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광장문화]무형문화재 개인 예능 종목, 유파(流派) 인정에 대한 논쟁
[김승국의 광장문화]무형문화재 개인 예능 종목, 유파(流派) 인정에 대한 논쟁
  • 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23.07.0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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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중 예능 종목은 문화적 민족정체성이 깃든 정신적인 창조
▲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회관 이사장
▲김승국 문화칼럼니스트/전 노원문화회관 이사장

무형문화재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무형의 문화적 유산 중 전통적 공연·예술, 공예, 미술 등에 관한 전통기술, 한의약, 농경·어로(漁撈) 등에 관한 전통지식, 구전 전통 및 표현, 의식주 등 전통적 생활관습, 민간신앙 등 사회적 의식(儀式), 전통적 놀이·축제 및 기예·무예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무형문화재 중 예능 종목이란 문화적 민족정체성이 깃든 대대로 이어온 정신적인 창조로서, 보존·전승해야 할 음악과 노래와 춤, 연극, 무용 등 전통적 공연·예술을 지칭한다.

1960년대 들어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 전승자들이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또 병환이나 생활고에 내몰리며 전승·보존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이들을 구제하고, 또 제도권 안에서 안정적으로 보존·전승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발현된 것이 무형문화재 법의 제정이고 무형문화재 제도였다.

국가가 적절히 개입해 전승 위기로 내몰리던 무형유산이 안정적으로 전승되고, 나아가 학교 교육과 전수 체계가 촘촘히 기능하며 많은 전수자가 육성되면서 무형문화재 전승의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듯했으나, 최근 무형문화재 개인종목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개인종목의 유파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특정 학회의 검증되지 않은 연구 결과가 보유자 인정의 기준이 된 것이 논쟁의 발단

특히 문화재청이 2009년 경기민요, 서도소리, 가야금병창, 가곡, 가사 등 예능 개인종목 10개 분야의 유파 인정 여부 및 단체종목으로의 전환 여부에 대한 조사 용역을 (사)한국국악학회에 의뢰해, 그 결과 판소리와 산조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들이 ‘유파 없음’으로 결론이 나면서, 그리고 문화재청이 그 결과를 이후 진행된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전승 현장과 문화재청 간 심각한 갈등 관계를 빚고 있다.
 
가장 갈등이 심한 종목은 경기민요이다. 당시 경기민요의 유파 여부를 조사한 연구자는 현재 국립국악원 원장이자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위원장 김영운 씨로, 당시 김영운 씨는 유파 성을 인정받으려면 1) 사승(사승) 계보가 달라야 하며, 2) 악곡 구성이 달라야 하며, 3) 리듬·선율·주법 등 음악적인 요소에 명백한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경기민요의 경우 그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유파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 문화재청에 연구 결과를 제출하였다.

그럼, 여기서 잠깐 경기민요의 전승 현황을 살펴보자. 경기민요는 1975년 7월 1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지정되어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세 사람을 예능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1997년 1월 안비취 씨가 사망하자 같은 해 11월 문화재청(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안비취 씨의 제자 중 이춘희 씨를 안비취 씨의 후계자로 조사해, 같은 해 11월 예능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이후 2014년 묵계월 씨가, 그리고 2020년 이은주 씨가 사망하였으나, 각각의 전승 체계 안에서 50년 가까이 활발하게 전승 활동을 벌여왔다. 경기민요 보유자 이춘희 씨는 거의 매년 “설립자들”이라는 공연을 통해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세 명창의 소리를 추모하고, 세 가문의 소리에 대한 가치를 후학들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을 지속해서 펼치고 있다.

경기민요의 특정 유파에서만 보유자를 추가 인정하여 반발 거세  

이처럼 전승 현장은 세 가문의 소리를 고유한 전승 체계로 구축하고 있는데, 반해 문화재청은 유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묵계월과 이은주 전승 체계의 가치를 부정하고 예능 보유자 추가 인정 통합심사 및 인정조사를 밀어붙였고, 안비취 전승 기반의 김혜란 씨와 이호연 씨를 예능 보유자로 추가 인정 예고하였고, 묵계월류와 이은주류 전승자들의 거센 반발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항의를 받아드리지 않고 추가 인정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여 그 반발은 더욱 거세어질 뿐만 아니라 국악계에서도 문화재청의 이러한 행정조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 경기민요 연구 용역을 책임진 김영운 씨의 논리가 부정확한 근거에 기반을 둔 것이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지속해서 제기했음에도 문화재청이 귀를 막은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영운 씨의 이론을 반박하는 논리를 보면 우선 경기민요는 종목 지정 이전에 긴잡가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이미 선소리패와 권번 계통의 상이한 유파를 형성했으며, 이들은 악곡 구성과 리듬, 선율, 주법에서 명백한 변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종목 지정 당시 예능 보유자 세 사람 간 사승(師承) 계보가 전혀 다른데다, 이들 제자 중 몇몇은 이른바 ‘이창배, 정득만’과는 무관한 전승 계보를 가지고 있으며, 경기민요 종목 지정 직후 12잡가를 4종목씩 나누어 전승하게 된 배경은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이 관리의 용이성을 이유로 분리를 주도했기 때문에 김영운 씨의 논리는 잘못된 것이며 그 잘못된 논리로 예능 보유자 추가 인정을 강행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문화 행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연히 유파가 존재한다는 전승자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추가 인정 밀어붙여

