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최정 교수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展, 복식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현장스케치] 최정 교수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展, 복식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6.29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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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DF 갤러리 제 2 전시장, 6.28~7.3
원광대 최정 교수 개인전, 고려복식사 연구 담아
재현 복식 사용 문양, 고려 불화ㆍ유물 토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고려복식사가 혼란의 고려시대 속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대중 곁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푸른 구름의 나라-고려 복식 고증 일러스트 전》 전시를 선보이면서, 대중들이 좀 더 쉽게 고려 복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던 원광대학교(총장 박성태) 패션디자인산업학과최정 교수가 또 한 번의 전시를 준비해 선보인다.

KCDF 갤러리 제 2 전시장에서 7월 3일까지 개최되는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고려 고증복식 & 고증 일러스트》 전시다. 이번 전시는 고려복식 일러스트 뿐 만 아니라, 실제 재현된 고려복식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일러스트로만 볼 수 있었던 복식이 실제 사람이 입을 수 있는 크기로 재현돼 전시장에 선보여지는 것은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전한다. 역사적으로는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경험해볼 수 없었던 복식을 직접 보고 ‘고려복식’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 전시작, 상류층 남성의 몽골풍 평상예복 <준경>, 상류층 여성의 고려양 평상예복 <은수> 재현 의복 ⓒ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의 특별함은 전시작을 소개하는 전달 방식에도 있다. 최정 교수는 지난해 일러스트 전시 이후, 복식에 대한 재현 뿐 만아니라 고려복식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한 여러 방법을 생각했다. 최 교수는 이번 전시에서 고려복식사를 더욱 흥미롭게 소개할 수 있는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스토리도 소개한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고려 복식은 모두 스토리 속 인물들의 옷이다.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는 원 간섭기에 공녀 차출을 피하기 위해 정략혼인을 한 어린 부부 ‘은수’와 ‘준경’이라는 창작 인물을 통해, 고려 시대의 복식을 더욱 흥미롭게 풀어낸다. 최 교수는 고려의 여러 복식을 소개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 및 당시 시대상과 생활상을 토대로 스토리를 창작해냈다. 이번 전시의 바탕이 되는 창작 스토리 또한, 고려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적확하게 담고 표현해내는 콘텐츠다.

전시 개막일인 지난 28일에는 한복 및 전통 공예계 인사들이 모여 개막을 축하했다.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에서 여러 관계자가 참석했고, 황순자 한국매듭협회장, 김명자 민속학자 등이 함께 개막을 축하했다. 간단한 개막행사 이후에는 최 교수가 직접 전시 작품들을 설명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일러스트 작품을 실제 의상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옷감 선정, 금박 자수 입히기 등 겪은 여러 우여곡절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막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쉽지 않은 길에 도전한 최 교수에게 격려와 응원의 말을 전했다.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 개막행사에 참석한 참석자들 ⓒ서울문화투데이

혼란의 시대 속, 다음 세대인 젊은이들의 사랑

고려는 중세의 문화강국으로 찬란한 불교문화를 향유한 나라다. 그러나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의 계속된 침입으로 파란을 겪은 후, 100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원의 부마국으로서 복합적인 이유로 교류를 갖는다. 복식사에 있어서, 이 기간은 몽골풍과 고려양이라는 독특한 복식 유행을 탄생시킨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복식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다. 대게 고려불화 공양자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현재 한복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에서 고려 복식의 비중은 매우 적다. 최 교수는 이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현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려의 복식자료를 한 줄기로 이어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 된 후 원의 공녀 차출 요구가 상류층으로까지 번지던 13세기 말을 배경으로, 최 교수는 고려 복식을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고려의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자주적 입장의 명문가인 여 주인공 ‘은수’의 집안과 친원파로 부를 쌓은 남 주인공 ‘준경’의 집안이 이 이야기의 핵심 인물들이다.

자주적 입장의 ‘은수’ 아버지와 친원파인 ‘준경’의 아버지는 서로 다른 정치적 선택을 했지만, 절친이기도 한 관계다. 13세기 말 자신의 딸을 원의 공녀로 바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은수’의 아버지는 친구인 ‘준경’의 아버지와 손을 잡고 자식들의 정략혼을 약속한다.

은수와 준경은 10대의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둘은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각자의 고민으로 쉽게 가까워지지 못한다. 은수는 자신 이외에 다른 공녀들을 보며 미안함을 갖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감정을 느낀다. 준경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이 모두 아버지의 친원 행각 때문이란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쉽게 독립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둘은 친구들이 주선한 5월 연등회의 밀회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최 교수가 창작한 이 이야기는 원 간섭기 시절 고려의 사회, 문화, 정치적 모습을 다 아우르고 있다. 큰 줄거리는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지만, 그를 둘러싼 상황을 통해 현재의 우리는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읽어볼 수 있다.

▲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 전시작, (좌측부터) 상류층 여성의 고려양 평상예복 <은수>, 상류층 남성의 몽골풍 평상예복 <준경> 일러스트 ⓒ서울문화투데이

또한, 혼란의 시대 속 자신이 해야 할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선보이면서 당시를 살아가던 고려인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은수와 준경 이외에 은수의 친구인 상인의 딸 ‘연화’, 준경의 친구이며 연화를 좋아하는 학자 ‘문환’도 주요 인물이다.

