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국중박 상설전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고대인이 만든 ‘그로신’ 만나는 전시
[현장스케치] 국중박 상설전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고대인이 만든 ‘그로신’ 만나는 전시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6.15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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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ㆍ로마실’ 신설, 2027년까지 4년간 상설 운영
126건 전시작 중 절반 최초 공개
로마와 그리스 관계성 담아, ‘그리스로마 신화’ 담아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로신’이라는 신조어를 알게 됐다. 요즘 초중학생들에게 그리스로마 신화가 유명해지면서, 학생들이 ‘그리스ㆍ로마 신’을 줄여서 ‘그로신’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익숙하면서 많이 알려진 ‘그리스로마 신화’를 좀 더 새롭게 바라보는 데에 힘을 실었다” 지난 14일 전시 언론공개회를 시작하면서 양희정 학예연구사가 전한 말이다.

▲제우스상, 로마, 1~2세기, 청동, 17.3 x 5.9 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우스,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 하데스 등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류문화의 시작, 유럽문화의 근간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주제로 한 상설전시가 시작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에 ‘고대 그리스ㆍ로마실’을 신설하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오스트리아의 빈미술사박물관이 공동 기획했으며, 전시는 2023년 6월 15일부터 2027년 5월 30일까지 4년간 열린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는 박물관이 2019년부터 조성한 이집트실(2019~2022년), 세계도자실(2021~2023년), 메소포타미아실(2022년~현재)에 이어 개최하는 네 번째 세계 문명·문화 주제관 전시다. 이번 전시는 지난 3월까지 개최됐던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서 이어질 수 있었다.

▲지난 14일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좌측부터) Wolfgang Angerholzer(주한오스트리아대사 ) 윤성용관장 Dr. Georg Plattner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그리스로마컬렉션에페소스박물관 부장)
▲지난 14일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좌측부터) Wolfgang Angerholzer(주한오스트리아대사 ) 윤성용관장 Dr. Georg Plattner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그리스로마컬렉션에페소스박물관 부장)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00여 년 만에 전시되는 그리스로마 유물

지난 14일 열린 언론공개회에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Wolfgang Angerholzer(주한오스트리아대사), Dr. Georg Plattner(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그리스로마컬렉션에페소스박물관 부장)가 참석해 인사말을 전했다.

윤 관장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이 많았다”라며 “이번 전시는 그리스와 로마 두 나라의 관계에 주목해 좀 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라며 전시를 소개했다.

이어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그리스로마컬렉션에페소스박물관의 게오르크 플라트너 부장은 좋은 기회를 통해 오랜 시간 전시 되지 않은 작품을 인류에게 공개할 수 있게 됐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플라트너 부장은 “이번 전시에 나온 소장품 중의 절반은 전시된 적이 없었던 작품”이라며 합스부르크 전시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의 좋은 제안으로,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었던 작품에 대해 연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됐고, 인류에게도 그리스로마의 유물을 공개할 수 있어서 뜻 깊다”라고 말했다.

▲미네르바상, 로마, 기원전 430년 그리스 원작의 1~2세기 복제작, 대리석, 97.0 x 73.0 cm ⓒ서울문화투데이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컬렉션부터 시작해 많은 수의 서양 고대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박물관 공간의 노후화 등으로 전시 작품의 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전시를 위해 많은 수의 작품을 보존처리를 진행하는 데에 가용한 예산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전시 비용 일부로 보존처리 비용을 지불했다. 양 기관의 협력으로 합스부르크 왕조가 수집하고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세상으로 나오지 못 한 그리스로마 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될 수 있었다.

플라트너 부장은 “4년간의 장기 대여를 진행하기 위해서, 현재 빈미술사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선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를 알리기 위해 꼭 짚어야 하는 신, 신화, 사후 세계를 언급할 수 있는 주요 작품과 제우스(쥬피터) 등 상징적인 신의 작품은 꼭 선정해 선보이게 됐다”라고 이번 전시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지난 14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양희정 학예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분리되지만 분리할 수 없는(Separate But Inseparable)’ 그리스ㆍ로마

‘그리스ㆍ로마’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민주정, 로마법, 철학과 같이 오늘날의 사람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도적 유산부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 컴퓨터 게임, 영화, 브랜드를 한국인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되레 ‘그리스ㆍ로마’가 이제 대중에게 식상한 콘텐츠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각각 역동적인 역사와 풍요로운 문화를 가졌음에도 두 나라를 ’그리스ㆍ로마‘로 함께 묶어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의 영문 제목은 《Separate But Inseparable(분리되지만 분리할 수 없는)》이다. 이는 그리스와 로마가 서로 어떤 영향을 나누면서 지금까지 함께 전해지고 있는 지를 탐구한 이번 전시의 흔적이 담겨 있다.

