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무형문화재 제도의 재설계 필요성 ①
[성기숙의 문화읽기]무형문화재 제도의 재설계 필요성 ①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3.07.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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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심의 불공정 논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8일 문화재청에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유파별 보유자 인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약 1만 여명의 국악인과 관계자들이 서명했다. 전승자들은 탄원서 제출에 앞서 7일과 8일 피켓시위도 벌였다”(뉴시스, 2023년 6월 8일자). 

최근 국악계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인정 관련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1975년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묵계월·이은주·안비취 등 3명의 보유자가 인정되어 지난 50년간 맥을 이어왔는데, 2023년 신규 보유자로 안비취 유파의 전승자만 인정되자 거센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무형문화재위원회의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인정에 대한 최종 결정은 2023년 6월 이뤄졌지만, 사실은 2021년부터 보유자 인정조사를 실시했기에 지난 정부 때 설계되어 절차를 밟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악계의 문제제기는 탄원서 제출, 국민청원, 언론보도, 무형문화재위원회심의 당일 회의장 앞 피켓 시위 등 전방위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기시감(棄市感)이 스친다.

기시감의 기원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그랬다. 총 24명 중 단 1명만 보유자로 인정예고되어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2015년 12월 무용분야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제27호), 태평무(제92호), 살풀이춤(제97호) 3종목에서 예능보유자 인정심의가 실시되었다. 약 15년 만에 신규 예능보유자 인정심의가 진행되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16년 2월 문화재청은 태평무 1종목에서 단 1명만을 예능보유자로 인정예고 했다. 

파장이 컸다. 무용계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꾸려졌고 심사의 불공정 논란이 제기되었다. 심사위원 편파구성 및 자격논란, 콩쿠르식 심사방식이 문제로 지적됐다. 특정 학맥의 영향력 의혹 등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졌다.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6년 2월 태평무 복색의 원로 전승자는 청와대 앞 시위를 불사했다. 

팔순의 원로 태평무 전승자의 한 맺힌 절규는 맹렬한 추위를 녹여낼 정도로 처절하고 뜨거웠다. 가장 유력한 태평무 예능보유자 후보 중 한 명이었기에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여론을 환기시켰고, 범 무용계의 연대와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비대위는 문화재청장 면담을 통해 불공정 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불공정 심사절차 및 행정적 미숙처리에 대해 사과했고, 무용계 여론 수렴을 통해 합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수습책을 내놨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정책의장실(정책의장  이종배)은 2016년 9월 “전승환경의 변화와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하고 무용계 여론수렴에 나섰다. 그 결과 단 1명의 태평무 예능보유자 인정예고는 “보류 결정”되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다.

2017년 3월 탄핵이라는 역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현직 대통령이 퇴진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해 5월 이른바 ‘장미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로부터 2년 후 2019년 3월 문화재청은 11명을 대상으로 무용분야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인정심의를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재검토 준거는 2015년 12월 치룬 실기시험 점수로서, 이를 재검토 심의한 결과 승무·태평무· 살풀이춤 종목의 전수조교 9명이 보유자 후보로 선정되었다.  

내용적으로 비디오심사와 다를 바 없는 심사방식은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국민세금으로 충당되는 국가 권위의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를 비디오심사로 뽑는다는 것에 모두가 분노했다. 더욱이 불공정 심사로 폐기된 줄 알았던 안건이 정부가 바뀌자 되살아난 것으로 간주되어 공분(公憤)을 샀다.  

또 다시 불공정 시비와 더불어 특혜의혹이 불거졌다. 범 무용인이 참여하는 비대위가 꾸려졌고, 세 차례의 성명서가 발표됐다. 비대위는 문화재청장 및 차장을 항의 방문했고, 무형문화재위원회 공식 회의에 입회하여 불공정 심의 절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짚으며 개선책을 요구했다. ‘공허한 메아리’로 전락되자 문화재청장과 무형문화재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가 추가로 발표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여론 확산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렇게 무용계 안팎의 비판과 저항은 이전 정부 때보다 더욱 가열찼다. 무용종목 예능보유자 인정문제는 약 250여건의 비판기사가 쏟아질 정도로 언론의 주목도 또한 높았다. 심지어 201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김재원 국회의원에 의해 태평무 보유자 인정 의결 당시 심사위원 의결정족수 문제가 공식 거론되었다(머니투데이, 2019년 10월 7일자). 의결정족수 문제는 봉인된 채 여전히 ‘은폐된 진실’로 남아있다. 

2019년 무용분야 예능보유자 인정 심의는 무용분야 위원이 빠진 채 타 전공 위원들에 의해 최종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역대급 불공정 논란 속에 예능보유자를 한꺼번에 무려 8명이나 동시 인정한 것은 1962년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긴 이래 유례가 없는 일로 기록된다. 제27호 승무의 채상묵(이매방류), 제92호 태평무의 이현자·이명자·양성옥(강선영류)와 박재희(한영숙류), 제97호의 살풀이춤의 정명숙(이매방류) 그리고 김운선·양길순(김숙자류) 등이 유례없는 역사적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정부 때의 일이다. 

당시 무형문화재위원회는 “다수의 보유자를 인정해도 (문화재로서) 전형성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고, 무용종목의 활성화와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동아일보, 2019년 9월 9일자). 

과연 그럴까?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일부 무용종목의 경우 전형성의 훼손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유성과 원형 및 전형성이 변질, 훼손된 무형문화재가 후대로 계승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종신제(終身制)인 보유자 지원이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독무 형식인 승무·살풀이춤·태평무는 약 150여종의 국가무형문화재 중 단연 인기종목으로 손꼽힌다. 때문에 이들 종목은 소멸은커녕 범람으로 인해 초래되는 부정적 요인을 걱정할 정도이다. 더욱이 무용종목 신규 예능보유자의 다수 인정은 해당종목의 활성화 및 저변확대를 넘어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결론적으로, 급변하는 전승환경을 고려한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최근 국가유산기본법 제정으로 기존의 ‘문화재’에서 이른바 ‘국가유산’(문화·자연·무형유산) 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 시점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