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 온스테이지-파트Ⅱ》展, ‘이미지’를 넘어서는 시선
[현장리뷰]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 온스테이지-파트Ⅱ》展, ‘이미지’를 넘어서는 시선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7.0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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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9.17까지
신디 셔먼 50여 년간 작업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매번 새로운 캐릭터로 카메라 앞에 서서 작품을 완성하는 신디 셔먼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Espace Louis Vuitton Seoul)에서 지난 달 30일 시작해 9월 17일까지 개최하는 《신디 셔먼 : 온스테이지-파트Ⅱ》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 전경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 전경 (사진=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제공)

전시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의 컬렉션 소장품을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도쿄, 뮌헨, 베네치아, 베이징, 오사카에 소개하는 ‘미술관 벽 너머(Hors-les-mur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베이징에서 먼저 개최됐고, 한국에서 두 번째로 준비된 전시다. 공간의 이유로 작품 수는 베이징 전시보다 적다. 10점의 작품 중 3점의 작품은 베이징 전시와 같고, 7점의 작품은 다르다.

미국의 상징적인 작가로 꼽히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1954년 미국 뉴저지주 글렌 리지(Glen Ridge) 출생으로,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신디 셔먼은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며 작업해 왔다. 인위적인 분장으로 이미지의 허구성과 가공된 이미지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선보인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는 셔먼의 초기 작품인 <Untitled Film Stills(무제 필름 스틸)>부터 가장 최근의 작업까지 아우르는 10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시리즈 별 주요 작품을 통해, 50여 년간 이어진 셔먼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Untitled Film Stills(무제 필름 스틸)>(1977-1980) 시리즈, <History Portraits(역사 인물화)>(1989-1990) 시리즈, <Clown(광대)>(2003-2004) 시리즈, <Men(남성)>(2019-2020) 시리즈 등을 선보인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작 중 <History Portraits(역사 인물화)> 시리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모든 역할을 도맡아, 한 장면을 연출

셔먼은 배우, 의상 디자이너, 모델, 기술자, 조명 엔지니어, 특수효과 코디네이터, 소품 담당자, 사진 편집자의 역할을 도맡아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것은 작가가 활동 초기에 세운 규칙으로, 셔먼의 다재다능한 아티스트 면모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셔먼은 1972년, 미국 뉴욕 버팔로 주립대학교(Buffalo State College)에서 유명 아티스트 셰리 레빈(Sherrie Levine),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루이스 롤러 (Louise Lawler)와 함께 사진을 수학했으며, 1977년부터 1981년 사이 그녀의 첫 연작 <무제 필름 스틸(Untitled Film Stills)>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첫 연작부터 미술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의 미술 사조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녀의 작품은 개성 넘치는 표현으로 주목 받았고, 페미니즘 비평 쪽에서도 스테레오 타입의 여성 캐릭터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그의 시선에 주목했다. 하지만 당시 셔먼은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여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고 짚었다.

셔먼의 첫 연작 <Untitled Film Stills(무제 필름 스틸)>은 195, 60년대 헐리우드 흑백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자신을 연출해 담아낸 시리즈다. 사진 속 공간을 완벽한 무대처럼 세팅하고, 자신은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분장한다. 이 시리즈는 당시 스테레오 타입의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표현해낸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 전경 (사진=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제공)

사진 속 모든 공간을 연출하고, 자신 역시 다른 인물로 분장해 렌즈 앞에 서는 셔먼의 작업 방식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연관이 있다. 셔먼은 형제가 많은 집안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딸로 태어났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부터 셔먼은 분장 놀이에 빠졌다. 그런데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리 셔먼은 괴물이나 할머니의 분장을 즐겨했다. 자신과 다른 캐릭터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자유로웠다. 10대 시절부터는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이는 그의 작품의 토대가 됐다. 셔먼은 항상 카메라 앞에서 의도적으로 관람객에게 시선을 마주하는 자세를 취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정체성 탐구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그 탐구의 시선은 타인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1980년대 초, 셔먼은 아트포럼(Artforum) 측에서 의뢰를 받아 가로형 사진 <Centerfolds(센터폴드)>(1981) 시리즈를 제작한다. 하지만 해당 작품에 대해 아트포럼은 여성이 수평적 형태로, 너무 연약한 존재로 표현된다며 최종 수령을 거절한다. 이후 셔먼은 여성을 수직적인 구도 다시 연출해 스스로가 지닌 면모 중 가장 연약하고 완전치 못한 캐릭터를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기이한 스타일로 작품에 녹여내 선보이기 시작한다.