▲베누스상(아프로디테 상), 로마, 1~3세기, 튀르키예 에페소스 출토
대리석, 147.0 x 49.5 cm ⓒ서울문화투데이

전시는 총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신화의 세계 ▲인간의 세상 ▲그림자의 제국이다. 1부 ‘신화의 세계’에서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래된 신화를 다룬다. 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리스 도기와 토제 등잔, 로마 시대의 대형 대리석 조각상, 소형 청동상 등 55점을 전시한다. 고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진 제우스,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의 대형 조각상들은 허구의 문화예술콘텐츠로만 느껴지던 신화가 당시 시대의 역사를 입고 우리에게 실감나게 접근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선 신들의 이름을 그리스와 로마 방식 모두를 사용해 표기한다.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로마에서 있는 신들과 그리스의 신을 짝을 맞추듯이 동일하게 인식했다. 이는 그리스의 신화를 로마인들이 받아들이면서 세계에 대한 해석, 즉 세계관을 공유하게 된 과정이었다.

양 학예사는 “신화는 당시 고대인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법이었다. 로마와 그리스는 당시 각기 다른 국가였지만, 비슷한 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두 국가가 비슷한 세계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라며 “고대 국가에서 신화는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종교의 역할을 했고, 지배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를 그린 킬릭스, 아풀리아, 기원전 330년~기원전 320년, 도기, 7.7 x 30.0 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부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독자적인 발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초상 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적으로 서로를 도운 두 문화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리스가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점령당하는 역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신화, 철학, 문학, 조형 예술은 로마에 깊이 영향을 줬다.

조형 예술에 있어서 로마는 그리스 고전기의 조각 걸작들을 수집하고 대규모로 복제해 공공장소와 개인 저택에 세워두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같은 로마의 그리스 애호 덕분에 그리스의 문화 요소가 로마 제국 곳곳에 전파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리스의 원본 걸작들이 대부분 없어진 지금에도 그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됐다.

양 학예사는 “개인적으로, 로마가 그리스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로마가 없었더라면 그리스의 문화가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라며 “로마는 그리스라는 자양분을 토대로 예술과 철학과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고, 그리스는 로마 덕분에 잊히지 않는 영원한 고대의 문화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2부 전시 공간은 고대 로마 시대 빌라처럼 구성된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선 저택 안에 초상 조각들을 주로 전시하고, 함께 연회를 즐기며 신과 죽음, 그리고 현실에 대해 철학적 대화를 나눴다. 전시 공간은 벽면에는 작품을 배치하고, 중앙에 연회에서 사용했던 도기들을 전시하면서 관람객들이 그 시대 연회 만찬에 초청된 듯한 느낌을 전한다.

▲보드게임의 고수, 편히 잠드소서, 석회암 유골함, 로마, 1~2세기, 이탈리아 북부 출토 ⓒ서울문화투데이

마지막 3부 ‘그림자의 제국’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후관을 살펴본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죽음으로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형태로 이행하거나 전환된다고 생각했다. 산 자가 계속 기억해 준다면 망자는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로마에선 무덤을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닌 드러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무덤을 화려하게 꾸며서 사람들이 자주 보고, 망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무덤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대로변에 위치시켰다.

3부 전시 공간에선 화려하게 꾸며진 묘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망자가 좋아하는 놀이를 새기거나, 망자의 모습을 묘비에 새겨 넣기도 했다. 또한 죽음을 관장하는 신 하데스를 통해, 죽음의 문인 ‘하데스의 문’을 묘비로 삼기도 했다.

▲토가를 입은 남성의 초상, 대리석 전신상, 로마, 1~2세기 ⓒ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ㆍ로마 신화’를 고대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리며, 그리스와 로마가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지금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자리를 만든다. 새롭게 신설된 ‘고대 그리스ㆍ로마실’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전시품들은 새롭고 알찬 구성이다.

양 학예사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조형적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신들의 모습을 진품으로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의미 있다고 느낀다”라며 “이번 전시가 ‘그리스ㆍ로마’를 좀 더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제안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플라트너 부장은 “유럽인으로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는 우리 유럽인들의 뿌리와도 같다. 나아가 이번 전시는 현재 우리 인류의 철학, 생각, 정치 등의 기원을 선보이는 것이라고 본다”라며 “좋은 기회를 통해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공개하게 된 것은 전인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느낀다”라고 전시의 의의를 전했다.

역사적으로 로마와 그리스는 정복자와 피정복민의 관계다. 하지만, 이 두 고대국가의 문명은 우리 인류의 큰 근간이 됐다. 그리스의 문화가 로마로, 로마의 문화가 유럽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 인류 공동의 유산을 만들었다. 나아가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결국 분리될 수 없고, 문화는 단절될 수 없음을 역사적으로도 인식해볼 수 있는 자리로도 읽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