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전통과 실험 – 풍물’ ②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전통과 실험 – 풍물’ ②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3.07.26 10: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허윤정 명인이기에 가능한 

도날드 워맥의 작품 중 내가 가장 꼽는 작품은 혼무(Dancing With Spirits). 내 판단은 이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그간 없었다. 이번에 초연한 Black Dragon(검은 용)은 도날드 워맥의 대표작으로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또한 거문고명인 허윤정(서울대교수, 블랙스트링 리더)이기에, 이 작품을 초연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누구든 인정할 거다. 이 작품은 9현거문고를 사용하여서 전조(轉調)를 자유스럽게 하고 있다. 거문고는 현악기이면서도 타악기와 같은 역할을 해낸다. 말하자면 허윤정이 연주하는 거문고는 ‘국악관현악을 이끌어가는 상쇠’와 같은 역할을 해내는 거였다. 

허윤정은 국립국악고등학교 시절, 풍물을 깊숙하게 배웠다. 사물놀이의 명인 김용배 문하에서 배우고 익혔다. 그 이전의 어린 시절에는 춤을 통해서 한국적인 장단과 흐름을 익혔다. 허윤정의 이번 거문고 협연은 ‘호흡’이 훌륭하게 살아 있었다. 9현 거문고를 사용해서 매우 어려운 곡인데, 빠른 패시지(passage)의 속주(速奏)에서도 흐흡이 느껴진다. 

한국의 농악이나 무속의 장단을 채보해서, 이를 바탕으로 만든 작곡가의 작품을 들을 때, 나와 같이 원래의 민속과 무속의 장단과 호흡을 아는 사람이 느끼는 ‘곤혹스러움’은 그런 악보상의 리듬에선 단지 리듬만이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음악의 원형을 알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살아나고, 그것을 통해서 강약이 매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가락을 살리는 성음, 장단을 살리는 호흡 

비유컨대, 악보상으로 채보된 국악적 리듬을 보고 듣노라면, 마치 한글은 한글 특유의 발음과 말 붙임새가 있음에도 그것을 모두 서양의 알파벳으로 바꿔놓은 형상이다. 알파벳의 발음과 영어권의 읽기의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고 도착(倒錯)된 기분이 들 때가 참 많다. 
 
어쩌면 도날드 워맥의 작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모른다. 거문고의 속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허윤정은 이 작품 속의 선율과 리듬을 매우 자연스럽게 들려주었다. 일찍이 전통춤과 풍물을 통해서 한국적인 리듬과 호흡에 익숙한 허윤정이기에 이 작품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금협주곡 ‘혼무’가 초연 이후 지속적으로 연주되면서 사람들은 말했다. 이 작품은 누가 연주하면 어떨까? 사람마다 다르게 연주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었다. 거문고협주곡 ‘Black Dragon’의 초연을 듣고나서, 로비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 작품은 허윤정이었기에 가능했다!” 전통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는 물론, 즉흥음악의 숙련도가 쌓이고 쌓인 허윤정이기에,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작품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기에, 국악관현악으로서도 연습기간이 길었어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한번에 그치지 않고,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다시 연주해주길 바란다. 국악관현악의 협주곡이 많다. 가야금, 해금, 대금을 사용한 협주곡엔 훌륭한 작품이 꽤 있다. 성대적으로 해거문고는 그렇지 않다. 국악관현악을 통해서 거문과 관현악이 서로 상생(相生)할 작품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 작품은 거문고 협연곡의 음악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과 실험 – 풍물’에선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이 전체 3악장이 모두 연주했다. 이 작품은 1987년에 초연했고,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 가장 많이 연주된 국악관현악의 명곡 중 명곡이다. 국악관현악단 연주회에서는 대개 3장(셋째거리)만을 국한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세 개의 악장을 모두 연주했다. 최고의 사물놀이팀 사물광대가 연주했다. 

신모듬을 연주하는 ‘사물광대’의 소년미 

장구의 명인 김덕수가 사물놀이를 만든 이래, 많은 사물놀이팀이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멤버의 변화가 전혀 없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실력이 출중한 사물놀이패가 사물광대. 박안지, 김한복, 신찬선, 장현진 4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금까지 멤버의 변화가 없다. 따라서 사물광대는 사물놀이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의 탄생 이후에, 멤버의 변화없이 가장 오래 지속된 사물놀이팀이다.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강민석의 문하에서 사물놀이 배우고 익힌 최초의 팀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농악에 친숙해서, 네 명의 멤버가 모두 ‘농악의 명문’ 금산농업고등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신모듬’과 나이가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2023년에 신모듬을 연주하는 이들은 마치 금산농고 시절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듯 ‘소년미’를 뿜어냈다. ‘전통과 실험 – 풍물’은 박범훈 작곡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의 3악장 전곡 연주로 대미를 장식했고, 사물광대는 ‘신모듬’ 특유의 흥과 신명을 잘 그래내서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앞으로도 ‘전통과 실험’이 국악관현악 자체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면서, 21세기 국악관현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를 탐구하는 ‘최상의 연주회’로 거듭되길 바란다. 이렇게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선도적인 자세를 계속한다면, 여타의 기관이나 단체도 그간의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허구(虛構)적 기획의 공허함에서 벗어나서, 또한 그들 나름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