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展,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담아
[현장스케치]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展,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담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7.2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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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8월 20일까지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소장 컬렉션 70여 점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이탈리아의 현대 미술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적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대중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현대미술 안에서 이탈리아 미술의 느낌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위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한 국가의 지금의 미술은 어떤 모습일까.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1933), 에트루리아인, 1976, 청동, 조각194×90×80cm /거울 250×200cm, 비엘라, 피스톨레토 재단 제공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소장의 이탈리아 미술 컬렉션을 지칭하는 ‘파르네시나 컬렉션’ 중 엄선된 20세기와 21세기 걸작 7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가 개최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오는 8월 20일까지 개최되는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외교협력부의 협력하에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 아트선재센터의 주최로 개최된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Achille Bonito Oliva)가 기획했다.

파르네시나 컬렉션의 핵심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추상과 구상이 특유의 방식으로 제시되고, 개념적 추론, 깊은 역사 의식 및 구체적 세계관과 소통하며, 양식적 절충주의와 표현 언어의 혼합이 돋보이는 이탈리아 미술의 역동적인 풍요로움을 담고 있다. 전시 작품들은 조각, 모자이크, 회화, 사진, 설치 등 전위적인 미술 작품들을 아우르며 이탈리아의 과거와 지금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 전경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전시 전경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한국-이탈리아, 예술로 여는 문화외교

지난 13일에 전시 개막 전 언론공개회가 있었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소장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움베르토 바타니(Umberto Vattani) 대사, 알렉산드로 데 페디스(Alessandro De Pedys)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공공문화외교국 국장,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Achille Bonito Oliva) 큐레이터 등 주요 관계자가 모두 참석했다.

알렉산드로 데 페디스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공공문화외교국 국장은 “한국은 계속해서 이탈리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라며 “한국은 동아시아 권역의 문화리더, 상당히 활발한 문화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는 국가로,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이탈리아 현대미술을 알리는 것에 큰 목적이 있다”라고 전시의 의미를 전했다.

알렉산드로 국장은 올해 광주비엔날레에 선보였던 이탈리아 파빌리온을 언급하고, 프리즈의 한국 개최 소식 등을 들어서 문화예술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을 언급했다. 그는 “이탈리아는 수 천년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자만심 같은 것이 있다.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지니고 있는 국가라고 스스로 자부한다”라며 “한국도 이탈리아와 비슷한 지점이 많다. 전시는 하나의 대화와도 같다고 본다. 이탈리아와 한국은 목표도 비숫하고, 지향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예술을 통해서도 외교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내년은 한국-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이다. 이번 전시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을 통해 한국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문화를 보다 가까이 알리고자 하는 주한이탈리아대사관과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의 노력이 담긴 발걸음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예술,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은 열정을 공유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혁신을 주저하지 않는 한국과 이탈리아 양국의 중요한 진전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Achille Bonito Oliva) 큐레이터가 간담회에 참석했다 ⓒ서울문화투데이

르네상스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탈리아 미술’

이탈리아 외교협력부는 1960년 즈음 로마외곽에 있는 파르네시나궁으로 이전을 한다. 40년동안 이탈리아 외교협력부는 그냥 궁을 공간으로만 사용해왔다. 그리고 1998년 독일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움베르토 바타니 대사의 방문으로 ‘파르네시나궁’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 움베르토 대사는 이탈리아 현대 미술을 통해, 이탈리아가 새로운 시대로 도입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이것이 이탈리아 외교협력부 현대미술품 컬렉션 ‘파르네시나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파르네시나 컬렉션’은 2000년 당시, 외교협력부 사무총장이었던 바타니의 주도로 동시대미술 연구를 통한 문화 정책 전략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각 분야의 전문 위원회를 구성하고 1950 년대와 1960년대 이탈리아 현대미술작품을 시작으로 20세기 전반에 걸친 컬렉션을 선별, 구성했다.

이번 전시는 이 ‘파르네시나 컬렉션’ 중 일부를 선별해 기획한 전시다. 이번 전시 기획을 맡은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 큐레이터는 1993년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의 방위> 총감독을 지내기도 한, 20세기와 21세기의 중요한 미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로 꼽힌다. 올리바 큐레이터는 1992년 백남준과도 인연이 닿았던 인물로, 간담회에선 백남준과의 만남을 언급하기도 했다.

▲줄리오 파올리니 Giulio Paolini (1940), 주피터와 안티오페, 2016-2021, 골든 프레임, 플렉시 유리 판, 캔버스에 콜라주, 160×240cm / 프레임 및 유리판 각 40×60 cm, 작가 및 알폰소 아르티아코 제공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올리바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기획함에 있어 “현대미술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전시 소개를 시작했다. 그는 “위축된 근육을 마사지하는 느낌의 전시를 기획하고 싶었고, 전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라고 전시 기획의 방향을 전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사에 대한 변증법적 참여를 작품 속에 함축하고자 노력한 여러 세대 작가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미래주의, 추상미술, 앵포르멜, 팝 아트 및 키네틱 아트, 개념 미술, 아르테 포베라, 트랜스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거침없는 활력을 보여준다.

시대 순이 아닌 주제별 큐레이션을 통해 서로 다른 표현 양식 간의 균형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역사와 지리, 20 세기의 감수성과 현대성을 향한 추진력, 친밀과 대립, 환경과 이민 문제, 새로운 형태의 빈곤, 대화와 연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비전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실제로 다양한 시기의 작품들이 어우러져서 전시 된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전시투어를 시작한 큐레이터는 각 작품의 역사와 이야기를 집중하는 동시에, 작품과 작품간의 호흡,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들에 집중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움베르토 보초니 Umberto Boccioni (1982-1916),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 1913, 청동 주물(2005-2011), 118×89×39cm, 로베르토 빌로티 루지 다라고나 제공 ©Damiano Fianco  (사진=아트선재센터 제공)

전시는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의 미래주의 청동 조각 <공간에서 연속하는 단일한 형태>,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의 에트루리아인 동상에 금박을 입힌 청동 조각 설치 <에트루리아인> 등 전 세계 유명 박물관ㆍ미술관에서 전시돼 온 작품으로 이탈리아 미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똥>이라는 작품으로 미술 언어의 혁신가라는 명성을 얻었던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의 <마법의 발판>이라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재단 위에 발판이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 누구나 스스로가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자신의 신체, 일상의 재료, 오브제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현실은 예술이라는 허구에 의해 거의 변형되고 시간을 초월한 “기념물”이 된다는 것이다.

구획 없이 자유롭게 전시되며, 작품 간의 호흡을 느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마치 관람객들을 이탈리아로 직접 데려간 듯한 느낌을 전한다. 이탈리아 특유의 유머가 드러나기도 하고, 이탈리아가 지닌 역사성도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올리바 큐레이터는 “미술은 언제나 장벽이 없는 상상력의 산물이며 이탈리아 미술은 이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미술은 늘 변화와 기억이라는 기치 아래 진행돼 왔다”라고 이번 전시에 대해 말한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현대 미술을 통해 이탈리아가 지켜온 문화예술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