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국립현대미술관장 “‘어차피’말고 ‘합당한’ 적격자 찾아주길”
[Hot Issue] 국립현대미술관장 “‘어차피’말고 ‘합당한’ 적격자 찾아주길”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6.21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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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장 서류 공모 마감
국공립 미술관장, 큐레이터 지낸 인사 거론
‘미술 한류’ 전환기, 국립미술관장 역량 중요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어남택’, ‘어남류’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15년 방영된 「응답하라 1988」에서 여자 주인공 덕선이의 남편이 누구일지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면서 하면서 만든 말이었다. ‘어남택’은 ‘어차피 남편은 택이(박보검 배우 극 중 이름)’, ‘어남류’는 ‘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정환 역 배우)’이라는 말의 줄임말이었다. 각기 다른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결혼을 바라는 드라마 팬들이 만든 말이었다.

이 신조어들은 작가가 ‘어차피’ 남편은 정해뒀으니까, 기대를 품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남택’의 경우는 ‘어차피 (덕선이의) 남편은 택이니까, 정환이가 덕선이 남편이 될 것이라는 꿈도 꾸지 마라’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응답하라 1988」은 2016년 종영되며 ‘어남택’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어차피 ‘누가’ 될 것이니, 기대를 갖지 마라’라는 이 신조어가 다시금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지난 4월부터 공석이 된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Park Jung Hoon (사진=MMCA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Park Jung Hoon (사진=MMCA 제공)

윤범모 관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국립현대미술관장 선발을 위한 ‘2023년도 6월 개방형 직위 공개모집’ 원서 접수가 지난 16일 마감됐다. 서류전형 합격자를 대상으로 7~8월 중 면접을 진행하고, 최종 후보 중 1명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할 예정이다.

지난 임기를 1년 6개월 남긴 상황 속 윤 前관장의 사임으로 미술계와 문화예술계는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재임명 이후 임기 초부터 지난 정권의 ‘알박기 인사’ 논란에 시달리며, 지난 1월에는 직접적인 사퇴 촉구로 읽을 수 있는 문체부 특정 감사로 인해 곤욕을 치룬 이후였다. 이러한 상황 속, 사임을 표한 윤 前관장은 고별사를 통해 “역사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행보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참겠다”라는 뼈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윤 前관장 사임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누가 될 것이냐’는 미술계의 뜨거운 화두이자, 그렇지 않은 화두이기도 했다. 이미 현 정부의 사퇴 압박을 읽어볼 수 있는 문체부 특정감사가 벌어졌고, 뒤이은 윤 前관장의 사임은 ‘어차피’ 현 정부의 최측근이 새로운 관장 직을 꿰차지 않겠느냐는 무력감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현 정부의 최측근’이라는 말은,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김건희 여사의 최측근이라는 말로 공공연하게, 또 조용하게 번지고 있다.

현재 미술계에 거론되고 있는 인사로는 4인 정도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지낸 C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렉터를 지낸 L씨, 국공립미술관장 및 비엔날레 예술감독, 커미셔너로 활동한 K씨, 시립미술관장을 지내고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K씨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부분 미술계 다방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고, 누가되든 ‘때가 됐다’라고 수용하는 분위기다. 다만, 각 인사들의 능력들이 주로 거론되기보다, 김건희 여사와 인연이 있는 인사가 유력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어서 문화예술계의 우려가 전해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과천관, 서울관, 덕수궁관, 청주관 등 전국 4곳의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고, 오는 2026년에는 6번 째 대전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공 미술관이자, 수 백 억 원 규모의 예산을 쓰면서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예술기관이다. 더군다나 2021년 故이건희 컬렉션의 대량 수증, 최근 확장되고 있는 K-아트 시장 중심의 ‘미술 한류’ 경향 등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맞닥뜨리고 있는 과제는 중대한 사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한국미술 최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관장직의 세대교체를 원하는 열망도 드러나고 있다. 이 상황 속 국립미술관의 수장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장은 관례대로 정해지는 것이고, 미술계 분위기 또한 정해진 관장에 순응하는 분위기이기에 관장 공모일정은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잠잠한 수면 아래 침잠해있는 의구심과 불만들이 언제 다시 솟아오를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경 (사진=MMCA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경 (사진=MMCA제공)

주요 미술계 인사들의 중론은 ‘어떤 인물이 와도 괜찮으니, 관장직을 잘 수행하길 바란다’라는 뜻으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미술관 내부의 ‘갑질 행위’ 논란과 미술관 직원 파벌의 알력다툼 때문에 내부 조직관리가 쉽지 않을 것을 염두한 뜻으로 읽혀진다. 덧붙여 현실 정치와는 떨어져서 진정 한국 미술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사, 문화예술계 인사더라도 행정직은 잘 수행할 수 있는 인사가 오길 바란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현 시점이 한국 미술의 큰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키아프ㆍ프리즈 첫 공동 개최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아트페어를 준비하고 있다. 굵직한 유명 해외 갤러리들도 속속들이 한국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기획전시도 앞두고 있다. ‘어차피’라고 말하며 무력함에 잠겨있는 미술계지만, 동시에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미술관의 중심을 잡아줄 인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다.

부디, ‘어차피’로 완결되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이 아니길 바란다. ‘어차피’ 정해진 인사일지라도, 되도록 ‘합당하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 미술계가 마주하고 있는 사안들을 해결해달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