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최고의 손맛 , '김치전쟁'
한국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최고의 손맛 , '김치전쟁'
  •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0.02.1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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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한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동은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최고의 요리사였던 아버지의 잃어가는 미각을 되찾아주기 위해 딸들이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 ‘ 음식남녀’(이안)

1만 프랑의 복권 당첨금으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하는 수석요리사출신 ‘바베뜨의 만찬’(가브리엘 엑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태리 전통 요리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즉석요리사이에서  갈등하는 형제애를 다룬 ‘빅나이트’(켐벨 스코트,스탠리 투치 )

향신료가게를 평생 지키며 가족을 기다린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소스는 소금임을 깨닫고 가게 안에 떨어진 향신료를  줍고 있는 손자 파니스 ‘터치 오브 스파이스’( 타소스 불메티스)

 이들 요리영화의 일관된 공통점은 요리로서 가족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함께 나누는 식사로서 화해의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찬이 차려진 식탁은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의 장이며 맛을 음미함으로서 상처받은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게 한다.

영화속에서 요리에 대한 기억은 지난 날에 대한 향수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뜸했던 고향을 찾아가게 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랑과 인생이 화려한 향신료에 담겨져 있다가도 초콜릿의 달콤하고 감미로운 맛에 한동안 도취되어 버린다. 영화 ‘초콜릿’(라세 할스트롬)에서 미움과 증오가 가득찼던 마을이 초콜릿으로 인해 사랑과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기생집을 운영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일본에서 세프 요리사가 되어 있는 장은이 춘양각에 대한  향후 결정권을 위해 성한과 맞대결을 해야하는 종목은 노하우와 손맛이 가장 중요한 김치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춘양각을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수향의 손맛은 바로 한국의 어머니손맛이다. 그 손맛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를 미워하는 딸 장은이 김치대회에서 최고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위가 약한 장은을 위해 김치에 소량의 계피를 넣어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춘양각을 다시 열게 된다.

고인이 된 수향의 바램이 현실이 된 것이다.  김치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  그것은 장은에게는 최고의 세프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과제였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것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뿐 아니라  오랜 숙성 끝에 깊은 맛을 내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며  한국식탁에 매일 놓여지는  김치는  가족의 사랑을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가족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이러한 의미에서 무리없이 잘 반영되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감독답게  100여가지 김치의 향연을 빠르게 진행되는 화면분할로 보여줌으로서 살아있는 미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어 있어 흥미롭다. 

 하지만 너무나 뛰어난 원작인 만화 식객의 속편으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상항에서 최대한 원작과 멀어지게 만들려다 보니 주인공들의 캐릭터보다는 비쥬얼적인 면이 지나치게 강조된 점이 문제다. 

숨어있는 김치의 고수들의 김치 담그는 비법이나 그들의 화두같은  한두마디를 넣었더라면 김치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김치의  몇몇 고수들은 종가집 대를 이어오는 며느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통과 손맛 그리고 어머니의 정, 세대간의 화해와 소통이 들어 있는 김치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예도 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세프인 장은이나 한국최고의 맛을 추구하는 요리사 성찬이 치열한 프로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춘양각을 두고 갈등하는 남매의 모습에 그치고 있는 듯한 아쉬움도 있다. 물론 수향이나 성찬의 친어머니에 대한 회상은 감동어린 장면으로 남긴 했지만...

이제 곧 미국최초동시 상영이 될 이 '김치에 관한 요리 영화'처럼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김치가 명백히 우리음식임을 알리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그러나 2005년 데살로니카 영화제에서 10개 부분을 석권하고 그리스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로 남은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가 음식문화와 철학을 놀랍도록 잘 멜랑쥬해서 화려한 이스탄불의 요리세계를 세계적으로 선보인 것과  요리다큐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비쥬얼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며 모호한  캐릭터들에 대한  좀 더 철학적 연구 내지는 접근이  필요하다.

스토리에 대한 스케일도 지금보다는 확장되어야 한다.  산해진미의 화려한 요리세계는  영화가 아닌 프로그램에서도 늘 즐길 수 있는 테마다. 거기에 시각적 즐거움 못지 않은 감독의 꼬장꼬장한 철학이 담겨 있어야만  예술로서의 요리영화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제 시작된 세계적인 김치전쟁을 위해서다.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