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 루프 《정찬민 개인전: 행동부피》, “일상 루틴이 가진 가치에 대해”
대안공간 루프 《정찬민 개인전: 행동부피》, “일상 루틴이 가진 가치에 대해”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6.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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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루프 작가 공모 선정 전시, 7월 16일까지
64명의 하루가 담긴 8개의 대형 풍선 작업 ‘행동 부피’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행동 중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쉽게 나눌 수 있을까. 현대사회 속 효율을 중심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과 사회의 시선을 고찰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지난 16일 시작해 7월 16일까지 개최되는 《정찬민 개인전: 행동부피》다. 이번 전시는 2023 대안공간 루프 작가 공모 선정을 통해 준비됐다.

▲정찬민, 행동부피 Mass Action, 에어 조형물_팬 모터, 폴리우레탄, 철제 지지대, 와이어 등, 300x90cmx8pcs
▲정찬민, 행동부피 Mass Action, 에어 조형물_팬 모터, 폴리우레탄, 철제 지지대, 와이어 등, 300x90cmx8pcs (사진=대안공간 루프 제공)

정찬민은 효율 중심의 맹목적인 성장만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가 인간에게 주는 피로감과 무기력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는 일상에서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일상 속 신체의 움직임을 예술 작업으로 재해석한다. 경제적 가치 창출에만 몰두하는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소외의 행동을 기록하고 이를 시각 예술로 변이한다. 차유나 작가가 제작 협업했고, 구동현 작가가 사운드를, 김동한 작가가 설치를 맡았다. 봉제는 오승헌 작가가 맡았다. 

▲정찬민, 행동부피를 위한 탑 Tower for ‘Mass Action’,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2min (사진=대안공간 루프 제공)

천으로 된 8개의 대형 풍선, 선풍기와 모터로 구성된 설치 구조물 <행동 부피>에는 64명의 하루가 담겨있다. 소속, 성별, 나이, 이념과 무관한 대중의 행동Mass Action을 수집한다. 산책, 기도, 커피 마시기, 영어 공부, 자전거 타기, 영양제 섭취, 다이어리 쓰기 등의 반복되는 일상의 행동을 지속한 시간을 계산한다. 성장과 생산성 위주로 위계 지어진 일상의 행동에서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신체의 움직임, 루틴한 패턴들이다.

각각의 시간을 부피로 재해석해 각기 다른 풍선의 크기로 표현한다. 오랜 시간을 들인 행동일수록, 풍선의 크기는 그만큼 커져간다. 경제 가치를 창출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소외된 행동을 발견하고 기록해 이를 시각화하는 과정으로, 행동들의 가치를 찾아본다.

<행동 부피를 위한 탑>은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실제로 받았던 택배 상자를 3D로 촬영해 만들어진 탑이다. 플랫폼 발달과 비대면 경제는 택배 시스템을 과중시켰고, 쌓여가는 택배 상자는 작가의 일상에 그 자체로 기록물이 되었다.

<들은 모양>은 작가가 이동하는 발걸음 소리를 수집해 데이터로 변환한 뒤 데이터의 형상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작업이다.

▲정찬민, 들은 모양 Shape of heard, 3D 프린팅 오브제, 30x15x15cmx15pcs
▲정찬민, 들은 모양 Shape of heard, 3D 프린팅 오브제, 30x15x15cmx15pcs (사진=대안공간 루프 제공)

한때 노동의 종말을 예견했던 기술 발전은, 지금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역설적 위기감을 만들고 있다. 자본의 축적과 개인의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정찬민은 맹목적인 목표 지향이나 목적 달성, 성과를 위한 삶보다 ‘행동함’, ‘ 행동하고 있음’ 자체로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했다고 말한다. 휩쓸려 끌려가듯 살았던 일상에서 소외되고 평범한 행동을 관찰하며 제 속도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정찬민은 “경제 성장이라는 단일한 목표 때문에 경시됐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개인마다 삶에 대한 성찰과 지속 가능한 삶을 도모하려는 구체적인 실천이 존재하고, 공생을 위한 대안적 삶을 함께 고민할 것을 이번 전시는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