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1만 반발 불구, ‘안비취 유파’로 채워진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Hot Issue]1만 반발 불구, ‘안비취 유파’로 채워진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7.04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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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이춘희 이어 김혜란ㆍ이호연 보유자 복수지정, 모두 안비취 유파
문화재청 “1975년 묵계월ㆍ이은주ㆍ안비취 보유자 인정, 유파 인정과 달라”
경기민요 전승자 “특정 유파 쏠림 현상 불가피, 전승계보 단절 위기”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문화재청이 지난 5월 12일부터 한 달간의 예고 기간을 끝내고, 29일 김혜란ㆍ이호연 명창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관보를 통해 “두 사람은 경기민요 종목의 전승 능력, 전승 환경, 전수 활동 기여도 등이 탁월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한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된 김혜란 명창은 1980년 이수자를 거쳐 1991년 전승교육사가 됐다. 이호연 명창은 1986년 이수자를 거쳐 1996년 전승교육사로 활동해 왔다.

▲문화재청이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한 김혜란(왼쪽), 이호연(오른쪽) 명창(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이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한 김혜란(왼쪽), 이호연(오른쪽) 명창(사진=문화재청 제공)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에서 주로 불리던 전문 예능인의 노래로, 이 가운데 ‘경기12잡가’는 유산가ㆍ적벽가ㆍ제비가ㆍ소춘향가ㆍ선유가ㆍ집장가ㆍ형장가ㆍ평양가ㆍ십장가ㆍ출인가ㆍ방물가ㆍ달거리 등 12곡이다. 

앞서 문화재 관리국은 1975년 경기민요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묵계월ㆍ이은주ㆍ안비취를 초대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했다. 이후 묵계월 유파는 적벽가ㆍ선유가ㆍ출인가ㆍ방물가를, 이은주 유파는 집장가ㆍ평양가ㆍ형장가ㆍ달거리를, 안비취 유파는 유산가ㆍ제비가ㆍ소춘향가ㆍ십장가를 전승교육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2021~2023년 인정조사에서 최종 후보에 오른 4명 가운데 안비취 유파의 김혜란ㆍ이호연 명창만 보유자로 인정을 받으면서 경기민요 보유자는 안비취 유파로 채워지게 됐다. 지난해 12월 22일 서류 및 동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한 1단계 보유자 인정조사 결과, 최종 후보로 안비취 유파의 김혜란과 이호연, 묵계월 유파의 김영임, 이은주 유파의 김장순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국악계 관계자는 “3단계 심사에 오른 대상자 4인 모두 경기민요 전승교육사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묵계월 혹은 이은주 계에서 보유자가 나오리라는 예상들이 많았지만 예고 결과 두 계파는 제외됐다”라고 전했다. 

10여 년 전에도 경기민요 유파 논란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2009년 한국국악학회에 연구 용역을 맡겼고, 그 결과물은 제4대 무형문화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운 위원장이 작성한 ‘중요무형문화재 개인종목 음악분야 전승활성화 학술연구용역 결과보고서’이다. 경기민요 전승자들은 용역보고서가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미리 전제하고 작성된 잘못된 보고서라는 점을 지적했다. 

무형문화재위원회는 의결 정족수 8인(김영운, 성기숙, 성애순, 원명스님(김종민), 전경욱, 정성숙, 조남규, 최헌)이 참석한 가운데 7명 가결, 1명 기권으로 김혜란, 이호연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지정을 의결했다. 아울러, 전승자 충원 건에 대해서는 8명의 문화재위원 전원 찬성했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8년 11월 28일 발행한 도서 경기민요(저자 국립문화재연구소|민속원)에는 “지정 당시 3명의 경기명창이 12잡가를 4곡씩 나누어 전승종목으로 보유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경기민요는 1975년 7월 12일 지정 당시 유파별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3명의 보유자가 복수로 인정돼 지금까지 전승돼 왔다”는 문화재청의 입장과 대치되는 내용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아카이브 출판·방송의 경우 채록과 증언을 토대로 기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사실 관계와 다르게 기록된 부분이 있으며, 여러 관점과 견해가 담겼다”라며 “해당 내용이 유파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표현은 아니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만큼 추후 수정ㆍ보완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22일 오전,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경기민요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서울문화투데이
▲지난달 22일 오전,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경기민요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무형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서울문화투데이

한 국악계 원로는 “문화재청이 근거로 삼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개인종목(음악분야) 전승활성화 학술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오류가 많다. 전제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당연히 그릇된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집필자의 이론적 지식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현장을 충분히 스크린해서 나온 결과가 반영되어야만 한다. 연구용역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사 과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은 콩쿠르가 아니다. 이게 점수로 줄 세우기 할 일인가. 이번 일은 보유자 인정을 두고 벌어진 유파 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묵계월, 이은주라는 별을 바라보며 전승활동을 해온 전승자들은 문화재청의 결정으로 50년 간의 세월을 부정당하며 상실감과 절망 속에 빠지게 됐다”라고 전했다. 

