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통닭 친구와의 추억이 배접된 작품 앞에 서서, 황수원
[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통닭 친구와의 추억이 배접된 작품 앞에 서서, 황수원
  • 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예술감독)
  • 승인 2023.07.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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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예술감독)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일입니다. 박물관에 걸려있는 중광스님의 작품을 볼 때면 먼저 간 그 친구가 생각나곤 합니다.” 거제박물관 황수원(黃守援, 1956~) 관장의 얘기다. 가난했던 결혼 초, 황 관장에게는 눈치 없이 신혼집을 자주 드나들던, 술 좋아하고 마음씨 좋은 양 아무개라는 친구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느 초저녁, 아내가 정성껏 차려 준 밥상을 마주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숟가락을 막 들려던 순간, ‘똑~똑’ ‘또 독’ 크고 둔탁한 노크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친구야! 나 데이” 방문을 채 열어 줄 틈도 없이 문이 확 열리더니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실린 술 냄새가 방안으로 확 들어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그 친구였다.

“제수씨 내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는데 윤정(황 관장의 장녀)이 아부지랑 술 한 잔 할라고 왔습니데이”, “내가 술 한잔 살 테니 빨리 나가자. 뭐 하노?”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채 살핀 틈도 없이 무작정 황 관장의 손을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평소에도 기행을 일삼았던 친구였기에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려 반, 기대 반에 황 관장도 저녁 술이 그리 싫지만은 않아 따라나서게 되었단다. 둘은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그리 멀지 않은 단골 구멍가게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소소한 생필품을 팔았지만 편하게 앉아 술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정겨운 동네 가게였다. 비틀비틀, 콧노래까지 흥얼대며 걷던 친구를 부축하며 당도한 가게에서 친구는 얼른, 소주 한 병과 마른오징어 한 마리를 집어 들더니 황 관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술은 내가 대접할 테니 계산은 니가 해라.’ 늘 그렇듯 그 친구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직감한 황 관장은 주섬주섬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인에게 지불하고는 가게 앞에 놓인 작은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술 몇 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황 관장의 집 쪽으로 통닭 봉지를 들고 배달하러 가는 사람도 보였다고 한다. 이런저런 객쩍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것으로 그날 술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친구를 보내고 황 관장도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이어서 괜스레 부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맘으로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서 뜻밖에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게 아닌가. 황 관장의 아내와 아이들이 통닭 파티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웬 거냐고 물으니 양 씨 아저씨가 주문해준 것이란다.

 

술값 지우던 친구 윤극영과 중광작품 맡기고 가

 

황 관장도 모처럼 흐뭇한 마음과 함께 그 친구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단란하고 행복한 저녁 풍경은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다음 날을 맞게 되었다. 모처럼 오후에 시간이 나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통닭집이었다. 어제 배달한 통닭값과 양 아무개가 먹고 간 술값을 계산해 달란다. 황 관장은 어이가 없었지만, 사태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황 관장의 집에 통닭을 시켰고, 황 관장이랑 헤어진 후 다시 통닭집에 들러 통닭과 술 한 잔을 더 했던 것이다. 황 관장 앞으로 외상값을 달아 놓은 채 말이다. 악의 없고 법 없이도 살 만큼 순박한 데다, 자기 것 챙길 줄도 모르는 친구였기에 “허허” 웃을 수밖엔 방법이 없었던 순간이었다. 직장생활도 술 때문에 순탄치만은 않았던지 가끔 황 관장을 찾아와 넋두리를 하곤 했던 밉지 않은 친구였기에 이후로도 어울리는 게 싫지만은 않았었단다.

▲윤극영 선생 전집 (사진=윤태석 제공)
▲윤극영 선생 전집 (사진=윤태석 제공)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은 찾아와 “친구야! 내 미안한데, 은행 보증 좀 서주면 안 될까?” 겸연쩍은 부탁을 해왔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금액이 그리 크지도 않았을뿐더러 믿음이 갖던 친구였기에 흔쾌히 허락을 해주고 말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기저기 외상 술값이 많아 더는 술을 못 먹게 될까 봐 긴급 조치가 필요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보증을 서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가 가지고 있으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자네 박물관에서 잘 보관해주소.”

▲중광스님 작품 (사진=윤태석 제공)

이 말과 함께 윤극영(尹克榮, 1903∼1988) 선생의 문학 전집과 중광(重光, 1934∼2002)스님의 그림 한 점을 슬며시 놓고는 어둠 속으로 사려졌다. 이만한 일로 이 귀한 작품을 받는다는 것이 민망하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박물관에 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벌써 골목 어귀로 사라진 친구를 더는 붙잡을 수 없었다. 그런 친구가 몇 년 전에 부인과 딸만 놔두고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술 탓이었는지 급병이 나 손 쓸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황수원 관장 (사진=윤태석 제공)

“이 그림을 볼 때면 순수했던 그 친구가 생각나곤 합니다. 좋은 곳에서 나 같은 친구라도 사귀어 좋아하는 술잔이라고 기울이고 있는지…….” “중광의 작품은 그 선한 친구와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배접돼 우리 박물관을 더 의미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황 관장은 그 작품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