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 “문화예술인이 ‘예술’ 할 수 있는 환경 만들 것”
[Special Interview]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 “문화예술인이 ‘예술’ 할 수 있는 환경 만들 것”
  •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 기자
  • 승인 2023.07.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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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기 위한 ‘자리’를 찾았을 뿐,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예술나무가치확산캠페인’ 등 문화예술 후원제도 정착화 고민
IFACCA 총회, ‘문화강국 한국’ 확인…다음 총회 한국 개최예정
키아프ㆍ프리즈, 세계 컬렉터에게 ‘한국 미술’ 선보이는 자리
중학교 2학년 시절 본 연극 ‘무녀도’, 지금 이 길의 계기
‘문화 강국’ 저력…순수예술인 덕분, 더 노력하는 예술위 될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 기자] 지난 5월, 대학로에 있는 <예술가의 집>이 리모델링을 해 재개관했다. 이곳에서는 방문객이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핸드드립 커피 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사 공간 한 켠을 청년 예술인들의 작업실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내준 것이다.

▲정병국 위원장이 인터뷰 전 취재진을 위해 커피를 내리고 있다 ⓒ김재성 사진 기자
▲정병국 위원장이 인터뷰 전 취재진을 위해 커피를 내리고 있다 ⓒ김재성 사진 기자

지난 달 27일 오후 2시 새롭게 단장한 <예술가의 집>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을 만났다. 정 위원장은 인터뷰를 위해 모인 이들에게 모두 직접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줬다. 따뜻한 물로 주전자를 데우고 천천히 원두에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는 정 위원장은 그 일련의 과정을 익숙하게 행했다. 또한, 커피가 향을 머금고 천천히 내려질 수 있도록 물을 붓고 기다리고 또 붓는 행위의 반복은 묘한 무게감을 만들어냈다.

정 위원장은 경기도 양평에서 16대부터 20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노련한 5선 국회의원이다. 제 45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까지 역임한 그의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임명에 대해서는 여러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치인 출신인 정 위원장이 현장예술인들의 의사결정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맞지 않는 인사라는 것이었다. 정 위원장의 임명 직후 민예총에서는 즉각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 위원장의 취임 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초기의 우려와 함께, 꽤 오랜 시간 갈피를 못 잡았던 예술위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정 위원장이 예술위원장 직을 고사하고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오히려 당신이어야 한다’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전했다고 한다.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오히려 그늘을 만들어주고, 안식처가 돼 줄 하나의 굵은 나무가 필요하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정 위원장은 자신의 방향을 명확하게 지니고 있는 노련한 인물이었다. 인터뷰 질문마다 막힘없이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선 지난 몇 십 년 간의 현장성이 짙게 묻어나왔다.

정 위원장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임명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연례적으로 해오던 베니스 비엔날레 개최 및 IFACCA(국제예술위원회 및 문화기관 연합)지도자회의 및 권역회의, 제 9차 문화예술세계총회 참석, 대만에서 진행됐던 한국 문학의 날 행사 등, 문화강국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마주할 수 있는 빼곡한 해외일정들이었다. 예술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와 행사들을 보며, 국내에서도 우리 문화의 힘을 느껴볼 수 있었다.

정 위원장의 대답에선 확신이 있었다. 또한, 비판의 시각에 있어선 이해의 태도를 지녔고 동시에 해결을 위한 제안을 전하기도 했다. 일부 문화예술인의 지원금 독점, 수도권ㆍ비수도권의 균형 발전 등에 있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기도 했고, 상황에 대한 다각도의 고찰과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고히 드러냈다. 그가 지낸 5선의 국회의원 시절의 경험담은 화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정 위원장은 마지막에 “예술위가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두 시간 여의 인터뷰 끝에서 들은 그 “노력”의 무게는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길 바란다.