셔먼은 이 당시 인간의 신체를 기이하거나, 굴곡 되고, 온전치 않은 형태로 자주 표현했는데 이런 그녀의 시선은 하이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여러 하이패션 브랜드가 셔먼에게 화보를 의뢰한다. 그런데 셔먼은 하이패션 의상을 아름답게 표현하기보다, 보통의 패션화보의 룰을 거부하고 희화화하는 형태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Fashion(패션)>시리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 폴 고티에 의상을 활용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뒤틀린 신체 구조를 볼 수 있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작 중 <History Portraits(역사 인물화)> 시리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우리가 추구하는 이미지의 ‘허구성’에 대해

셔먼은 항상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서, 완벽한 연출을 구현해낸다. 또한 한 장면을 연출할 때 작품 속 캐릭터가 지닌 감정을 배우처럼 완벽하게 표현해 드러낸다. 그런데, 셔먼의 작품 속에서 또 하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인위성’이다.

셔먼은 분장을 하거나 연출을 할 때 의도적으로 작품이 연출된 상황임을 드러내는 지점을 남겨둔다. 예를 들어 거장의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History Portraits(역사 인물화)>시리즈에선 명화 속 임신한 여성의 분장을 드러나는 인체모형을 덧입은 채로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한다.

같은 시리즈에서 성직자나 수도사의 초상을 표현한 작품이 있다. 인물의 권위를 부각하고자 검은 배경을 사용하고, 이상적인 인물 외양을 그려낸 명화를 흔드는 작품들이다. 셔먼은 자신이 성직자나 수도자로 분장하고 사진을 찍었다. 조금은 인위적인 분장은 기존 명화에서 압도감을 표현하려한 검은 배경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나 이질적인 느낌으로 전달한다. 셔먼의 이 같은 시도는 이상적인 권위, 이미지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시선을 잡아끄는 이미지를 창작하면서도, 끊임없이 이미지의 허구성과 현실과의 괴리를 추구하던 셔먼의 작품 세계는 최근 인스타그램 필터를 활용한 ‘셀피(selfie)’를 통해 스스로의 초상을 태피스트리 형식으로 만드는 시도로 전개된다. 작품 속에서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셔먼은 <Men(남성)>(2019-2020) 시리즈를 통해 남성을 렌즈 앞으로 데려왔다. 작가는 남장 변복과 사회적 정체성 탐구, 자아 재정립 등을 통해 여성상과 남성상의 전형에 관한 의문을 던지며, 영화 이외에도 미술사와 판타지 소설, 트랜스젠더 문화, 그리고 자신만의 상상을 기반으로 사회적으로 규정된 수많은 여성성을 해체해나간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작 중 <Clown(광대)> 시리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Men(남성)>(2019-2020) 시리즈 작품에서는 배경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치 하나의 이미지를 데칼코마니처럼 접붙여 만든 배경은 가공된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셔먼은 이미지의 가공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며, 양쪽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고정된 배경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 속 정해진 젠더의 규범 역시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음을 은유하고 있다. 셀피 형식의 최근 시리즈로 <Clown(광대)>(2003-2004)도 공개된다. 초상화 형식을 유지하면서 과장된 분장은 인물의 익명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끊임없이 개인 및 집단 기억에 질문을 던지며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셔먼이 구현하는 방대한 인간 희극에는 무엇 하나 고정적인 것이 없다. 대중매체를 통해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 이미지들은 허구의 것이고, 언제든지 변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변화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전시는 현대미술과 예술가, 그리고 동시대 미술 작가에게 영감을 준 20세기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지향을 드러내면서, 50여 년간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셔먼의 길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1970년대 미술씬에 등장하면서부터 관람객을 매료시킨 셔먼의 발상이 지금 시대에선 또 어떤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줄지 궁금함을 불러일으킨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장 전경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신디 셔먼 : 온스테이지-파트Ⅱ》는 무료로 운영되며,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층에 자리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Espace Louis Vuitton Seoul)에서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오후 12시부터 19시까지다. 사전예약 (www.ticketing-seoul-espace-louisvuitton.co) 제도도 함께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