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국립오페라, 〈일트로바토레〉, 음악과 드라마 흐름 단절 문제
[이채훈의 클래식비평]국립오페라, 〈일트로바토레〉, 음악과 드라마 흐름 단절 문제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3.06.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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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성량 미흡, 몰입 어렵고 감흥 부족
외국 스탭 대거 기용, 적절했는지 돌아봐야
2023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마지막 무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 국립오페라단의 <일트로바토레>에 대해 흔쾌히 찬사를 보내지 못해서 유감이다. 24일 공연은 무척 좋았다고 한다. “레오노라 역의 서선영 진짜 잘 했다, 루나 백작 이동환, 만리코 국윤종, 아주체나 김지선 모두 훌륭했다”고 전해 들었다.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쉽다. 

23일 공연을 보았는데, 루나 백작 강주원을 빼고는 출연자들의 음량이 부족해서 음악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난 대목은 4막 1장, 죽음을 앞둔 만리코가 감옥에서 레오노라에게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었다. “아, 죽기를 원하는 이에게 죽음은 언제나 늦게 오는구나! 레오노라, 안녕히!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나의 피로 갚으니… 날 잊지 말아요! 레오노라, 안녕히!” 이 대목은 멀리서 들리는 만리코의 노래가 오케스트라와 자연스레 어울렸고, 레오노라의 화답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만리코가 무대 전면에 등장하면 소리가 작아서 약음기를 끼고 노래하는 것 같았다. 만리코 역의 이범주는 대단한 미성이지만 음량이 루나 백작보다 작아서 불편한 캐스팅이었다. 그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역인 '음유시인'(일트로바토레) 아닌가! 3막에서 투쟁을 선언하는 만리코의 아리아, “저 장작더미의 끔찍한 불꽃이 내 모든 혈관을 태우며 불타오르네! 사악한 자들아 불을 꺼라, 아니면 내가 곧 너희의 피로써 그것을 끄리라!” 가사 내용은 격렬한데 음량이 받쳐주지 못해서 이렇다 할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오케스트라는 무난했다. 깨끗한 음색과 부드러운 질감이 돋보였다. 지휘자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를 세심히 신경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음정과 성악가의 음정이 엇나가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음악보다 더 큰 문제는 연출이었다. 세트를 바꿀 때마다 시간을 벌려고 막을 내렸다가 올리다 보니 음악과 드라마의 흐름이 깨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흐름이 끊기다보니 관객들이 집중하지 못하여 수군거리거나 들락거리는 일이 벌어졌다. 차라리 심플한 디자인의 무대를 활용하여 음악과 드라마의 흐름이 이어지도록 연출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드라마의 배경을 추상적인 ‘디스토피아’로 설정한 게 최선인지도 의문이다. <일트로바토레>의 내용을 훤히 아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관객들에게 초현실적인 상황 설정은 작품 이해를 어렵게 했을 것이다. 원작대로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은 지난 24일(토) 공연의 커튼콜 장면.
▲사진은 지난 24일(토) 공연의 커튼콜 장면. 사진=이은영.

‘디스토피아’로 설정하다 보니 세트와 의상의 색깔이 단조롭고 칙칙했다. 등장인물은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고, 자막에서 이를 정확히 표시해 주지 않아서 불편했다. 무술 시연을 삽입하는 정성을 보였지만 다소 엉성해 보였다. 4막 감옥 장면의 연출은 그로테스크했다. 감옥 쇠창살 안에 상의를 벗은 남성들을 세워 놓은 건 가학적으로 보였다. 루나 백작 역의 강주원은 아주체나가 이미 죽었고 음악이 다 끝났는데도 계속 그녀의 가슴을 칼로 찌르는 오버액션으로 실소를 자아냈다. 전반적으로 4막 감옥 장면은 너무 길어서 지루했다. 

지휘자 레오나르도 시니, 연출/무대/의상 잔카를로 델 모나코 등 외국 스탭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유럽의 경험을 전수받아서 우리 오페라 공연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국립’오페라단이 이렇게 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결과가 탁월했다면 굳이 문제삼을 일이 아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진지하게 공과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 세금’ 같은 얘기는 정말 꺼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