▲답변을 생각하고 있는 정병국 위원장
▲답변을 생각하고 있는 정병국 위원장

취임 일성으로 “국회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회에서의 활동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위를 순수 예술을 지원하는 조직으로서 예술인들이 정치권에 눈치 보지 않게 하고, 창작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으며, 2003년 모금 중단 후 안정적인 자체 수입원이 없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확대 조성하고, 기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활용하여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모든 국민이 문화를 고루 향유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기금 조성과 관련해 좀 더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듣고 싶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만들어지고, 1973년에 문예진흥법이 생겼다. 법에 따라서 국민들이 구입한 공연장이나 영화관 입장권의 몇 퍼센트를 떼서 축적해왔다. 그 결과 2004년도까지 약 5000억 원의 기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누군가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더 이상은 모금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 후에 더 이상 기금을 모을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원금을 깎아먹게 됐다.

현재 예술위의 적립금은 1000억 원이 채 안 되는 753억 원이 남아있다. 현재 이 기금으로 예술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부 예산이나, 복권기금 등을 편성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금 예술위에서 1년 간 쓰고 있는 예산은 3800억 원 정도 된다. 그 중 2700억 원이 문화누리 카드로 들어간다. 실질적으로 문화예술인들한테 지원되는 금액은 1100억 원 정도 되는데, 여기서 1000억 원은 더 늘려야, 예술인들의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정부 예산을 최소화 하고 이 문예진흥기금을 확충해서 예술인들에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게, 우리 문화예술위원회 입장에서는 가장 큰 과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위원장을 맡고나서, 위원회로 와보니 문예진흥기금에 대한 대안방법이나 개선 방향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예술나무 후원시스템이라는 것은 갖춰져 있는데, 10년이 됐는데도 회원이 500여 명이 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확실한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봤다.

내가 생각한 것은 국가예산에서 1000억 원을 예술위가 사용하고 있으니, 1000억 원을 사회적 후원을 통해 모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대중들의 후원뿐 아니라, 기업의 후원도 많이 고려하고 있다. 최근에 계속 기업인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기업들은 모두 ESG경영을 하고 있고, 기업 이익 일정 부분을 의무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데에 사용해야한다. 그런 지점을 문화 쪽으로 많이 전환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는 9월 개최하는 ‘예술나무가치확산캠페인’도 문화예술 후원시스템 중 하나인가?

올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범 50주년이 되는 해다. 이것을 계기로 대국민 캠페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9월에 대국민 음악회를 통해서 캠페인을 시작하려고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 홍보도 하고, 티켓을 구매하면 예술나무 한그루씩을 심을 수 있는 방식의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후원자 본인이 하나의 나무를 심었다는 흔적을 남김으로써, 우리나라 문화예술 성장에 기여를 했다는 명분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정 위원장의 임명 발표가 났을 때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는 문화예술위원회가 홈피에 밝혀놓은 ‘현장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중심이 되는 합의제 의사결정기구로서…(중략)’이라는 내용을 들어 5선 국회의원이자 정당대표를 거쳤던 정치인으로서 현장예술인들의 합의제 의사결정기구의 위원이자 위원장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주변에서 권유가 들어왔을 때 거부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나 또한, 예술위는 예술인들의 합의체이기에, 예술인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이길 바랐다. 현역 국회의원이었을 때 문예진흥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꾸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강하게 주장을 했었다. 그 이유는 예술의 영역은 정치에 관여를 받지 않는 구조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나는 분명하게 이 자리는 내가 갈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항상 일을 하기 위해서 자리를 쟁취했지, ‘자리’ 자체를 목표로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정치인이 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일까. 그 고민에서 나는 아니라고 느꼈고, 그래서 거부를 했다. 그런데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집요하게 나에게 권유해왔다. 그들은 ‘오히려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예술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을 많이 탔다. 그 과정 속에서 문예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었던 취지를 점점 잃어가는 측면들이 있었다. ‘오히려 당신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당신이 오면 그 외풍을 막아줄 수 있고, 정부의 관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관여 같은 것을 막아줄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되돌아보니, 우리가 처음에 예술인들의 입장을 전하고자 시작한 그 첫 취지가 잘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내가 만약 예술위원장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찾아봤다. 찾아보니까, 내가 예술위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들어오게 됐다.

