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서울발레시어터 〈클라라 슈만〉, 세기의 사랑 형상화한 아름다운 작품
[이채훈의 클래식비평]서울발레시어터 〈클라라 슈만〉, 세기의 사랑 형상화한 아름다운 작품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3.06.1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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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게임', 역동적 남성무용으로 황금만능주의 풍자 
제13회 대한민국발레축제. 다채로운 창작 발레로 활기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6월 10일은 내게 ‘발레의 날’이었다. 제13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 이어서 바로 옆 토월극장에서 막이 오른 창작발레 <클라라 슈만>과 <첫번째 게임>을 내쳐 감상했다. 한국 발레의 현주소를 하루에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서울발레시어터의 <클라라 슈만>은 19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그녀의 남편 로베르트 슈만, 그리고 로베르트의 제자이자 클라라의 정신적 연인이었던 요하네스 브람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이 등장할테니 어떤 작품일지 무척 궁금했다. 안무를 맡은 제임스 전 선생은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직후인 1995년 내가 연출하던 MBC <문화집중>에 김인희 초대 단장과 함께 출연하여 대담을 하고 무용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서울발레시어터가 오랜 세월 한국 창작발레의 대중화를 위해서 애쓰면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는 걸 알기에 최근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각별했다.

음악과 무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직접 표현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이사도라 던컨의 말처럼 음악이 ‘춤의 혼’이라면, 창작 발레 <클라라 슈만>은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을 몸짓으로 형상화하여 세 사람의 사랑을 되살려 줄 터였다. 슈만 피아노사중주곡 1번의 아름다운 ‘안단테 칸타빌레’로 시작한 음악은 슈만과 브람스의 실내악곡과 피아노곡으로 이어지며 발레의 영혼이 되어주었다. 무대 위의 네 연주자는 열정을 다해 낭만 음악의 진수를 들려주었다. 로베르트의 정운식, 클라라의 이윤희, 브람스의 황경호 등 출연자들은 열정적인 무용으로 관객들을 낭만시대의 사랑 속으로 이끌어 주었다. 조명의 변화를 통해 출연자들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대목이 특히 아름다웠다. 

세 사람의 관계와 감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인지 평범한 삼각관계 묘사에 그치며 감정 과잉으로 흐른 느낌이 남은 것은 아쉽다. 춤 동작으로 음표 이미지를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더 잘 표현할 방법은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선곡과 구성은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은 달콤한 실내악 위주로 구성했는데, 세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곡들 – 가령 로베르트가 클라라와 결혼할 때 선물한 가곡집 <미르테의 꽃>, 그녀의 요청에 사랑으로 응답한 피아노협주곡 A단조, 클라라가 브람스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연주한 브람스 인터메조,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직후 브람스가 악보에 ‘죽음이여, 죽음이여’라고 써 넣은 교향곡 4번 E단조 등 – 을 적절히 삽입하는 선곡도 가능할 것이다. 클라라와 브람스의 관계는 40년 넘게 지속됐다. 이 기나긴 세월에서 두 사람이 나눈 감정의 핵심을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다채로운 상상과 창조적 시도를 가능케 하는 흥미로운 주제가 분명하다. 

윤전일의 댄스 이모션이 공연한 <첫번째 게임>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돈이 가득 들어있는 007 가방을 사이에 두고 13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밀고 당기는 역동적인 춤의 한마당이었다.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수많은 감정들 중 가장 인상적인 감정을 관객들이 선택하고 재해석할 수 있도록” 감성적인 안무를 시도했다고 한다. 꼼꼼하고 기발한 선곡, 정교하고 재치있는 음향 효과, 그리고 급격하고 충격적인 조명의 반전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45분 공연 내내 눈과 귀는 신선한 감각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안무를 맡은 윤전일은 천재가 분명해 보인다. 주인공은 돈이 가득 들어 있는 007 박스에 코를 처박고 죽어 버리는데 – 너무 심한 스포일러, 죄송! - 이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가 분명해 보인다. 넷플릭스 히트작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의상을 입고 춤추도록 한 것도 이러한 추측을 강화한다. 커튼콜 때 윤전일 단장의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가 등장한 것은, 가족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메시지로 보였다. 남성 무용의 매력을 압축해서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제13회 대한민국발레축제는 갈라 공연인 <발레 오디세이>(6/16~17), 광주시립발레단의 <돈키호테>(6/24~25, 이상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그리고 프로젝트 클라우드나인의 <COMBINATION 2.0>과 유미크랜스의 <Edge_New Dawn>(6/13~14), 양영은 비욘드발레의 <소나기>와 원헤인 발레프로젝트의 <Writer % Speaker Ⅱ>(6/17~18, 이상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를 남겨놓고 있다. 6월 13일(화)과 6월 18일(일) 자유소극장 공연 직후에는 관객과의 대화도 준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