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가나 포럼스페이스, 김지희 개인전 《Eternal Golden》 “삶의 영원한 빛을 담아”
[현장스케치] 가나 포럼스페이스, 김지희 개인전 《Eternal Golden》 “삶의 영원한 빛을 담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6.28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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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포럼스페이스, 7월 14일까지
15년 작업 담은 전작 도록 발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내밀한 내면을 웃는 듯, 마는 듯한 소녀의 얼굴로 표현해 온 김지희 작가가 ‘욕망’이라는 주제로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인다. 2008년부터 안경을 쓰고 교정기를 착용한 인물 작업인 <Seale smile> 연작 시리즈를 선보이며, 컬렉터들에게 알려진 김지희 작가는 2020년부터 부엉이, 호랑이 등 기복적인 동물들을 화면 전면으로 등장시킨 <The Fancy Spirit> 시리즈로도 큰 인기를 얻어왔다.

▲김지희, The Fancy Spirit, Colored on Korean paper, Applied 24K Gold leaf, 163x130cm, 2023 (사진=PBG 제공)

가나 포럼스페이스에서 지난 23일에 시작해 7월 14일까지 관람객을 만나는 김 작가의 이번 전시 《Eternal Golden》는 김 작가의 지난 시리즈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 <Eternal Golden> 시리즈 연작을 공개하는 자리다. 한편 이번 전시는 프린트베이커리가 ‘PBG(프린트베이커리 갤러리)’라는 로고를 공개하며, 갤러리로서의 역할을 좀 더 강조하는 첫 번째 자리기도 하다.

<Eternal Golden> 시리즈는 미소와 교정기가 강조됐던 초기작에 비해 화려한 소비재로 점철된 욕망에 더 집중한 인물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상반기에 프랑스, 대만에서 개인전을 열고 호평을 받았던 김 작가의 올해 국내 첫 개인전이다. 김 작가는 프랑스, 대만 뿐 아니라 뉴욕, 파리, LA, 홍콩, 워싱턴, 쾰른, 마이애미, 런던, 도쿄, 오사카, 두바이 등 국제적으로 300여 회의 전시를 선보여 오고 있다.

전시 개막일에는 김 작가가 직접 참석해 새롭게 시작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언론간담회가 열렸다. 김 작가는 어떻게 ‘포장된 미소’에서 화려한 소비재로 빛나고 있는 ‘욕망’의 단계에 이를 수 있었을까. 간담회에 참석한 김 작가는 <Eternal Golden> 시리즈의 시작과 동양화를 전공해 작품을 이어오고 있는 자신의 작업과정을 상세하게 나눴다.

▲지난 23일 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김지희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빛”

김 작가는 지난 15년간 ‘욕망’과 ‘존재’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파고들어왔다. 각자의 개인이 가진 내면의 문제들은 ‘포장된 미소’를 통해 탐구했던 작가는 조금 더 시선을 확장해본다. 김 작가는 <Eternal Golden> 시리즈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욕망’에 더욱 깊이있게 다가간다. 작가는 소멸을 전제로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허무로 규정짓지 않고, 희망하고 욕망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모든 순간을 희망적으로 바라본다.

김 작가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빛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 빛이 삶 속에서 좌절해도 다시 새롭게 딛고 일어서는 순간에 더 크게 발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넘어지면 일어나고, 상처받아도 다시 일어나서 더 나은 내일을 향해서 끊임없이 욕망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빛나는 것이라고 느꼈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라로 설명했다.

왕관, 보석, 명품 등으로 인간이 욕망하는 것들을 드러내면서 그러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빛을 <Eternal Golden>은 표현하고 있다. <Eternal Golden> 시리즈에는 ‘Amor’라는 문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삶에 대한 사랑과 근원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부터 선보인 <The Fancy Spirit> 시리즈 중 부엉이를 소재로 한 신작도 많이 선보인다. 김 작가는 “사람들이 ‘부엉이’라는 도상을 두고, 승진이나 재화를 기원하고, 희망을 위탁하는 것을 인상 깊게 봤다”라며 “우리가 영험하게 느끼는 이미지들을 크게 표현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부엉이의 경우 의인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많이 끌린 소재였다”라고 말했다.

