 있는 마을 단위로 살폈다. 경기도는 굉장히 큰 도다. 인구가 1,50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사실 이 마을들엔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노인들이나, 이주노동자, 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살게 된 분들이다. 경기도의 어떤 지역은 엄청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경기도의 어떤 마을은 마을이 텅텅 비어가고 있다. 동시에 비어가고 있는 마을을 채우는 새로운 주민들의 상황이나 한국에는 없던 문화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특이하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다.

▲인터뷰 중 질문을 듣고 있는 정소익 감독 (사진
▲인터뷰 중 질문을 듣고 있는 정소익 감독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전 세계가 참가하는 건축전에서 ‘인류 멸망’ 시나리오로 한국관 전시를 기획했다. 장소를 특정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지방소멸, 이주노동자 문제 등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드러낸다. 이 문제들을 세계무대에서도 선보이는 이유가 있다면.

(정) 이번 장소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각 지역 별로 특정 이슈를 다루게 되고 또 특정 해결책을 내놓게 됐다. 그런데,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노력했던 것이 ‘꼭 이 지역을 위한 해결책만을 찾는 데서 멈추지 말자’라는 태도였다.

경기도에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시선을 돌려보면,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한국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개발과 보존의 문제의 경우 한국에서 굉장히 첨예하게 다뤄지고 있긴 하지만, 베트남 같이 지금 막 개발되고 있는 국가에는 다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빈집 문제도, 가까이만 봐도 지금 이 이탈리아에서도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에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특정사례를 지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도출되는 시사점은 좀 더 보편성을 띨 수 있는 것들이라고 봤다. 우리가 찾은 해결책들이 꼭 특정지역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세계가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지점이라고 봤다.

(박) ‘우리나라의 안 좋은 점을 왜 해외에 보여주느냐’ 그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하고 싶다. 한 나라가 정말 성숙하고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공뿐 만 아니라, 문제의 지점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이런 자국의 문제를 들고 세계에 나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이 이제는 성숙한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도 우리 한국과 같은 문제를 모두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문제는 국가를 국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각 선진국들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대처하고 있는 지다. 한국은 이미 글로벌화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 문제들을 세계와 공유해야 한다. 또 우리 이전에 문제를 겪었던 국가에게서 배울 수도 있다.

과거의 한국은 미국의 성공 사례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의 나쁜 점을, 서양의 나쁜 점을 보고 우리가 배워야 하는 때가 됐다. 우리에게 이제는 선진국의 나쁜 문제들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한국관 현장에서 게임에 참여해보는 관람객들 ⓒ팀오프투베니스
▲한국관 현장에서 게임에 참여해보는 관람객들 ⓒ팀오프투베니스

전시에서 관객 참여 콘텐츠 <Together How 게임>이 인상적이다. 참여자들의 선택을 Ecogram 칠판에서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그로인해 세계에 닥칠 변화를 전시 기간 중 누적 수치로 게시한다고 했다.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정) 게임이라는 콘텐츠는 관람객들이 같이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떤 환경적 상황이,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 나와 내 선조가 쌓아왔던 것이 지금 폭발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인지다. 결국 이것은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할 거라는 그런 인식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Together How>게임 내용을 보면 ‘환경 위기’ 주제 아래 기획된 콘텐츠이지만, 질문 자체는 환경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환경의 위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모든 선택의 최종 결과일 뿐이지, 지금 당장 내가 쓰레기를 하나 더 버렸다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내가 아보카도를 하나 더 먹었다고 수치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의 매순간 선택이다. 이 말 뜻은 게임을 하는 매 순간의 선택, 사람들의 선택이 계속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결과 값을 산출하고 번역을 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이다. 전시의 방향성과 게임의 결과 값이 다르게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정) 우리는 이 게임에서 의도하는 바가 없다. 의도하는 바가 있었다면 ‘게임’이라는 것을 만들 이유가 없다.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다 너무나 이상적인 그런 선택을 한다면, 그러면 지금보다 당연히 우리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이다. Ecogram 칠판에는 그런 지표들이 있을 거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보다 사람들이 다 너무 이상하고, 겉으로는 착한 척을 하지만 세계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한다면, 해수면이 5m 6m 올라간 걸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은 우리 선택의 결과 값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외 언론인들에게 전시를 설명하는 박경 예술감독
▲해외 언론인들에게 전시를 설명하는 박경 예술감독 ⓒ팀오프투베니스

그럼 <Together How>게임은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는 것인가.

(박) ‘게임’이라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고, 이미 그렇게 기획돼 있다. 그리고 여기서 재밌는 것은 게임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게임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설계가 돼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한 선택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한 번 버튼을 누르면 끝난다. 그리고 그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시간도 한정돼 있다. 게임은 계속 앞으로만 흘러간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인류는 자신이 무엇을 컨트롤할 수 있고,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컨트롤 밖에 있다. 인간은 조종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컨트롤 밖에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게임으로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게임의 알고리즘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한국관 전시장 게임의 알고리즘은 절대 바뀌진 않는다. (웃음) 확실하다. 그런데 진짜 만약에 누군가 게임 뒤에서 비밀스럽게 룰을 바꿔버린다 해도, 게임 앞 참가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우린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조종할 수 없다.

