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시대를 넘어선 ‘신’에 대한 논쟁,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리뷰]시대를 넘어선 ‘신’에 대한 논쟁, 연극 <라스트 세션>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7.25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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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10일까지 대학로 티오엠 1관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중앙에 놓인 책상에 몸을 기대어 앉은 프로이트 박사가 적막을 깨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 폴란드와 독일의 긴박한 상황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 너머로 그의 반려견 소피가 짖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C.S. 루이스 박사가 문을 두드린다. 

▲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이트 역의 남명렬 배우 공연 장면
▲연극 ‘라스트 세션’ 배우 남명렬(프로이트 役)의 공연 장면 ⓒ파크컴퍼니

“신은 없다”라고 말하는 20세기 대표적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라는 C.S. 루이스가 시대를 초월해 무대 위에서 만났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Mark St. Germain)이 아맨드 M. 니콜라이(Armand M. Nicholi, Jr.)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으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작가 C.S. 루이스(1898~1963)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신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83세의 프로이트와 무신론자에서 기독교 변증가가 된 41세 루이스. 이 두 사람은 몇천 년간 지속됐지만, 여전히 대립 중인 ‘신과 종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이어간다. “자네처럼 명석한 사람이 어떻게 신을 받아들였는가?”라는 단도직입적이면서도 무례하기까지 한 프로이트의 질문에 루이스는 “믿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신의 존재에 대한 더욱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무언가를 부정하기 위해선 우선 그것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차분히 반박한다. 

수 세기 동안 이어진 논쟁의 결론이 단 하루의 만남으로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작가의 의도는 어느 한쪽 논리의 우월성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있지 않다. 다만, 두 사람의 논리가 시작되고 이어지는 지점이 모두 인간의 삶과 죽음에 있다는 것에 주목하며, 이에 대한 궁극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나약함은 삶과 죽음의 과정을 파고들게 만든다.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만난 1939년 9월 3일은 나치의 폴란드 침공 이틀 뒤, 영국이 제2차 대전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날이다. 폭격과 사이렌의 공포로 어지러운 시기에 만났다는 설정은 죽음을 앞두고 자살을 결심한 프로이트와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루이스 모두에게 공평한 불안을 선사한다. 

▲연극 ‘라스트 세션’ 루이스 역을 맡은 카이의 공연 장면
▲연극 ‘라스트 세션’ 배우 카이(루이스 役)의 공연 장면

연극 <라스트 세션>은 2인극이지만 모자람이 없다. 하나는 앞서 말한 배우들의 호연이고, 다른 하나는 적절한 무대 세트의 배치와 활용이다. 무대 중앙의 책상 자리를 고집하던 프로이트는 루이스와 대화를 이어가며 자연스레 환자용 소파에 몸을 맡긴다. 이는 프로이트가 분석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상대의 심리나 견해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무대언어적 표현이다. 또한,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연설을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은 극단의 논리를 펼치던 두 인물을 하나로 묶고, 이후 흐르는 음악은 다시 둘을 저만치 떨어뜨려 놓는다. 스스로 분석하고 이해 가능한 것만 믿는다는 프로이트는 음악을 거부하고, 루이스는 그의 고집을 이해하지 못한다. 루이스가 떠난 후, 방에 혼자 남은 프로이트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끄지 않고 듣는 장면은, 헤어질 때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이어줄 무언가가 생겼음을 드러낸다. 

이들의 논쟁은 가볍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다. 프로이트 역을 맡은 남명렬과 루이스 역의 카이는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각자의 입장을 대변할 합리적 논리로 만들며 관객들을 설득한다. 구강암의 고통을 입 안 가득 머금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남명렬 프로이트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정확하게 귀에 와서 꽂힌다. 카이 루이스는 공연 내내 루이스로 존재한다. 신앙에 대한 믿음과 그 과정의 고뇌 그리고 인간적 갈등까지 90분 동안 꽉꽉 채워 보여준다. 전시상황을 알리는 라디오 사이를 부드럽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처럼, 이들의 완급조절은 탁월하다. 서로의 세계관이 가지는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지만, 사이사이 농담을 끼워 넣으며 긴장감을 적절하게 풀어준다. 빈틈없는 논리와 실없는 유머를 자유롭게 오가는 두 배우야말로 훌륭한 이야기꾼이 아닌가. 

한편, 연극 <라스트 세션>은 오는 9월 10일까지 대학로 티오엠 1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