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취향 중독, 그리고 취향 경쟁
[Human Library]취향 중독, 그리고 취향 경쟁
  • 독립기획자 정다은
  • 승인 2023.07.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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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의 전시관 일부 벽이 유리로 되어있다. 따라서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내부를 바라볼 수 있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은 다시 작품이 되어 전시된다. 오늘날 취향은 평가의 대상이 되었음을 은유하고 있다.
▲직사각형의 전시관 일부 벽이 유리로 되어있다. 따라서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내부를 바라볼 수 있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은 다시 작품이 되어 전시된다. 오늘날 취향은 평가의 대상이 되었음을 은유하고 있다.

취향 중독 시대의 서막
우리나라는 ‘취향 중독 시대’를 맞이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취향’을 이야기한다. 취향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문화예술계에서 취향 관련 서비스는 필수요소가 되었다. 특히 각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개인의 취향이 다양하게 충족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취향’이라는 모호한 형체를 하나의 키워드 혹은 이미지로 분류할 뿐이다. 개인의 취향이 하나의 키워드로 굳어지고 키워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한다. 사회적 동물인 개인은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로써 개인의 취향은 공동체의 취향과 일심동체가 되며 획일화된다.

포토 스튜디오가 된 미술관
정답이 없는 예술세계에서 ‘끌림’은 곧 취향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을 만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공명할 수 있다. 특히 미술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취향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해준다. 이러한 미술의 특성 때문일까. 최근 들어 취향은 미술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관은 미술 작품이 아니라 카메라 셔터 소리로 채워진다. 작품 앞에서 빠르게 자세를 바꾸며 연달아 사진을 촬영하는 관객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흡사 포토 스튜디오의 촬영 현장을 방불케 한다. 그들의 어깨 너머에는 취향이 돋보이는 미술 작품이 걸려있다. 부단하게 얻어낸 사진은 곧바로 ‘SNS’에 전시된다. 취향 시대가 미술관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취향도 경쟁하는 시대
최근에는 ‘가치소비’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가치소비란 브랜드의 철학 혹은 진정성을 소비 기준으로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소비 역시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동시대 미술관 사례와 가치소비 트렌드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취향을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욕망의 출처는 ‘경쟁’과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한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김누리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쟁 시스템’이 나머지 세 개의 특징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경쟁은 익숙하다. 따라서 우리는 취향을 영위하면서도 남들보다 더 뛰어난 취향을 가져야 하고, 독특한 취향을 누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다른 것’을 추구하다 보니 ‘다른 것’이 등장했을 때 모두가 재빠르게 수용한다. 다르기 위해 선택한 취향이 역설적으로 같은 취향을 만들기도 한다.

취향으로 향하는 여러 개의 문
취향 중독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결핍을 채워주고 있다. 한국의 지독한 경쟁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좁은 입구’ 때문이다. 취업 경쟁은 소수의 일류 기업 문턱이 매우 높기에 유지된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살을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달리 취향으로 향한 문은 수천 수백 개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취향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긴다. 

스펙 말고, 진짜 ‘취향’
취향의 사전적 의미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다. 즉 당신과 상대방이 같은 것에 매력을 느끼더라도 마음이 흔들린 이유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어느새 취향은 경쟁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스펙’으로 전락했다. 오늘날의 취향은 존중이 아닌 평가의 대상인 것이다. 내가 이런 취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만이 중요할 뿐, 왜 좋아하고 사랑하는지에 대해 사유하는 과정은 다소 경시된다. 그러나 당신은 OTT의 추천 알고리즘이 아니다. 취향을 찾기 위해 나열된 키워드를 마구잡이로 고르는 것을 잠시 멈추고 마음을 살펴야 할 때이다. 취향 중독 현상은 어쩌면 우리 시대가 나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허나 사회가 만들어낸 결핍을 취향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힐난하기보다 응원의 눈빛을 보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