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전 주한 일본대사가 부른 판소리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전 주한 일본대사가 부른 판소리
  •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3.06.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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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가지고 있는 증오와 원한을 일본의 외교관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문화인으로서 풀리지 않는 역사적 실타래를 풀어보고자 선택한 것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판소리”

요즘 TV에서 유일하게 방영되는 국악프로그램이 있다. 매주 토요일 방송되는 ‘국악한마당’이다. 이 방송 프로그램에 주한 일본 대사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85)가 출연해 판소리 단가 ‘이산 저산’을 불렀다. 1999년 1월 방영된 지 34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어려워하기만 하는 판소리를 한국 대사로 부임한 뒤 본인과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판소리를 배운 것이다. 

1999년 10월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린 제1회 전주산조페스티벌에도 참가해 판소리를 불렀다. 오구라 대사가 프랑스 대사로 떠난 뒤에도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들은 ‘한국전통음악 동호회’를 이어가며 꾸준하게 판소리와 거문고등을 배워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뉴센트리홀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하였다.  

오구라 전 주한 일본대사는 전라남도와 판소리, 홍어 삼합을 즐기는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꼽힌다.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가지고 있는 증오와 원한을 일본의 외교관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문화인으로서 풀리지 않는 역사적 실타래를 풀어보고자 선택한 것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판소리였다고 본다. 주한 대사 재임 중에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이끌었고, 다시금 한일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면서 상기하게 되는 ‘김대중·오부치 뉴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설계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그는 2011년에도 한중일 문화교류포럼 일본측 위원장으로 참석해 정순임 명창과 함께 거의 한 소절도 틀리지 않고 5분 동안 판소리를 불렀다고 한다.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은 외교 관계에 있는 타국에서 자국의 정치, 경제, 문화 분야를 대표하고 협력을 통해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다.

현재 한국과의 수교국은 192개국이며 상주대사관 116개국, 영사관 46개국, 대표부 5개국 등 167개국에 재외공관이 설치되어 있다. 수교국에는 외교부 소속으로 임명되어 파견되는 외무공무원 이외에 산업통상 자원, 문화홍보, 경찰 등 각종 전문분야의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 주재관을 파견하고 있다. 2020년 9월 기준으로 해외에 파견되는 주재관은 모두 346명인데 그 중 문화홍보는 42명에 그치고 있다.

문화홍보 분야가 매우 다양함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나 그 중 전통문화와 예술에 이해가 있는 주재관은 몇 명이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다. 특히, 행정고시나 기술고시에 해당하는 외교관 선발 국가고시인 외교관후보자 선발 시험과 선발 이후 교육에서 한국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 교육은 얼마나 습득케 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외교의 기본은 자국과 타국의 문화 이해가 가장 먼저이어야 한다. 자국의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학습이나 경험이 수반되지 않으면 타국과의 비교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일본대사는 외교관 은퇴 이후에도 일본 국제교류기금이사장,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위원회 사무총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아직도 일본 외교계의 원로로서 일본 국익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교역 규모나 문화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증가하였으며 그만큼 중요하게 외교정책에 있어서 눈 여겨봐야 할 시점이다. 오구라가즈오 대사와 같이 높은 외교적, 문화적 식견으로 타국의 문화를 존중해 주며 양국 공동의 번영과 자국의 실리를 도모하는 한국 외교관의 이름이 들리면 좋겠다.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발언으로 인해 시끄럽다. 호주에서는 대학 입시에 악기나 그림 등 예술적 재능을 선보이면 가산점이 붙어 좋은 대학을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외교관 선발시험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예술을 하게 되면 가산점을 준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