문환은 연화를 좋아하지만, 학자 신분이기에 부를 얻지 못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동시에 언제 갑자기 연화가 공녀로 차출될 수도 있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연화는 상인의 딸로 활발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은수와는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이는 인물로 등장한다.

최 교수는 해당 스토리를 더욱 구체화 시켜 콘텐츠로 개발할 예정이다. 원과 고려라는 두 나라의 갈등이 있던 시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도전일 것 같다. 하지만 최 교수는 스토리에 있어서 갈등은 더욱 극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작품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최 교수는 “고려와 원의 갈등 속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수많은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라며 “충렬왕과 원성공주에 대한 이야기도 담을 수 있고, 또한 그 시대의 다양한 인물상을 보여줄 수도 있는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자주적 정치관을 가진 인물과 친원파가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그 시대의 인물들이 겪은 상화과 함께 역사적 사건들을 짚어보고 싶었다”라고 작품 창작 배경을 언급했다.

▲개막행사 이후 전시 설명을 진행하고 있는 최정 교수 ⓒ서울문화투데이

실제로 재현된 고려 복식, 고려 불화ㆍ불복장 등에서 자료 얻어

고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스토리 콘텐츠들은 이미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고려복식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담고 있는 스토리 콘텐츠는 여태껏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종류의 콘텐츠다. 학자로서 연구에 집중하고, 후학 양성 등에 힘을 쓸 것 같은 ‘교수’가 이렇게까지 창작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최 교수는 이런 흥미로운 콘텐츠를 통해 보다 많은 대중과 연구자들이 고려복식사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야기 속 연등회를 중심으로 모인 6명의 인물들은 각각 반비와 위금 치마, 고급 고려 직물로 지은 몽골풍 남성복식, 불화 속에서 남성들 틈에 서 있는 여성이 착용한 노란 단령, 해인사 불복장 유물을 응용한 도포, 젖힌 깃을 부착한 대수포, 불화 속의 여성 불교도가 착용한 푸른 대금포 등을 착용한다. 이것들은 모두 일러스트로 제작돼 전시된다.

실물 재현복식은 은수, 준경, 연화, 문환, 어머니(상류층 여성 복식) 등이다. 주인공인 ‘은수’와 ‘준경’의 복식은 마네킹이 착용하고, 다른 인물들의 복식들은 넓게 펼친 모양으로 전시된다.

이야기 속에서 학자인 문환의 복식은 모시 원단으로 제작됐다. 해인사 불복장에서 발견된 파편 상태의 고려 포 유물을 토대로 재현됐다. 이 옷의 특징은 안감 뒷자락이 갈라져 있고, 그 위를 겉감이 덮은 도포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실제 의복의 옷감은 재현된 옷감보다 더 얇았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온전한 재현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 ‘장삼 형태의 귀부인 예복’의 금박 장식 ⓒ서울문화투데이

은수의 어머니 복식으로 등장하는 ‘장삼 형태의 귀부인 예복’도 주목할 재현이다. 이 예복은 여말 선초 하연부인(河演婦人)의 초상에 묘사된 젖힌 깃의 장삼(長衫) 예복 형태를 기본으로 고증한 것이다. 이 복식의 경우 젖힌 깃과 허리끈의 금박 자수에 집중하면 좋다. 젖힌 깃에는 원앙 문양의 금박을, 허리끈에는 석류 문양의 금박을 사용했다. 이 자수들은 최 교수가 고려불화와 문수사 고려 불복장 직물 유물의 원앙 문양과 석류 문양을 토대로 재현한 것들이다.

이외에도 은수 복식에서 고려양 반비에 들어간 문양은 고려 안동 태사묘(太師廟)에서 발견된 능직(綾織)의 자수를, 준경 어머니 복식으로 등장하는 ‘설법을 듣는 귀부인의 예복’에 재현된 문양도 이탈리아 국립동양예술박물관에서 발견된 고려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의 연화 문양 응용했다. 모든 문양들이 각각의 사료를 토대로 재현됐다는 점이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이번 전시는 학술 연구를 고증 일러스트와 재현복식으로 시각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복식문화 콘텐츠로 담아낸 전시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다. 최 교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고려복식과 관련된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거쳐 또 다른 콘텐츠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라며 “관람객들이 다양한 형태의 복식 콘텐츠를 부담 없이 즐겁게 감상해 주면 연구자로서 기쁘고 보람찬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 전시작, (좌측부터) 장삼 형태의 귀부인 예복 <은수의 어머니>, 설법을 듣는 귀부인의 예복 <준경의 어머니> 일러스트 ⓒ서울문화투데이

지난해 최 교수가 선보인 《푸른 구름의 나라-고려 복식 고증 일러스트 전》은 고려복식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의 벽을 한 번 허물어뜨렸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지난 해 전시에서 더 나아가 또 한 번의 도전과도 같았다. 올해 《부활하는 고려, 달빛머문 연꽃밀회》 전시는 고려 복식을 실물로 만나볼 수 있고, 또 그것이 재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 한 번의 경계를 넘어섰다.

오래된 유물로만 존재하던 직물 포가 당시의 형태를 띠고 우리 앞에 새롭게 재현되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다. 또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생활 한복처럼 입고 있는 ‘철릭’이 어떻게 우리나라로 스며들고, 자리 잡게 됐는지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하다. 최 교수는 이번 전시 이후의 또 다른 콘텐츠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매번 확장된 시선으로 새롭게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그의 도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