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69] 풍각쟁이가 장터 오후를 적실때 ....
[정영신의 장터이야기69] 풍각쟁이가 장터 오후를 적실때 ....
  • 정영신
  • 승인 2023.06.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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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9
1988 전남 영암장 Ⓒ정영신
1988 전남 영암장 Ⓒ정영신

 

여름 장터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호미로 밭에다 공부를 했으면 박사가 됐을거라는

어매들이 밭일을 제쳐두고 장에 나왔다.

이웃마을 친구를 만나면 두런두런 서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있다.

땅과 함께 살아온 어매들의 삶은 이처럼 자연스럽다.

이야기가 서너시간 이어지다 보면,

안씨어매의 한해 농사가 땅 위로 퍼지고,

박씨어매의 자식자랑은 땅속을 타고 한양까지 올라간다.

한참 듣고 있던 이씨할매가 영감님 자랑을 시작하면

이야기는 설렁하게 끝이 난다.

 

1988 전남 영암장 Ⓒ정영신
1988 전남 영암장 Ⓒ정영신

 

엉거주춤 일어서려는 찰라, 단소 소리가 어매들을 앉힌다.

김씨할배 사철가 한자락이 한산한 장터 시간을 길 위에 펼친다.

이렇듯 사진은 과거를 불러내는 마술을 부린다.

 

이날 팽상 흙만 몬치고 산께 물짜고 짜잔하게 보이지라,

포도시 장에 왔는디, 모태서 논께 징허니 오지요

 

사진을 찍는 내게 물짜게 보일까봐 걱정이 태산인

어매들 모습이 이쁘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