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한국근현대미술전》을 보고
[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한국근현대미술전》을 보고
  • 황현탁 작가
  • 승인 2023.06.2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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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시기 한국미술을 살펴보다
▲황현탁 작가

“내 나이 41, 생활의 대부분과 미술생활의 전부가 왜정(倭政)의 그물 속에서 지냈다. 나의 미술적 수학 내지 수업이 왜정의 손끝에서 되었다.”(구본웅), “분명한 것은 내 그림이 나온 시기가 전쟁과 이산 등 모든 것이 희망 없는 암울한 시대였다는 것이다.”(황용엽), “책, 책상, 헌 캔버스, 그림들도 돈으로 바꾸어 아이들 주리지 않게 해 주시오.”(이쾌대), “꿈은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해 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 속에 서식을 해왔다.”(천경자), “각각의 작품은 내 삶의 성장이고, 내 감정을 시각 언어로 풀어놓은 것이다.”(최욱경)

예술작품은 작가의 삶의 궤적이다. 시대와 풍토를 반영한다. 일제강점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의 혼란기, 반공이 국시(國是)였던 개발연대를 살아온 우리 미술인들은 각자 자신의 삶과 예술, 작풍, 각오 등을 위와 같이 토로했다.

소마미술관(Seoul Olympic Museum of Art)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35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4월 6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국근현대미술전>(Re SPECT :Korean Modern Art)을 열고 있다. 박래현 작가의 남편 운보 김기창을 포함한 26인 작가들의 작품 16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매년 5~6월 적어도 한 차례는 올림픽공원과 소마미술관을 찾는데, 올해는 장미의 계절을 지나 찾았더니, 들꽃마루의 꽃 양귀비가 한창이었다. 장미광장을 지나 이승택의 <기와를 입은 대지>, 김영원의 <길> 등 많은 야외조각을 보면서 미술관에 도착하니 개관시간 전이다. 미술관 주위를 살피니 백남준의 <미니 쿠베르탱>, 왕중의 <방주1>, 라시드 키무네의 <외계인>, 타키스의 <서울을 위한 표지> 등 조각 작품이 즐비하다. 특히 잔디밭 가운데에는 돌과 철판으로 된 이우환의 <관계항-예감 속에서>란 작품이 버티고 있다. 줄쳐진 잔디밭 모퉁이로 다가가니 잔디 깎는 기계(lawnmower)가 조각 작품처럼 다소곳이 숨죽이고 있다.

▲소마미술관 ⓒ황현탁
▲소마미술관 ⓒ황현탁

전시는 ‘1. 우리 땅, 민족의 노래, 2.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3.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4. 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5.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의 5개 섹션으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개인이나 미술관 등 모두 30여 곳으로부터 작품을 빌려왔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4점 작품은 세 곳에서 대여해 왔다. 전시를 위해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작가들 중에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많다. 조선인 최초 유럽(독일)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독일·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후 귀국, 좌익 화단 활동과 한국전쟁 이후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수를 지내 한국미술사에서 사라졌던 배운성, 2022년 일본에서 세상을 떠난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아들에게 보내는 일본어로 쓴 편지가 전시되고 있는 이중섭, “미에 대한 관점을 왜정식으로 길렀기 때문에 나의 뇌수를 청소시키지 않고는 참다운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라고 자책하는 구본웅 같은 작가도 있다.

▲(좌측부터) 구본웅, 이중섭, 배운성
▲(좌측부터) 구본웅, 이중섭, 배운성 ⓒ황현탁

또 국립현대미술관이 국민화가 이중섭,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과 함께 <한국근대미술거장탄생100주년기념전> 작가로 선정할 만큼 대단한 화가였음에도,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 태어나 동서냉전시대 소련에서 활동하였고 북한에 잠시 파견되어 평양예술대학 학장을 지냈던 변월룡, 부부가 와인을 들면서 카드놀이를 하고 개인화실을 열 정도로 부유했던 월북작가 이쾌대, 평양에서 태어나 국군에 입대하여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황용엽과 같은 작가들도 있다. 모두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을 상징하는 분들이다. 당연히 받아들이고 포용해야만 우리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한국 근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소장미술관이나 기획전에 전시되었던 것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배운성의 <가족도>, 변월룡의 <자화상>과 <전쟁의 비극>, 이쾌대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이응노의 <군상> 등은 다른 전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전직(前職) 때문에 경마장 풍경을 그린 이성자의 <용맹한 4인의 기수>, 권진규의 <달을 보는 기사>에도 관심을 두었다.

▲(좌측부터) 변월용, 황용엽, 이쾌대 ⓒ황현탁

전시된 작품은 연필·목탄·콩테·색연필·잉크·매직을 사용한 드로잉, 수채화, 채색화, 유화에서부터 꼴라쥬, 원본은 소실되고 작가의 딸이 재제작한 작품(유영국의 R3)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조각은 별도 섹션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쾌대의 <자화상>은 찢겨진 채로 표구되어 전시되고 있다. 박수근, 김환기, 박래현(김기창), 김종영, 문신 등은 개인미술관이 있고, 천경자, 권진규 등은 서울시립미술관에 스페셜 컬렉션이 있다.

<한국근현대미술전>은 일제강점기, 남북분단이라는 한국근현대사에 점철된 우리 미술역사를 한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다. 시간을 더 내면 조각공원에 설치된 200점이 넘는 야외조각을 감상할 수 있으며, 햇볕이 따가우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수도 있다. 올림픽공원을 산책한다면 ‘위대한 대한민국’의 전기가 된 88서울올림픽을 위해 조성한 경기장, 공원, 조형물과 시설물을 보고 국민된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