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문화활동과 외국어의 벽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문화활동과 외국어의 벽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07.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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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대회, 문화외교 물꼬 트는 자리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우리는 살면서 여러 면에서의 부족함을 느끼며, 아쉬워하면서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간다. 제때에 쉽게 배워지지 않는 게 외국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의 현황과 한국의 세계 속에서의 위치는 우리가 젊었을 때의 여러 한계를 국가가 뛰어넘어 주었다.

특히 요즈음 젊은 세대가 누리는 <세계화의 경험>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오늘날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방학 때마다 어학연수의 기회가 있고 여행을 통한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살아있는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세대인 7,80대가 살던 시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우선은 외국어와 외국어 속에 녹아있는 또 다른 정서의 세계를 글과 책으로만 감지하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여행과 직업교류를 통한 현실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이러한 현실을 맞이하기까지는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극복했음을 젊은 세대는 알아주기 바란다. 한국은 70년대만 해도 국고에 달러 보유가 부족하여 해외여행을 엄격히 규제하면서까지 국고의 달러정책을 고수하며 해외여행이 금기되었었다. 내가 67년 임시 귀국한 후 이화여자대학에서의 교수생활을 하던 때가 바로 70년대였고, 해외여행을 국가가 허락한때는 1983년부터였다.

내가 R. M.Rilke 의 시어의 늪에서 빠져나오며 실존주의 철학의 실체파악을 겨우 뒤로 하면서 더 큰 표현주의 시대의 세계로 돌입하여 헤엄치던 시대는 내가 귀국하여 대한민국의 현실을 경험하던 때다. 서구세계의 문화적 사상적 소용돌이가 한국의 현실세계와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우리 한국인의 지성세계에 큰 영향을 주며 좌우한다는 것을 크게 느낀다.

그리하여 나는 세계공연예술계의 발전방향과 동향에 관심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세계 속의 변화하는 공연예술의 동향을 쫓고싶은 열망은 한국ITI 본부를 찾게 되고 한국ITI에 회원가입을 하며 적극멤버가 되어 내 구실을 찾게 된다.

당시한국 ITI 본부의 회장 여석기선생님과 부회장 김갑순 선생님은 10여 명이 넘을까 하는 회원을 이끌며 공연예술계의 세계적인 큰 기구로서 한국본부를 이끌어가기에 힘겨워보였다. 내가 본격적으로 ITI의 힘을 보태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뮌헨에서 개최되는 ITI 세계대회에 참가하는 선배분들의 독일어 연설문 번역을 도와드리면서다. 뮌헨은 마침 내가 연극대학 형태로 존재하며 연극학을 배우던 도시였다. 당시는 참여는 못 했지만, 1981년에 동독 Leipzig에서 개최될 때에 방문을 기대하며 선배님들의 서독방문을 도와드렸다.

마침 서독에서의 ITI 총회참석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 잘 끝났다고 뮌헨대학에 유학하며 이태주 선배님을 안내하던 송백희 제자에게서 전해 듣고 안심했다.

국제학술대회라는 장은 공연예술학만의 발전상황과 학문적 현주소만을 경험하고 알게 되는 자리가 아니다. 학자 개개인의 역량과 성향을 책을 통해서만 알던 지식을 만남과 토론을 통해 확인하는 장소이며, 이는 또한 국가간의 문화외교의 물꼬를 트는 자리다. 공연예술학의 전문분야의 발전방향뿐 아니라 각 나라의 문화발전방향의 훈풍이 어디로 향하고 있음을 감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연극학의 동향을 좌지우지하는 힘의 방향도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그 연유는 무엇인지가 당모임의 발표장에서 배우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여기에 덤으로 얻어지는 수확은 학자와 예술인들의 문화외교의 세련미를 다듬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는 1981년 동독 Leipzig에서 열리는 연극학회와 도서관학회가 열리는 총회에 잔뜩 호기심에 부풀어 <전통의 현대화>라는 주제에 입각해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동독의 연극잡지 <der Zeit>를 탐독한 지가 여러 해 된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1981년을 기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