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오케스트라가 고양되는 순간 ①, 이병욱과 인천시립교향악단
[이채훈의 클래식비평]오케스트라가 고양되는 순간 ①, 이병욱과 인천시립교향악단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3.06.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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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교향악축제-6월 4일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지난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병욱이 지휘하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한마음이 됐을 때 어떤 마술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1부는 아일랜드 출신의 거장 존 오코너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쓸 무렵 베토벤의 비통한 심정이 담겨 있는 곡이다. 1악장은 장중한 느낌에 어울리는 유장한 템포였다. 제2주제의 경과구를 목관이 장조로 연주하고 피아노가 단조로 화답할 때 존 오코너는 충분한 루바토를 구사하여 눈물겨운 느낌을 짙게 표현했다.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덧붙인 한 대목이 저절로 떠올랐다. 

“가을의 나뭇잎이 떨어지고 시들어 버리듯이, 나의 희망도 시들어버렸다. 아름다운 여름날에 내게 영감을 주곤 했던 그 희망은 사라졌다. 아아, 섭리여, 내게 마지막 하루의 순수한 기쁨을 허락해 주십시오. 절대로 안 된다고요? 아, 그것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2악장 라르고는 쓸쓸하고 비통한 감정이 진하게 흐르는 대목이었다. 3악장 론도에서 오케스트라는 섬세하고 예민하게 피아니스트와 대화하며 어우러졌다. 관객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존 오코너는 오케스트라에게 공을 돌리며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팬들의 환호에 베토벤 <비창> 소나타의 2악장으로 화답했다. 노 대가 존 오코너와 젊은 지휘자 이병욱의 훌륭한 호흡이 두드러진 연주였다.

2부는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 B♭장조였다. 소련이 나치 독일에 대해 승기를 잡은 1944년 작곡하여 이듬해 1월 모스크바에서 작곡자의 지휘로 초연됐다. ‘자유를 향한 작곡가의 내적 고백’으로 불리는 이 곡에 대해 프로코피예프는 말했다. “이 교향곡에서 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의 힘과 환호, 관대함, 순수한 영혼을 노래하려 했다. 이 곡의 주제는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나온 것을 그냥 표현한 것이다.” 소련 당국은 작곡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곡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작품으로 선전했다. 

1악장 안단테는 확실히 낙관적이었다. 프로코피에프다운 재기발랄함, 예기치 못한 선율과 리듬과 음색은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스트링의 스케일이 질주하는 2악장 알레그로 마르카토는 대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의 3악장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 작품이 전쟁과 파괴, 고뇌와 절규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라면 프로코피에프는 유머러스한 목관이 가세하면서 긍정과 위안을 노래했다. 3악장 아다지오를 거쳐 피날레 알레그로 조코소로 가면서 오케스트라는 충분히 가열되어 강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피날레는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의 모티브를 연상시키는 주제가 등장해서 흥미로웠고 현악 파트 수석들이 앞다투어 질주한 뒤 단호하게 마무리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인천시향 이병욱 지휘자와 단원들이 연주를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인천시향 이병욱 지휘자와 단원들이 연주를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지휘자 이병욱의 정확하고 꼼꼼한 바톤 테크닉에 대해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그의 지휘를 처음 본 게 2006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모차르트 탄생 250년 기념 연주회였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단원들을 성실하게 이끄는 그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는데, 변함없는 그의 지휘 스타일이 반가웠다. 그의 성실한 바톤 아래 단원들은 편안하게 연주에 몰입했고, 관객들은 연주에 동참하는 흥겨움을 맛보았다.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폼잡기가 아니라 자연스런 몸짓을 통해 청중들이 음악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 멋진 지휘였다. 

프로코피에프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병욱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파트별로 일일이 일으켜 세워서 청중들의 환호에 답하게 했다. 앵콜곡은 바그너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이었다. 신들린 지휘, 신들린 연주였다. 오케스트라의 음악가들은 연주를 훌륭히 해 냈다는 자부심, 성취감, 안도감에 고양된 모습이었고 이 충만함은 앵콜곡에서 꽃피었다. 이병욱 지휘 인천시립교향악단의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은 활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