이후에 실제로 내가 위원장을 맡고, 반대를 많이 했던 분들이 이제는 긍정적으로 보는 지점 들이 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반대를 했던 분들이 우려했던 것은 예술위가 어떤 성향에 따라서 이쪽, 저쪽으로 편중되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정병국이 하는 걸 보니 최소한 한쪽으로 편중되는 것은 없고 오로지 문화, 예술 이것만 생각하더라는 관점에 좋게 본 것 같다.

문화예술계를 계속 흔드는 그런 갈등은 왜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

지난 5월에 IFACCA(국제예술위원회 및 문화기관 연합) 총회의 주제가 ‘예술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었다. 주로 논의됐던 내용이 절대적 권력에 억압을 받는 예술성, 예술의 자유 등 이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절대적 권력’ 앞에서만 억압을 받는 것일까. 나는 다른 지점도 있다고 봤다.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한 예술인이 A의 정치적 편향성을 띠고 그것을 표출하게 되면, 그 예술인과 대척 지점에 있거나 정치적 편향성을 지니지 않은 예술인이 되레 억압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봤다. 결국 순수예술인들이 정치적인 의도를 띤 예술인들에게 제약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한국을 보면 그런 상황이 반복됐다. 30년 전 한국은 군사독재 정권 하에 억압을 받고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다 함께 민주화를 이뤄냈다. 심지어 ‘문화강국’이라는 찬사도 듣는데, 예술인들은 여전히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편향성에 휘둘리고 이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런 진영논리와도 같은 통제와 억압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이파카 총회 현장에서 내가 질의를 했었다. 도대체 ‘자유’라는 선은 어디까지인 것인가. 예술을 정치적 도구화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되레 예술에 억압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국가들도 다들 가지고 있는 고민이었다.

나아가 이런 억압과 통제들, 권력에 휘둘릴 수 없는 상황들은 결국 모두 ‘돈’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게 됐다. 결국 예술인을 위한 지원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고, 예술인 스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정권이나 절대 권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병국 위원장이 인터뷰 전 직접 핸드드립 커피 도구를 가져오고 있다 ⓒ김재성 사진 기자

언급한 바와 같이 지난 5월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IFACCA(국제예술위원회 및 문화기관 연합)지도자회의 및 권역회의, 제 9차 문화예술세계총회(The 9th World Summit on Arts and Culture)에 연이어 참석했는데 어떤 성과들이 있었나.

해외로 나가보니, 다시 한 번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국가들이 한국과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총회에 참석하면서,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짧게, 짧게 13개국과 개별 면담을 했다. 한국이 세계 문화 중심에 서게 된 것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번 총회에선 ‘예술의 자유’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런데 논의를 진행하다보니 현재 예술과 기술의 접목, 이로 인한 제약의 발생들도 우리가 앞두고 있는 문제점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은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문제와도 같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함께 다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회의에서 제안했는데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왔다. 특히 한국이 기술적 진보도 빠르니, 이것을 한국에서 주도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아서, 한국이 다음 총회를 개최하는 쪽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7월에 제안서를 제출하고, 10월에 확실한 결정이 될 것이다.

작년부터 서울에서 국제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열리고 있다. 한국미술시장의 성장 기회라고도 여겨지는데, 이를 위한 기관적 차원의 지원책들이 있다면.

미술시장에 대해 아쉬운 점이 참 많다. 국회에 있을 당시 내가 양도소득세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2007년도부터 미술 시장이 붕 떴다. 그때 7000억 시장이었다. 그때 중국이 9000억 시장이었다. 두 국가가 별 차이가 없는 때였다. 그런데, 미술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니까 미술계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 판매 구조 간의 갈등이 생기고, 논란이 많아지자 다시 정부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했다. 다시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서 판이 뒤집혔다. 양성화되고 있던 미술 시장이 다시 밑으로 가라앉게 됐고, 2000억 시장으로 쪼그라들게 됐다.