▲《Eternal Golden》 전시작 ⓒ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중 하나인 8마리의 부엉이가 등장하는 120호 작품은 우리가 희망을 의탁하는 기복 소품들을 모두 품고 있다. 이 작품 속에서는 8마리 부엉이와 함께 현실의 크기와는 전혀 다른 작은 팬더, 작은 인간들이 함께 등장한다. 판타지적인 거대한 화면 속 도상들을 통해 우리 안의 욕망과 희망을 반추해볼 수 있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작품으로는 ‘망토를 입고 있는 부엉이 작품’을 꼽았다. 이 작품은 흑백의 부엉이가 망토를 입고 있고, 금박으로 배경이 마무리된 작품이다. 부엉이가 인간처럼 망토를 걸치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고, 부엉이가 쓰고 있는 안경 속 명화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부엉이가 쓴 안경 왼쪽에는 <갈라테이아의 승리>가 표현됐고, 오른쪽에는 <비너스의 탄생>이 담겨 있다. 이는 사랑과 승리에 대한 작가의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작가는 “망토 입은 부엉이 작품 경우는 크기도 크고, 금박으로 마무리한 작업으로 오랜 시간이 들어간 작품이다”라며 “동양화를 전공했고, 동양화 작업방식으로 작품을 하고 있는데 해당 작품에서 수묵과 금박 작업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기법을 보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애정이 간다”라고 설명했다.

▲《Eternal Golden》 전시작 ⓒ서울문화투데이

화려하고 다양한 도상 속 담긴 의미

김 작가의 그림은 읽어볼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이 많다는 점에서 즐거움이 있다. 소재들은 아름다운 장식적 효과도 드러내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Eternal Golden> 시리즈에는 선박, 명화 등의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그러한 지점에 작품에 녹아들어가는 것 같다”라며 “지혜, 사랑, 기회 등의 상징으로 명화를 담아내고, 중의적으로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범선의 경우 ‘바다’라는 새로운 세계,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삶을 살아나가는 인간의 욕망과 희망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정선의 <여산초당도>를 차용해 선보이는 100호 작품도 주목할 작품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여산’이라는 이상의 공간을 그린 <여산초당도>를 차용하면서, 이상향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희망을 담고 있다. 전통 재료의 물성을 반영한 작업 방식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해외에서는 김 작가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은은한 색감에 대해 특별한 호평을 전한다. 김 작가의 작업은 장지에 여러번 채색을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다. 고단한 작업 과정이기에 주위에서는 좀 더 편한 길을 택하라고도 하지만, 김 작가는 이 작업 방식을 포기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작가는 “장지에 여러 번 색을 올려 완성하는 작품 특유의 빛깔이 있다”라며 “좀 더 포근하고, 진중한 느낌을 더하며 강렬한 색을 쓴다해도 너무 뾰족한 빛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The Fancy Spirit,  Colored on Korean paper, 72x90cm, 2023
▲김지희, The Fancy Spirit, Colored on Korean paper, 72x90cm, 2023 (사진=PBG 제공)

이외에도 김 작가 작품 속에는 물결의 도상, 열매, 꽃의 도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물결을 동양에서 길함을 상징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열매와 꽃은 열리고 시들고, 피고 지며 생의 순환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한 전시공간도 마련돼 있다. 19세기 유럽 기차여행에서 사용됐던 트렁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기 시작한 <트렁크 시리즈>를 선보이는 공간이다. 분리된 공간처럼 조성된 <트렁크 시리즈>의 전시 공간은 좀 더 아늑한 느낌을 띠고 있다. 작가는 이 <트렁크 시리즈>에 대해 그림이 좀 더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트렁크 시리즈>는 아크릴 작업으로 좀 더 빠르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때문에 작가는 <트렁크 시리즈> 작업을 할 때 보다 홀가분하고 가볍게 임한다. 또한, 장신구에 사용될 수 있는 보석 오브제 등을 붙이면서, 작품 속에 공예적 요소도 가미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지희, Eternal Golden, Colored on Korean paper, 90x72cm, 2023 (사진=PBG 제공)

커다란 안경을 낀 소녀가 어떤 세상을 보고 있는지, 그 세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작품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은연중에 전달되는 메시지들이 있다. 마냥 밝은 느낌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직하게 앞으로 향하겠다는 힘들이 곳곳에 숨겨진 듯하다.

작가는 이번 《Eternal Golden》 전시를 개최하면서, 지난 15년 간의 작업을 모두 담은 전작도록을 발간한다. 작가는 이번 도록 작업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확장성을 가지고 작업에 임해왔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가장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욕망’과 ‘우리 생의 빛’을 아주 가깝게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그의 작업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고, 어떻게 확장돼 갈 수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