(정) 결론적으로, 이 게임은 결국 미래의 예측불가능성, 우리 앞에 놓인 예측불가능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은 어떤 목표치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가는 것이 아니다. 참여자의 선택에 따라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정말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관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나누는 정소익 예술감독
▲한국관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나누는 정소익 예술감독 ⓒ팀오프투베니스

예상보다 전시 설치가 좀 늦어졌다. 이유가 있었을까.

(정) 배송 문제가 제일 컸다. 지금까지 한국관 전시는 한국에서 다 제작해서, 베니스에선 설치만 했는데 이번에 우리는 좀 달랐다. 이곳에 와서 다 제작을 했는데, 예산과 시간적 문제가 있었다. 제작을 모두 마치고 베니스에서 설치만 한다면 1월 달에 이미 모든 작품을 완성해야했는데, 우리는 그때까지 아직 끊임없이 얘기를 하고 논의를 하고 있었다.

또, 내가 이탈리아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전시 제작이 보다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변수들이 있었다. 제일 큰 변수는 환율이 너무 올랐다는 것이었다. 거의 비상금으로 아껴놨던 돈까지 다 모아서 전시를 준비했다. 그러다보니, 좀 더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길들이 많이 차단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탈리아의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베니스가 육지였으면 문제가 안됐는데, 섬이다보니 비가 오면 배달이 아예 안됐다. 분명 주문한 물품이 모바일 상으로는 오늘 도착한다고 하는데, 일주일 동안 오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다보면 파손도 분명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파손이 됐는데, 이후에 또 물건이 엄청 늦게 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전시를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전시 개막 하루 전에 이정도 세팅이면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 (웃음)

한국관 개관이래, 첫 공동 예술감독 체제로 진행됐다.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의 어려움은 없었나. 두 사람이 전시 기획을 하면서 가장 공감대를 이룬 것과 가장 큰 차이를 가진 내용이 궁금하다.

(정) 함께 일한 지는 정말 오래됐다. 제 3회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부터가 인연이었다.

(박) 맞다. 2009년에 내가 예술감독을 맡았을 때 예술 팀장을 찾고 있었다. 정 감독을 만났고,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정) 그때는 내가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끝내고, 막 한국에 들어갔을 때였다. 한국 삶도 적응이 안 되고, 정신을 못 차리고 방황이라면 방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시기에 제안을 받아서 함께하게 됐다.

박 감독님과 나는 생각하는 바와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 같다. 그래서 기획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성향의 차이는 존재한다. 내가 완전한 이과형 두뇌를 가지고 있다면, 박 감독님은 완전한 문과형 두뇌의 소유자다. 그리고 일 하는 방식에서도 약간 차이가 있다. 나는 어떤 프로젝트을 맡았을 때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는 데에 힘을 싣는다면, 박 감독님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스타일이다.

(박) 전시를 할 때 내 이름은 ‘박경’이 아니라 ‘변경’이다.(웃음) 내게는 정 감독님이 좋은 인연이다. 정 감독님은 굉장히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함께 일하면서 시너지가 나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중요한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정) 함께 일하면, 시너지가 많이 나는 느낌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기획의 맺고 끊음을 잘 조절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동인천 프로젝트, 민운기X서예례 <미래로서의 폐허, 폐허로서의 미래>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가장 물리적이고, 육중한 ‘건축’을 통해, 우리의 신체와 정신 등 내면의 변화를 제안하고 있다. 《2086: 우리는 어떻게?》가 어떻게 우리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정) 우리의 소통 언어가 공간적인 것은 맞다. 집도 있고, 게임도 있고, 한국관 창문도 굉장히 큰 건축적 구조다. 또 인천프로젝트 경우, 원형으로 공간을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어떤 액션을 요구하기도 한다. 건축전은 공간으로 소통하는 자리고, 한국관은 그 방법을 어떤 건축모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완성하진 않았다. 그 공간에서 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물리적일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적 경험 요소들 가운데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많이 심어놨다고 본다.

게임 콘텐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질문들, 그리고 게임을 하기 전에 삽입해보는 카드와 카드에 스탬프로 찍을 수 있는 문구 등이다. 공간을 주의깊게 경험한다면, 사람들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의 연결성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획자 입장에선 충분한 장치들을 만들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과연 모든 사람들의 변화나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 그건 나도 알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박)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은 ‘건축’은 단지 디자인이나 기능적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축은 정치적 경제적 이슈와 연결돼 있다. 한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예로 독재자나 민주국가나 국가의 정체성 보여주기 위해 건축을 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건축은 한 국가의 재산이다. 국가가 가진 문화와 역사를 소유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그런 힘을 지닌 공간이라는 것이다.

(정) 조금 더 덧붙이자면, 한국관의 공간은 정말 질문이 많다. 게임도 그렇고 , 장소 특정프로젝트에서도 많은 질문들이 있다. 질문을 하면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은 이러한 환경의 위기를 맞았음에도, ‘발전’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현 시대를 바라보고 언급하곤 있지만 학계나 예술계나 여전히 아직은 ‘발전’을 향한 시선이 있다. ‘웰 다잉, 웰 에이징’ 등 잘 늙고, 잘 죽는 것, 저성장과 인구감소 문제에 대해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있다. 현상을 보고만 있지,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아직 없는 것이다. 시골에 빈 집이 늘어나고 있다고 뉴스에 나오고 있는데, 그거에 대한 해결책이라곤 도시에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것이고, 무엇인가 지속가능한 대안이 나오진 않고 있다. 그래서 같이 묻고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것은 굉장히 중의적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