무엇보다도 묵계월, 안비취, 이은주 세 사람의 학습 배경이 상이했기 때문에 가사 붙임새의 정형성이 각각 달랐으며, 서도 끌목에 기반을 둔 가창과 경제 목에 기반을 둔 가창법의 차이가 뚜렷이 달라 음악적 요소에 명백한 변별력이 있음에도, 이 부분들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채 결론을 내린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이 그러한 허술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엄연한 유파 기반이 있는 전승 기반을 무시하고 한 유파에서 예능 보유자를 세 사람씩이나 인정해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들과 일부 재야 학자들의 반박 이유를 들어보면 논리적인 주장이고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종목 지정이나 예능 보유자를 인정하는 주체인 문화재 위원이 바뀔 때마다 그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고 해석되면서, 문화재 정책의 일관성이나 객관성이 결여된 채 지정 및 인정이 결정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보인다.

여기서 유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파란 국어사전에는 ‘원줄기에서 갈려 나온 갈래나 무리’ 혹은 ‘주로 학계나 예술계에서, 생각이나 방법 경향이 비슷한 사람이 모여서 이룬 무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에서의 유파라는 것은 어떤 종목에 있어 어느 한 명인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예술적 성취를 통하여 일정한 일가(一家)를 이룬 예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유파 불인정에 대한 거센 반발, 충분한 이유 있어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의 전승은 선대의 예능을 있는 그대로 전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몇백 년 전의 전통 예능이 지금에도 원형 그대로 전승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대 예능의 전형은 전승하되 대를 이은 후대 명인의 개성 있는 예술적 표현이 가해져도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한다. 그것을 유파라 한다. 국악계에서도 스승의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는 소위 ‘사진소리’를 금기시할 정도로 개성 있는 표현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그래서 유파의 탄생이 가능해진 것이다. 
 
유파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는 특히 논란이 된 ‘경기민요’나 ‘서도소리’ 같은 개인종목의 경우 악곡별로 보유자를 인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한다. ‘서양에서 본다면 모차르트의 소나타별로 특정 오케스트라를 지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라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그들은 덧붙여 ‘산조와 판소리는 유파를 인정할 수 있지만, 이를 개방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라는 수정적인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견해를 가진 학자들은 ‘무용 분야에서도 ’승무‘,’태평무‘,’살풀이춤‘ 등은 ’민속무용‘으로 통합되어야 하며,’처용무‘와 ’학연화대합설무‘도 통합되어야 한다.’라고까지 한발 더 나아간다. 

이들의 주장이 전혀 타당성이 없는 의견은 아니나, 그런 입장이라면 산조와 판소리도 유파를 인정하지 않아야 형평성에 맞다. 산조나 판소리는 각각 같은 뿌리의 음악에서 출발한 것으로, 학습이나 전승 방식이 엄격한 ‘경기민요’나 ‘서도소리’와는 달리 융통성과 창조성이 개입된 결과로서 다양한 장단이나 악조가 첨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민요’가 장단이나 악조의 개입을 열어놨다면 다양한 음악은 가능해졌겠지만 그럴 경우 원형 논쟁을 피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승 환경이나 전승 가치, 전승자의 철학이 상이한 기반하에 전승 체계가 구축되고 전승된 개인종목들을 ‘산조와 판소리’의 유파 구분 시각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평가하고 조사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문화재청은 기존의 연구보고서에 대한 재 연구 용역 시행해야 

그렇다면 앞으로 개인 예능 종목의 보유자 인정 방식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일단 문화재청이 문화재 행정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2009년 (사)한국국악학회의 연구 용역 보고서 오류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일방적인 의견만을 들어 무시할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문화재 행정을 위해 학술적인 재검토를 시행해 재검증할 필요가 있다. 해당 연구보고서는 전승 현장뿐만 아니라 학계에서조차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보고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존 ‘한국국악학회’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학술단체에 재 연구 용역을 맡길 필요가 있다. 연구 용역 시 단수 연구가 아닌 복수 연구자들의 연구에 의해 진행될 필요가 있으며, 연구자들은 책상머리에서 음반 중심의 연구가 아닌 전승 현장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를 선행한 후 결론을 도출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니면 복수의 학술단체를 선정해 그 결과를 비교하는 방법도 재고할만하다.
  
그리고 생각해볼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은 종목별로 예능 보유자 인정을 심사하되, 유파별 형평성을 고려하여 예능 보유자를 인정해주고, 새로운 유파를 발굴하여 새로 예능 보유자를 인정해주면 된다. 단, 특정 개인이 만든 창작품일 경우 그 당대에서는 이를 유파로 인정해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무형문화재 전승을 위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많은 예능 보유자를 인정하거나 지원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 수를 통제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파별로 예능 보유자를 인정해주어도 좋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국력은 탄탄하다. 

무슨 일이든 해주지 않으려 한다면 해줘서는 안 되는 이유가 100가지가 넘을 것이고, 해주고자 하면 해줘야 하는 이유가 100가지가 넘는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전통 예능 전승에 힘쓰고 있는 전승자들을 격려하고 보호해주는 것은 문화재청이 해야 할 일이다. 매사를 권위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볼 것이 아니라, 예능 보유자 인정에 있어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열린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무형 문화유산을 보유한 문화국가로 우뚝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