지난 5월 12일부터 6월 11일까지의 인정 예고 기간 서신(탄원서ㆍ서명부) 등 12건, 국민신문고 7건, 누리집 의견 32건, 전화 1건 등 총 52건의 의견이 접수된 바 있다. 묵계월ㆍ이은주 유파 후보 전승 교육자 등 1만여 명은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반발했지만, 최종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안비취 유파 제자들만 보유자로 선정되는 것은 편파적이라는 의견에 대해 “인정조사 결과 및 위원회 검토를 거쳐 결정된 사항임”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경기민요는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유파로 인정됐고 12곡을 4곡씩 나누어 전승한다는 점을 인정해달라는 주장에는 “지난 1975년 3명의 보유자를 인정한 것은 유파와는 무관하다”라고 말하며 “경기민요는 12곡 전승이며, 인정조사도 12곡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라고 밝혔다. 보유자로 인정되지 못 한 묵계월, 이은주 유파의 소리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 전승교육사가 활동하고 있어 이수자를 양성할 수 있으며, 이수자들을 대상으로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수자도 보유자 인정조사 공모가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전승교육사들은 “계보와 유파는 전통 예술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근간이다. 경기민요 또한 그 계승을 위해 곡목별, 유파별로 전승교육사가 지정됐고 엄연히 다른 소리로 전승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대가 끊길 위기에 놓였다. 유파가 부정당하고 가문이 없어진 유파에 누가 후계자로 관심을 가지겠는가”라고 호소했다.

경기민요 보유자 최종 후보에 올랐던 김장순 명창은 “문화재청의 역할은 전통문화의 발굴과 유지를 돕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 지정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원래 있던 문화재 전형을 부정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절차를 문화재청이 학습한다면, 다른 종목에서도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최종 결과를 발표한 지난 29일에는 경기민요 전수자들과 함께 ‘국가무형문화재 기예능협회 자문 및 연구기관’을 만들었다. 김장순 명창은 “해당 기관을 통해 문화재청의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사안 등을 논의하며 지속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집회에 참여한 경기민요 전승자 김장순 명창이 문화재청의 보유자 인정예고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전통예술에 정통한 한 문화예술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회의와 심사는 투명해야 한다. 지금은 거의 모든 과정이 비공개로 이뤄지고, 별도로 신청을 하더라도 일부만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종신제로 지원되는 보유자는 국민세금으로 충당되기에 투명하고 공개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형문화재위원회 운영 지침 제12조에는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관계 공무원, 전문가 또는 이해당사자를 회의에 출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번 사안처럼 논란이 많은 경우 이해당사자 입회 하에 의견을 청취해보고 숙고하여 결정되었어야 하는데, 최소한의 수용 과정조차 생략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지난 2019년 무용 3종목 보유자가 유파별로 인정됐던 것과 달리 경기민요는 50년 간 이어진 유파가 부정당하고 있다. 있는 유파를 없다고 우기며 전통의 예술성과 역사성을 함께 지닌 보유자를 콩쿠르 참가자처럼 다루는 방식은 명인들의 가치를 되려 실추시키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라며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 이 세 가지 요소가 담보되지 않으면 권위는 인정받기 어렵다. 편파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무형문화재위원회에서 먼저 나서서 빗장을 풀고 심사 과정을 언제든 자신 있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우리 법은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ㆍ유지되고 구현되어야 하는 고유한 기법, 형식 및 지식을 전형대로 체득ㆍ실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K-팝과 클래식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동안, 전통음악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조상들의 대중가요였던 민요는 우리의 문화 유전자와 다양성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특성을 고려한 전승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형문화재에 있어 유파는, 오랜 세월을 지내며 이뤄온 성취에 대한 인정이다. 문화재청의 이번 결정은 그래서 더 많은 우려를 낳는다. 전승자들이 “그간 스승의 소리를 따라 3개 유파별로 맞춰오던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전승교육사가 있는 묵계월, 이은주 유파보다 보유자가 있는 안비취 유파로 쏠리게 될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문화재청이 단순한 ‘지원사업’이 아닌, 계파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라는 경기민요 전승자들의 울분어린 호소를 가볍게 여긴다면, 경기민요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은 선택적으로 보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