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대동춤 Ⅲ’ : ‘오월 광주’, 다르게 보여주고 들려주다!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대동춤 Ⅲ’ : ‘오월 광주’, 다르게 보여주고 들려주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3.05.31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너무도 아픈 일이었다. 그 아픔을 예술로 담아내려 했다. 지금까지 오월항쟁과 연관된 수많은 작품을 만든 분께 고개 숙인다. 한 때는 오월항쟁을 다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예술적 완성도는 차후였다. 

오월항쟁을 다룬 그간의 작품은 어떠했는가? 너무 격정(激情)으로 풀어낸 건 아닌가? 많은 희생자를 냈기에 분노와 울분을 비껴갈 순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지금의 세대와 앞날의 세상이 그렇게 만든 작품에 언제까지 공감할까? 그렇지 않다는 건 분명한 답이다. 진작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절실했다. 

음악과 춤이 어울린 ‘잔잔한 감동’  

‘대동춤 Ⅲ’은 달랐다. (5. 27.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 1) 거기엔 격정은 없었다. 그동안 격정적인 작품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있었다. ‘잔잔한 감동’이었다. 오월항쟁을 다룬 훌륭한 작품이 꽤 있지만, 이렇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얼마나 될까? 현장감을 최대한 살린 음악을 통해서, 춤의 여러 동작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춤이란 무얼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춤으로 풀어낼 수 있다. 춤은 음악과 상생할 때, 그 감동은 더하다. ‘대동춤 Ⅲ’에서의 춤이 딱 그랬다. 총예술감독을 맡은 김상연의 대본을 바탕으로 해서, 세 개의 작품이 이어졌다. 

‘The Sword’는 검무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칼(劍)은 전쟁의 시작점이지만, 검무(劍舞)는 치유의 시간으로 향한다”는 것이 김상연(총예술감독)과 조재혁(안무)의 생각. 도입부는 그림자극과 같았다. 중국의 피영희(皮影戱)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 칼을 휘두르는 전쟁은 막 뒤에서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무대 앞쪽에서의 검무를 우아했지만, 기(氣)가 살아있었다. 음악은 기존의 음원을 잘 활용하면서도, 현장의 리얼리티가 잘 살아났다. 이 작품에는 샤먼(무당)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가 작곡가 유세윤이었다. 아쟁과 목소리로 참여했다. 유세윤은 퍼포먼스적인 역량이 매우 탁월했다. 그는 예(藝)보다는 기(技)가 앞서 보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고, 그런 특성이 작품과 부합해서 매우 훌륭하게 표현되었다. 

‘화양연화’를 탈춤을 소재로 만들었다. 총예술감독이 소록도의 한센인을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소외된 사람을 통해서 인권(人權)을 얘기하고 있다. 김기범의 음악은 일단 나무랄 데가 없다. 그렇다고 칭찬을 하게 되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국악계의 서정성을 강조한 퓨전 형태의 음악이 지향해왔던 것들의 최종 목적지를 보고 듣는 기분이 들었다. 새롭지 못했다. 무용음악으로서는 손색이 없을지라도, 김기범이라는 특정 작곡가의 작품으로 보이진 않았다. 능력이 있는 작곡가임에 틀림없겠는데, 과연 이 작곡가가 정말 쓰고자 하는 작품이 무엇일찌 궁금하다. 

허창렬 스타일? 연희스타일?  

허창렬은 안무를 했고, 직접 문둥이춤을 추었다. 허창렬은 이 춤을 잘 추기도 유명하다. 여기에 동 세대의 마음이 맞는 춤꾼들이 가세해서 춤판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탈춤의 한계일까? 탈춤의 특성일까? 아니면 허창렬의 스타일일까? 연희의 스타일일까? ‘예상했던 것이, 예상했던 방식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었다. 쉽게 다가오지만, 깊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명과 움직임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느낌을 준 것은 사실일지라도, 이 작품을 ‘원형을 통한 창작’이라고 확실하게 얘기하긴 어렵다. 

‘타파(打破)’는 일무(佾舞)를 바탕으로 일단 출발했다. 일무의 특성인 라인(佾)을 벗어나면서, 매우 다양한 동작과 음악이 만나고 있었다. 매우 흥미진진한 작품인 건 사실이었다. 대본(김상연)의 의도를 음악(황재인)이 현명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일무(佾舞)에 사용하는 제례악의 장중함 속에서도 여러 형태의 리듬적인 요소를 잘 살려내고, 서양악기가 안정감있게 받쳐주었다. 이른바 황재인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양자를 조화롭게 공존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타파’는 대본(김상연), 안무(조재혁), 작곡(황재인)의 셋이 김상연 총예술감독의 의도를 현명하게 구현했다. 음악과 춤도 매우 조화로웠다. 단 한 순간도 지루한 틈을 주지 않았다. 관객을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살아있었다. 작품이 끝났을 때 관객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난 그저 기쁘게만 들을 순 없었다. 예(藝)적인 사고를 갖춘 작곡가가 너무 기(技)적인 능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작곡가마다 성향이 있다. 앞서 유세윤은 자신에게 딱 맞는 작품을 하고 있다면, 황재인은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세계무대에서 성장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곡가가 되길 원한다면,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무게감이 있는 작품에 더 정진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광주를 통한 평화 x 원형을 통한 창작 

김상연 총예술감독은 ‘대동춤 Ⅲ’를 통해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건 분명하다. 하나는 ‘광주를 통한 평화’. 춤을 매개로 해서 이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할 수 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작품은 이제 광주를 넘어서 세계로 갈 수 있다. 또 하나는 ‘원형을 통한 창작’이다. 실제 전통음악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전통적인 소재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거기에 또 다른 음악적 요소를 잘 배합시킬 수 있는 노하우가 분명했다 ‘대동춤 Ⅲ’은 “‘광주항쟁의 현재적 의미’와 ‘전통음악의 동시대성’을 동시에 만족시킨 품격있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