이 상황 속에서, 한 3~4년 전부터 RM이나 다른 연예인들의 컬렉션을 통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주식투자나 비트코인, 벤처 등으로 큰돈을 만진 이들이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림에 투자하면서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리즈가 한국으로 들어오고, 1조 시장이 됐다. 요즘은 또 다시 미술 시장이 죽었다는 얘기들이 들려온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술 시장의 규모는 확실히 성장했고,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층이 두터워졌다.

물이 들어 올 때, 노를 젓는 것처럼 올해 키아프부터는 다르게 움직여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술 거래, 아트 페어 이런 것들은 화상(畵商)들이 하는 일이라며, 관이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프리즈든 키아프든, 이 시점이 한국에 들어오는 전 세계 컬렉터와 큐레이터들에게 한국미술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본다. 이것을 우리는 잘 활용해야 한다.

위원장에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시립미술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 예술경영센터, 사립미술관 협회 등 국공립 관련자들과 다 한 번씩 자리를 만들어서, 기획하고 있는 일들의 취지를 설명했다. 키아프ㆍ프리즈 주간에 우리 한국 미술을 소개하고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을 찾은 컬렉터, 큐레이터들이 더욱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편을 마련하고, 한국 미술을 접해볼 수 있는 홍보네트워크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해외 방문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교통편이었다. 아트페어는 강남인데, 전시장이나 미술관들이 모두 강북 권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셔틀버스나 VIP전용 차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 부분은 서울시에서 맡기로 했고, 우리 예술위는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서 컬렉터들이 방문할 만한 곳을 지도로 만들어 온라인에 배포하기로 했다. 그리고 갤러리나 미술관 측에선 한국 작가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 등을 선보이면서, 한국 미술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는 정병국 위원장 ⓒ김재성 사진 기자

올해 해비치페스티벌에서 ‘문화예술의 가치 창출과 지역소멸 위기 대응’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 수도권 쏠림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문화예술적 차원에서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문화예술이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매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소멸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왜 벌어지고 있을까. 지방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했는데도, 왜 국민들은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는 것일까. 국가는 공공기관 이전이 아니라, 좋은 학교와 좋은 문화 환경을 구축해 줘야한다. 지금 13개 기관이 지방에 내려가 있다. 나주에 콘텐츠진흥원과 문화예술위원회가 다 가있다. 그런데, 나주시에는 공연장이 하나도 없다. 문화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공연을 볼 수 없다. 이런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다. 제대로 된 학교, 공연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먼저다.

가장 인상 깊게 본 공연이 있다면.

가장 인상 깊게 본 공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난 항상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국립예술극장에서 봤던 <무녀도>를 꼽는다. 그 공연이 지금 이 자리까지의 계기가 됐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 중학교만큼은 서울에서 다니고 싶어서, 집에서 거의 시위를 해서 유학을 왔다.

중학교 때 한 반에 80명 정도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반에 1, 2명 정도는 어제 음악회를 다녀왔다거나 영화를 봤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까 이야기에 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중간고사가 끝나고 단체로 연극을 보러 갔는데, 내게 그 순간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국립극장이 너무 커서 놀랐고, 무대를 봤는데 내가 TV에서나 보던 사람이 나오는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전양자 배우의 극을 봤는데,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그 이후로 나는 의도적으로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이런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만약 이것을 내가 느끼지 못한다면 어쩌면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시작이었던 것 같다.

문화예술인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서 꿋꿋하게 버텨줬다. 팬데믹을 지나고 문화 예술 환경도 많이 바뀌고 있어서, 여러모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예술인들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없음에도, 내가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소명의식이 있기에 그 자리를 지켜온다. 정말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문화예술인들이 있었기에 지금 한국이 문화강국이 될 수 있었다. 이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문화예술인들의 열정이 꺾이지 않도록 환경을 잘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잘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어 죄송할 뿐이다. 동시에 그 열정과 사랑이 꺾이지 않도록 더 노력을 해야겠다고 느낀다.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