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벨트라인 트레일의 랜턴 퍼레이드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벨트라인 트레일의 랜턴 퍼레이드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3.07.26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br>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미국 조지아주의 아틀란타는 흑인 인권지도자인 마틴 루터킹의 출생지로 그리고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도시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인근 도시에 한국의 현대, 기아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낯설지 않은 도시이다.

20여년전, 일 때문에 2박 3일 정도 머물렀던 아틀란타의 첫인상은 ‘회색’이었다. 다른 미국의 도시와는 달리 풍요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리차드 마이어가 디자인한 하이뮤지엄의 흰색이, 코카콜라 건물 앞 코카콜라 조형물의 빨간색이 어색해 보였다. 당연히 이후로 아틀란타를 갈 기회는 우연히 생기지도, 스스로 만들지도 않았다.

2010년대에 뉴욕이나 LA에 있던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아틀란타로 이동하면서 가파른 성장을 이루어냈는데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반이 구축되어 있던 북동부 지역으로 편중되면서 남부는 슬럼화가, 북부는 급성장하는 불편한 결과를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차량 이동 중심의 도로 구조는 다른 지역으로 출근하거나 교류조차 어려워 두 지역을 단절시킴으로써 흑인 빈민층이 주류였던 남부는 아틀란타에서 전체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3배에 이르도록 치안이 좋지 않았다.

1999년 조지아텍 석사과정에 있었던 라이언 그래블(Ryan Gravel)은 학교를 오갈 때 마다 경험하는 교통체증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 차량 이용 위주로 계획된 도시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석사논문에서 방치된 옛 철길을 보행로로 바꾸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을 확보하고 아틀란타의 전지역을 연결하고, 확보된 연계성을 통해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 계획에 포함된 노면 전차 노선 및 경전철 역 건설, 문화 공간 조성, 공공주택 건립 등도 이미 그의 논문에 언급되어 있어 놀라울 뿐이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던 대학원생의 벨트라인 계획은 2006년 7월 첫삽을 떴고 2010년 노스사이드(Northside), 2012년 이스트사이드(Eastside), 2017년에 웨스트사이드(Westside) 트레일이 차례로 오픈했다. 일부 주민의 반대와 대지 구입의 어려움으로 Southside 트레일이 공사 중에 있지만 연간 -2019년 기준 -200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걷고, 즐기기 위하여 모여 들고, 자연 친화적이며 도시의 역사와 전통, 인문학적 유산이 어우러진 도시의 핵심을 제대로 경험한다.

 

한 대학원생 제안으로 시작된
주민갈등 봉합 행사로

 

이렇게 아틀란타를 대표하는 명물, 벨트라인에 조명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2016년 일몰 후 보행자의 안전을 위하여 조명설치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한 시민들은 조명 설치를 위한 기부금을 모금했고 어느 정도의 모금된 금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벨트라인을 밤에 걷기 위하여는 손전등을, 자전거를 탈 사람은 자전거의 조명을 이용하라고 한다.

물론 주변의 빛 하나 없이 더듬더듬 걸어야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두운 지역에서는 범죄가 일어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조명이 설치되길 바라지만 운영하는 측은 빨리 조명을 설치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추측컨대, 이미 시멘트로 마감된 길은 폴이나 볼라드와 같은 조명기구를 설치하기 위한 전기배선이 어려울 수 있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변의 건물로부터 나오는 빛에 의존하거나 조명 조형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할만한데 유지 관리 면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비용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조명은 배선이 우선되어야 하며 조명기구가 설치되는 순간부터 전기를 이용하는 비용과 유지관리를 위한 인건비가 필요하다는 매우 뻔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할 때가 많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일년에 한번 랜턴 퍼레이드 행사이다. 도시를 순환하는 22km의 도로를 사람들은 저마다의 LED 랜턴을 들고 행진하는데 이는 장관을 이룬다. 남 북으로, 부촌과 빈민촌으로, 백인동네와 흑인동네로 단절되었던 45개의 마을이 보행로를 통하여 연결되었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벤트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아이덴티티는 드러나지 않고 오직 랜턴의 빛만이 서로의 존재를 표시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형상이 도시의 통합된 이미지로 보여져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이 행사를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해 조명을 안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일년에 한번 이루어지는 행사가 의미 있어 보였다.

뉴스를 보면 온통 편이 갈린 이야기들이다. 정치권은 이미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편으로 갈라져 있고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편이 갈려있다. 선생님들은 교권 회복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편을 갈랐고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는 나라를 향해 편을 갈랐다.

벨트라인의 랜턴퍼레이드와 같이 개개인은 어둠에 남겨두고 랜턴의 작은 불빛이 되어 한 방향으로 걸어보는 퍼레이드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